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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정치와 권력에서 멀어져야 '오월 정신' 되살아날 것" [광주 청년들이 말하는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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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업 깊숙이 유착, 청년들 5·18 외면"
"행사에만 급급, 교육도 안 해... 계승 뒷전"
"이권 싸움도 빈발, 정작 콘텐츠는 빈약해"
"엄숙주의 탈피, 모두 즐기는 내실 꾀해야"
한국일보

광주의 청년들은 갈수록 의미가 왜곡되고 퇴색하는 5·18민주화운동의 현실이 안타깝다. 아쉬움에는 과거에 얽매여 여전히 정치 싸움에 매달리다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자성도 있다. 그래도 민주주의를 향한 숭고한 오월 정신만큼은 계승돼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왼쪽부터 주보람, 김현지, 백성동씨. 광주=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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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를 핏빛으로 물들인 5ㆍ18민주화운동이 43주년을 맞았다. 국민적인 민주화 열망과 꾸준한 진상규명 노력 덕에 국가폭력의 실체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보상도 이뤄졌다. 그러나 40년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의 아픈 현대사는 서서히 잊히고 있다. 여당 고위 관계자가 “5ㆍ18정신의 헌법 수록을 반대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고, “북한이 사주했다”는 음모론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월 단체끼리 다투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자주 보인다.

당시 참상을 몸소 체험하지 않은 ‘청년세대’는 5ㆍ18을 어떻게 생각할까. 광주에서 나고 자란 세 사람이 10일 모였다. 교사(백성동ㆍ33)로, 직장인(주보람ㆍ26)으로, 학생(김현지ㆍ21)으로 각자의 삶을 꾸리고 있는 이들은 “투쟁 정치의 구습을 극복하지 못한 과거사 논의가 오월 정신을 해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가볍지 않되, 누구나 즐기는 축제로 승화시켜야 5ㆍ18의 밝은 미래를 그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담 진행은 박경우 호남취재본부장이 맡았다.

-5ㆍ18을 경험하지 않은 나이다. 어떻게 민주화운동을 접했나.

주보람(주): “역사선생님과 망월동 국립5ㆍ18민주묘지에 현장체험학습을 간 기억이 난다. 5월 18일이면 늘 현장체험을 다녀왔던 것 같다. 하지만 5ㆍ18을 제대로 배운 기억은 없다. 성인이 돼 관련 활동을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현대사는 수능에도 잘 나오지 않아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김현지(김): “초등학교 3학년 때 5ㆍ18민주묘지를 처음 가봤다. 막연하게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쐈다고 들었다.”

백성동(백): “교사 역할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졸업한 고교에는 5ㆍ18 희생자도 있고, 기념비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려준 선생님이 아무도 없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야 5ㆍ18의 본질을 알게 됐다.”

-세대 측면에서 과거사에 대한 거리감이 클 것 같다.

백: “5ㆍ18은 80년 5월의 이야기로 끝나선 안 된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사유화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정치권력과 연계되고, 각종 사업도 편중돼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5ㆍ18은 단순히 과거의 훈장이 아니다.”

주: “공감이 많이 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네가 왜 관련 활동을 하느냐’는 어른들의 지청구를 들은 적도 있다. 활동을 해보면 젊은이들의 관심이 적지 않다. 5ㆍ18 경험의 유무에서부터 단절이 시작되고 있다.”

-실제 5ㆍ18 이슈에서 젊은층이 소외되고 있나.

백: “일단 청년세대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광주에서 5ㆍ18은 정치이고, 권력이다. 5월이 되면 보여주기식 행사에 급급할 뿐, 진지하게 오월 정신을 탐색하려는 시도와 노력은 뒷전이다. 5ㆍ18 기념식에 들어가는 예산 일부를 연구나 교육에 투자했다면 진작 해결됐을 논란도 상당수다. 광주시나 광주교육청 역시 이 문제를 어떻게 교육하고 이어갈지에 대한 철학과 체계를 갖추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

광주에 거주하는 청년들이 10일 5·18기념재단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의미와 미래를 놓고 대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경우 한국일보 호남취재본부장, 주보람, 백성동, 김현지씨. 광주=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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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가 최근 광주를 찾아 사과했다.

주: “전우원씨를 만나봤다. 일정을 주욱 지켜봤는데, 진심이 느껴졌다. 옷을 벗고 묘비를 닦는 행동은 계획한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는 연출이 아니다.”

김: “조금 놀랐다. 비록 후손이지만 가해자 측이 진정으로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전씨가 그 시작을 열었다고 본다.”

-비슷한 시기 특전사 동지회 참배 논란도 있었는데.

백: “반성 없는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과오를 확실히 처벌받고 말해야 한다. 때려놓고 미안해하는 꼴이다.”

주: “등을 떠미니 사죄한 느낌이다. 유족들을 만나본 것도 아니고 그 과정을 이해하지도 않았다. 형식적 사죄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오월 단체들끼리도 계속 갈등을 겪고 있다.

주: “사업을 두고 분열된 것 같다. 청년들의 인식과도 동떨어져 있다. 또래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5ㆍ18 관련 사업은 거의 세금 낭비라고 여긴다. 심지어 사업만 안 했어도 광주가 더 발전했을 거라는 자조까지 나온다. 콘텐츠가 부실하다는 얘기다.”

김: “갈등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데 가는 길이 다르다. 민주화를 계승한다는 단체끼리 싸우다 보니 5ㆍ18의 숭고한 정신까지 싸잡아 왜곡될까 봐 우려된다. 또 오월 광주를 오래 기억하게 하고 싶으면 트렌드를 봐야 하는데 매번 다 아는 사실, 진부한 얘기뿐이다. 문화로 융합시켜야 정신도 지킬 수 있지만 여전히 울분만 가득하다.”

-5ㆍ18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야 할까.

김: “기념식이 한 번쯤은 웃음으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추모 기간만 되면 괜히 움츠러든다. 아이디어가 많아도 쉽게 꺼낼 수가 없는 분위기다. 굿즈(상품)나 팝업 스토어 등 당시의 오월을 기억하는 즐길 수 있는 행사로 탈바꿈해야 한다. 아직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주: “분위기가 어둡기만 하면 누구든 낄 마음이 없어진다. 5ㆍ18을 문화콘텐츠로 승화해야 시민에게,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다. 광주를 후손들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 젊은층이나 다른 지역에서 반감을 갖지 않도록 바뀐 시대상과 5ㆍ18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백: “텍스트에서 벗어나야 한다. 5ㆍ18민주묘지에 가보면 아이들이 앉아서 도시락 먹을 공간 하나 없다. 기념탑을 세우는 데 골몰하지 말고 편안하고 즐겁게 뛰어놀 수 있어야 핫플레이스가 되고, 관심도 생긴다. 내실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광주=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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