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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언제 죽느냐’ 암 환자에게 퍼붓는 저주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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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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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람세스 3세의 정적들은 그의 얼굴 인형을 만들어 ‘죽어라’ 저주했다. 바늘로 찔러 상대를 저주하는 ‘부두 인형’으로 발전했다.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죽이려고 인형에 활을 쐈다는 이야기도 있다. 친구에게 전 재산을 뺏긴 사람이 원한에 사무쳐 매일 친구 사진을 송곳으로 찌르며 ‘죽어라’ 했더니 1년 만에 병들어 죽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꽃에 계속 ‘죽어라 죽어라’ 말하면 정말 말라 죽는다는 말도 있다. 저주가 그만큼 무섭다는 뜻일 것이다.

▶2000년 언론사 기자들이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인터넷에 저주 글이 올라왔다. “기자들 암 발생 기쁜 소식. 신속하게 사망에 이르기를 바란다. 암세포야 힘내라.” 20여 년 전 미국에서 항공기 추락 사고로 많은 이가 숨졌을 때 반미 네티즌들이 “잘 죽었다” “쌤통이다”라고 악플을 달았다. 동일본 대지진 때도 일부 네티즌은 “당해도 싸다”고 했다. 모 인사가 단식하자 “굶어 죽어라”라고 했고, 전염병에 걸린 상대편에겐 “빨리 가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때 야권 출신 방송심의위원은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박근혜) 즉사’라는 피켓 사진을 올렸다. 그러곤 “이게 민심”이라고 했다. 작년 윤석열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할 때 어느 신부는 “전용기가 추락하도록 온 국민 염원을 모으자”고 했다. 다른 신부는 ‘비나이다 비나이다 기체 결함 사고’라는 글을 올렸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는 그를 저주하는 인형과 부적이 나돌았다.

▶손흥민 선수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바이러스 몰고 온 동양 원숭이는 다리가 부러져 죽어라” 하는 저주를 수시로 들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팀이 연패하자 “구단주를 불태워 버리자”며 화형식 저주를 퍼부었다. 한국 농구 리그에서 뛰는 흑인 선수들도 “교통사고 나서 죽어라” 하는 악플에 시달렸다. 미국의 한 풋볼 선수는 연이은 실축에 “표백제 마시고 죽어라” 하는 저주를 받았다.

▶전여옥 전 의원이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자 ‘언제 죽느냐’는 악플이 쏟아졌다. ‘대한민국이 바로 서는 것을 보고 싶다’는 그의 글에는 ‘그거 못 볼걸. 그때까지 못 살지’라는 댓글을 달았다. 김남국 의원 코인 사태를 비판한 민주당 대학생 위원장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편 가르고 남 비난하는 게 정치권 생리라지만 ‘죽어라’ 하는 저주는 그런 차원을 넘는다. 입으로 하는 살인이나 다름없다. 옛말에 “남 저주하려면 묏자리를 둘 파라”고 한다. 남에게 한 저주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배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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