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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대피 정보 없이 삐, 삐, 삐…놀란 시민들 “양치기 경보” 분통[경계경보 오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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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잠 깨운 ‘재난문자 소동’

이유도 장소도 없이 ‘피하라’
네이버·행안부 앱 접속 불능
집·대중교통 등서 우왕좌왕
22분 만에 “오발령” 메시지
“실제라면 허둥대다 다 죽어”

경향신문

이게 무슨 일…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31일 시민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관련 뉴스속보를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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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아침 서울시가 낸 경계경보를 행정안전부가 긴급재난문자로 부인하고, 이어 서울시가 경계경보 해제를 재난문자로 알리면서 서울시민의 휴대전화가 3차례 크게 울렸다. 출근길을 뒤흔든 오발령 소동에 시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경계경보가 울리자 서울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강북구에 거주하는 김모씨(28)는 “경계경보에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하는지 아무 내용이 없어 카카오톡으로 서로 물어보기 바빴다”면서 “실제였으면 허둥대다 다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경보 발령 직후 네이버에서 대피소와 대피 매뉴얼을 찾으려 시도했으나 서버가 일시적으로 다운돼 검색할 수 없었다. 행안부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앱)도 접속자 폭주로 대피소 위치 확인 등 기능이 마비됐다. 김씨는 “아찔하고 황당한 경험”이라고 했다.

대피에 나섰다가 허탈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창문을 열고 잠들었다가 사이렌 소리에 잠을 깬 채모씨(26)는 ‘대피하라’는 민방위 경보에 놀라 생수·보조배터리 등을 가방에 쌌다. 경계경보 문자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디로 가라는 거지?’였다. 채씨는 “근처 대피소까지 뛰어야 하나, 대피소는 어디 있었나, 온갖 생각을 했는데 오발령이라니. 아침부터 별생각이 다 들었다가 겨우 진정했다”고 말했다.

출근길 대중교통에서도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시 경계경보 발령 당시 지하철에 있었던 전모씨(35)는 경계경보 긴급재난문자가 울린 뒤 휴대전화를 열어본 사람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 바라봤다고 했다. 그는 “어린이·노약자 우선 대피하라고 하니, 걷기도 힘든 어르신들이 허둥지둥 지하철에서 내렸다”며 “어떤 이들은 뛰어가며 대피소를 찾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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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혼자 사는 고령층 시민 중 일부는 재난문자에 놀라 급히 짐을 싸 주거지 인근 지하철역을 찾는 광경도 벌어졌다.

서울로 출근하는 경기도민들도 뒤숭숭한 아침을 맞았다. ‘서울시 경계경보’ 소식을 들은 최모씨(35)는 직장에 전화해 출근 여부를 물었다가 “출근해서 대피하라”는 핀잔을 들었다. 최씨는 “경기도 산다고 문자를 못 받아서 서러웠는데, 출근은 하라고 해서 민망했다가, 오발령이라고 하니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불안감에 우왕좌왕했다. 서울 서대문구 대학가 고시텔에 거주 중인 이모씨(28)는 “아침에 사이렌을 듣고 같이 하숙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복도로 나와 웅성웅성했다”면서 “한국어 방송을 모르니 진짜로 전쟁이 난 줄 알고 놀라길래 걱정하지 말라고 달랬다”고 했다.

서울시가 발령하고 행안부가 부인하는 ‘오발령 해프닝’이 시민들의 경계심을 낮춘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학생 김정원씨(26)는 “이렇게 가짜 경보가 자꾸 울리면 실제 상황에도 오발령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면서 “딱 양치기 소년 꼴”이라고 했다. 박모씨(27)는 “실제 전쟁이 나도 ‘저번처럼 오발송이겠지’ 하고 안 믿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홍근·윤기은·전지현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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