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의 마이크론 본사 입구의 로고.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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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이 중국을 압박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하며 21일 폐막하자 중국이 주중국 일본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공동성명에 항의했다. 이날 중국은 미국 반도체 제조사인 마이크론의 구매를 제한하는 보복 조치도 발표했다. G7 회원국 정상들의 대중국 압박이 실제 행동으로 정착되기 전에 흔들기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외교부는 21일 심야에 웹사이트를 통해 쑨웨이둥(孫衛東) 부부장(차관)이 타루미 히데오(垂秀夫) 주중국 일본 대사를 초치(召見)해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쑨 부부장은 “G7 순회 의장국인 일본은 이번 히로시마 정상회담 관련 행사와 공동성명에서 유관 국가들과 결탁해 중국을 먹칠하고 공격했으며, 중국 내정에 난폭하게 간섭했고, 국제법의 기본 원칙과 중일 4개 정치문건 정신을 위반했으며, 중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이익을 훼손했다”면서 “중국은 매우 불만스럽고 단호히 반대한다”고 항의했다.
쑨 부부장은 대만,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경제 협박’과 ‘채무함정’, 핵전략 등 히로시마 G7이 다룬 중국 이슈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어 “일본은 대중국 인식을 바로잡고, 전략적 자주를 파악하며, 중일 4개의 정치문건 원칙을 엄수하여 진정 건설적인 자세로 양국 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1일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미국 반도체 제조사 마이크론사 제품이 인터넷 안전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중국 핵심 정보 기초설비 운영자에게 구매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인터넷정보판공실 홈페이지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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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마이크론 제재…집단적 대응 무력화 노린 듯
중국은 미국을 향해서는 외교 채널 아닌 경제적 수단을 이용해 불만을 제기했다. 이날 오후 8시(현지시간)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網信辦·왕신판)은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미국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인터넷 안전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왕신판은 “미국 마이크론 제품에 비교적 엄중한 인터넷 안전의 숨은 위험이 존재한다”며 “중국의 핵심 정보 기초 설비의 공급 체인에 중대한 안전 리스크를 조성하고 중국 국가 안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안전법’ 등 법률법규에 따라 중국 핵심 정보 기초설비의 운영자는 미국 마이크론 제품의 구매를 중지해야 한다”고 공고했다.
하지만 중국은 마이크론 제품의 구체적인 위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대신 “중국은 견실하게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을 추진하며 중국의 법률법규 요구만 준수한다면 각국의 기업과 플랫폼 제품과 서비스가 중국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베이징의 규제로 마이크론엔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중국과 홍콩 시장 매출은 마이크론 전체의 25%인 308억 달러를 차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가들을 인용해 “베이징의 이번 규제가 중국 시장에서 마이크론을 축출할 수 있다. 폭발 반경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는 히로시마 G7에서 논의한 중국의 경제보복 방지 대책의 무력화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일 G7 정상들은 ‘경제적 회복력과 경제 안보’ 문건을 채택하고 “경제적 강압에 맞서 집단적 평가·대비·억제 및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 강압에 대한 조정 플랫폼’을 출범해 협력을 강화하고, G7을 넘어 파트너와 협력을 더욱 촉진하겠다”고 합의했다. 중국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 보복이 발생하면 집단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중국은 G7이 합의한 집단 대응 플랫폼의 싹을 자르기 위해 한국을 겨냥했다. 중국 증권시보는 21일 왕신판의 마이크론 제재가 나오자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한국 메모리 제조사가 미래 미국 마이크론 시장을 대체할 것”이라며 “중국산 메모리 제조사 역시 기회를 맞을 수 있지만 첨단 제품에서는 격차가 여전하다”고 보도했다.
이에 한국이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미국 마이크론을 제재한 것은 한국 기업 역시 언제라도 제재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며 “중국의 규제에 공동으로 대응함으로써 향후 한국을 겨냥하는 제재의 발생 가능성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2일 대만의 친중 성향의 신문 왕보가 1면 머리기사로 미·중의 고위급 대화 로드맵 구축 기사를 게재했다. 왕보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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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중 관계 이른 시일내 개선될 것”
한편, 미국의 중국 전문가인 데이비드 샴보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지난 19일 미·중교류기금회의 공식 사이트인 차이나유에스포커스 기고문에서 “미·중 양국은 정부 간 고위급 교류를 안정시키고 다시 제도화하기 위해 양측이 취해야 할 순차적인 상호 조치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망했다. 친중 성향의 대만 신문 왕보(旺報)가 22일 1면 머리기사로 샴보 교수의 미·중 ‘로드맵’ 기고문을 보도하면서 미국과 물밑 대화를 추진하는 중국의 기대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G7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미·중 관계가 “이른 시일 내(very shortly)”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미·중 관계를 악화시킨 중국 정찰 풍선 격추 사태와 관련해 “화물차 두 대 분량의 스파이 장비를 실은 어리석은 풍선이 (역학 관계를 바꾸었다)” 며 “곧 해빙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G7 폐막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UP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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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다음 달 2~4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만날 리샹푸(李尙福)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장관에 대해 제재 해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가 이른 시일 내 진행될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김상진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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