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폐 중 가장 작은 단위인 1000원 지폐. 실생활에선 점점 구매력이 떨어지지만 종교계에선 여전히 '1000원 파워'가 있다. /조선일보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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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순복음, 한때 ARS헌금에서 1000원 없앴다 항의 받고 복원하기도
“한때 교회 내부에서 ARS 헌금 액수 중 1000원짜리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실제로 없앴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 누가 1000원짜리 쓰느냐’는 거였죠. 그랬더니 성도님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1000원이라도 헌금 하고 싶은데 왜 없앴냐’는 것이죠. 그래서 금새 다시 1000원 헌금을 부활했습니다.”
얼마 전 여의도순복음교회 65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영훈 담임목사님이 한 이야기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신자가 많다보니 ‘부자 교회’로 생각하는 시각이 있는데 오히려 ‘서민 교회’라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예로 든 것이 ‘1000원 ARS 헌금’이었던 것이지요. 1000원권은 현재 한국은행권 지폐 가운데에서는 가장 액면 가치가 낮은 화폐이지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국내 교회 가운데 TV 예배 중계를 앞장서 시작했고, ARS 헌금도 일찍 도입했습니다. 신자 수가 많고 교회 규모가 컸기 때문이지요. 간담회 후에 실제로 이 교회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ARS 헌금 액수가 ‘1000원’ ‘3000원’ ‘5000원’ ‘10000원’ 등 4종류로 구분돼 있더군요. 교회 관계자는 “‘1000원 헌금 폐지’ 이야기는 아마 10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5만원권이 새로 나오고 실생활에서 1000원 지폐 사용은 줄어들던 무렵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1000원 헌금’을 없앴다가 섭섭해하는 신자들의 항의 때문에 급히 원상복귀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관계자에 따르면 ARS 헌금 가운데 ‘1000원’의 참여 건수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여전히 ‘50000원 헌금’은 없고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65년 동안 지탱해온 서민 성도들의 힘, ‘1000원 지폐의 힘’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홈페이지의 ARS 헌금 안내. 교회는 한때 ARS에서 1000원 헌금을 없애려다 교인들의 항의를 받고 다시 살렸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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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에선 여전히 ‘1000원의 감동’ 사연 줄이어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으면서 1만원권도 맥을 못 출 지경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1000원 파워’가 살아있는 분야가 종교계입니다. 종교계를 취재하다보면 ‘1000원 지폐’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대부분 천원짜리가 ‘전재산’인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여의도에 성전을 지을 때 이야기를 생전의 조용기 목사님께 들은 적 있습니다. 허허벌판 여의도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오일쇼크가 터지고 건설비가 모자라 툭하면 공사가 중단됐다지요. 멈춘 공사장에서 철근을 붙잡고 기도를 올렸답니다. 어느날 모래밭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 한 할머니가 “10분만 이야기하게 해 달라”고 했답니다. 할머니는 들고 온 봉지에서 숟가락, 젓가락을 꺼내고는 “내 유일한 재산이자, 최고의 보물이다. 조 목사 설교 듣고 은혜받고 구원받았다. 공사가 중단되면서 조 목사가 죽어가고 있다. 죽어도 살아도 같이 하자. 우리 모두 일생일대의 것을 내놓자”고 했답니다. 할머니의 숟가락, 젓가락의 값은 얼마나 됐을까요. 새 것도 아니고 쓰던 물건이었으니 아마 몇 천 원 어치도 안 됐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호소 이후로 교인들의 정성이 모이면서 성전 공사는 무사히 마무리됐다고 합니다.
1973년 5월 빌리 그래함 목사의 전도대회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모습. 오일쇼크로 공사비가 부족해 건축이 중단되곤 했지만 한 할머니 교인이 숟가락, 젓가락을 봉헌하며 호소한 이후 교인들의 정성이 모아져 완공될 수 있었다.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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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 교회 차원의 폐지(廢紙) 수집을 그만둔 것도 ‘1000원 짜리’와 관련 있습니다. 교회는 1980년대부터 심장병 어린이 수술을 지원하는 비용에 보태기 위해 폐지를 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가 영등포역 인근의 쪽방에 사는 고령의 할머니 성도를 심방하다가 할머니가 폐지를 모아 하루에 몇 천 원 버는 것을 모아 헌금하고 있다는 사연을 듣게 됐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모을 폐지를 남겨드리자는 뜻에서 폐지 수집을 중단했다는 것입니다.
종교교회 담임목사에서 은퇴한 최이우 목사님의 수필집 ‘흔적’엔 ‘1000원짜리 두 장’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첫 부임한 경기 남양주 수동면의 농촌교회 시절 이야기이지요. 첫 예배에 어린이 포함 15명이 참석했다니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요. 주민들과 함께 김장 담그고 생일에는 양말 한 켤레라도 선물하는 등 정을 나누며 지냈다지요. 한번은 여성 교인이 독사에게 다리를 물린 적이 있는데 최 목사님은 입으로 독을 빨아내 위급한 상황을 넘기기도 했답니다. 시간이 흘러 최 목사님이 군목(軍牧)으로 부임하기 위해 마을 떠나는 날. 출발하는 이삿짐 트럭 안으로 뭔가 날아왔답니다. 독을 빼서 살려드린 교인이 던진 꼬깃꼬깃한 1000원 지폐 두 장이었답니다. 그분의 살림 규모로 봐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지요.
노숙인들 1000원 헌금이 마중물 돼 샤워실 만들기도
노숙인을 돌보는 사역을 하는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님에게도 1000원 짜리는 힘이 센 지폐입니다. 서울 공덕동의 산마루교회는 노숙인들의 소원이었던 ‘샤워실’과 ‘세탁실’을 갖추고 있는데 이 시설을 마련할 때 마중물이 된 것은 노숙인들이 스스로 헌금한 500원, 1000원짜리였습니다. 노숙인들이 술 마시지 않고 돈을 모아 헌금한 것을 시작으로 교인들과 뜻있는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했고, 대형교회인 온누리교회까지 나서서 지원하면서 샤워실과 세탁실을 갖출 수 있게 됐으니 1000원의 힘은 대단한 것이지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12년부터 매년 교회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구제·선교에 쓴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지요. 작년엔 구제·선교에 447억원을 사용했답니다. 그 바탕엔 거액의 헌금도 있겠지만 서민 교인들의 1000원 헌금이 십시일반 모여서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큰 힘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1000원짜리, 즉 작은 정성을 귀하게 여기는 종교 단체들이 결과적으로 더 성장하고 귀한 활동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종교계에서 1000원짜리의 선순환이 계속 이어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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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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