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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오염수 채취도 없이 ‘시설 관찰·자료 습득’…안전성 믿기에는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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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시료 채취 없어 우려 계속

재정화 가능할지도 여전히 의문

경향신문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설치된 다핵종 제거설비(ALPS). 일본 경제산업성 제공


지난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수 정화 시설을 보고 온 한국 시찰단 활동의 핵심은 일본의 분석 자료를 확보하고, 오염수를 거르는 데 사용될 시설들을 국내 전문가의 눈으로 확인한 데 있다.

이에 대해 일부 과학계 전문가들은 시찰단이 방사성 오염수를 채취해 독자 분석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시찰단은 일본이 보여주고 싶은 시설, 알리고 싶은 자료에만 접근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시찰단의 분석 결과가 오염수에 대한 한국민의 우려와 궁금증에 충분한 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원전 시찰단은 23일과 24일 양일간 후쿠시마 원전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시찰단이 가장 중점적으로 살핀 시설 중 하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다. 62개 핵종을 분리하도록 설계된 알프스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거르는 정화 장비다. 2013년부터 가동됐다. 특수 필터를 이용하는데,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정수기와 비슷하다. 알프스 없이는 오염 정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시찰단은 알프스의 입·출구 농도 분석 결과 같은 원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알프스가 최소 수십년 운영돼야 하는 만큼 과거 주요 고장 사례와 조치 내용 등을 담은 자료도 일본에서 받았다고 밝혔다.

시찰단은 바다로 나가기 직전의 오염수가 모이는 K4 탱크 등 측정 확인용 설비, 오염수의 이송과 희석·방출 과정을 관리하는 설비도 살펴봤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방사성 오염수에 대한 걱정을 덜어줄 해결책이 될지는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시찰단이 가진 본질적 한계 때문이다. 시찰단은 일본이 허용한 자료에만 접근할 수 있었다. 방사성 위험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데 핵심적인 오염수 시료 자체를 채취하지 못한 게 가장 맹점이다. 아예 이번 시찰의 기본 임무에서 오염수를 떠오는 일은 빠져 있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시찰단이 후쿠시마 원전 현장에 직접 갔다는 점이 의미가 없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일본에서 자료를 얻었다는 일이 시찰단의 주요 성과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자료는 일본과의 협조 관계만 있다면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데다, 현재 한국민이 가진 우려의 핵심은 바다로 나갈 오염수의 방사선 농도가 도대체 얼마인지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오염수 시료에 대한 채취와 분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서만 이뤄지고 있다.

시찰단의 활동에도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방사성 오염수 재정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걱정도 여전하다. 오염수 재정화는 알프스를 거쳐 나온 오염수가 기준치보다 높은 방사선을 뿜을 때 알프스에 다시 넣어 돌리는 일이다.

재정화가 중요한 건 현재 일본 정부가 탱크에 넣어 저장 중인 오염수의 66%가 방사성 기준치를 넘기 때문이다. 약 90만t에 달한다. 이 가운데에는 방사성 기준치를 살짝 넘은 오염수부터 무려 1만9000배 이상인 오염수도 있다.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시찰단 활동내용을 설명하는 브리핑에 나선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오염수가) 기준치에 맞지 않다면 방출 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한 번 알프스를 돌렸을 때 오염물질의 10%를 걸렀는데, 두 번 돌렸다고 오염물질의 20%를 거르는 필터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필터를 추가로 달면 모르겠지만, 공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원안위가 지난 2년 동안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와 서면으로 공방전을 벌여왔던 일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이 원안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원안위는 2021년 4월부터 올해 5월까지 6차례에 걸쳐 NRA에 질의서를 보냈다.

답변은 모두 4차례 왔다. 원안위가 NRA에 ‘오염수’라는 용어를 써 질의하면, NRA는 “오염수가 아니라 알프스 처리수”라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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