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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과학을읽다]성병에 멸종위기 코알라…백신이 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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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범 접종 개시

산불-개간, 전염병까지 겹쳐 개체 수 급감

호주 정부 지난해 2월 멸종위기 선포

호주의 과학자들이 멸종 위기 보호종인 코알라의 성병 감염 확산에 맞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하지만 코알라가 나무 높이 사는 데다 예민해 생포하기가 어려운 등 악전고투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현지 시각) AP통신에 따르면, 호주 과학자들은 최근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 사는 야생 코알라를 대상으로 성병의 일종인 클라미디아(chlamydia) 예방 접종을 시작했다. 지난 3월 첫 번째 코알라를 붙잡아 백신 접종을 마쳤고 앞으로 3개월 동안 작업이 계속될 예정이다. 목표는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노던 리버 지역 일대에 서식하는 야생 코알라의 절반가량인 약 50마리를 붙잡아 백신을 접종하고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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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안 통하는 코알라

클라미디아는 인간이나 가축도 자주 감염되는 성병의 일종이다. 교미하거나 어미-새끼 간에 확산된다. 인간이나 가축은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코알라는 다르다. 실명과 불임은 물론 사망까지 이어지는 치명적 전염병이다. 매튜 크라우더 호주 시드니대 교수는 "코알라의 뱃속에 있는 미생물들은 유칼립투스 잎의 독소를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문제는 이같은 독소를 중화하는 미생물들의 영향 때문에 코알라들이 항생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알라는 유대류의 동물로 웜뱃, 캥거루 등과 함께 잘 보전된 호주의 대자연을 상징하는 존재다. 하지만 최근 20년 새 그 숫자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 이에 지난 2월 호주 연방정부는 공식적으로 코알라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뉴사우스웨일스 동부, 퀸즐랜드, 멜버른 등의 지역에서 코알라가 멸종 위기에 놓였다고 선포한 것이다.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도 2020년 코알라가 전염병, 서식지 파괴, 로드킬 등으로 2050년이 되면 멸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었다. 특히 인간도 흔히 앓는 성병의 일종은 클라미디아는 코알라 개체 수 감소에 큰 원인이 되고 있다. 퀸즐랜드주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 코알라는 절반가량 감염됐으며, 뉴사우스웨일스주의 경우 감염 비율이 2008년 10%에서 현재 80%로 치솟았다. 사무엘 필립스 호주 선샤인코스트대 미생물학 교수는 "클라미디아에 감염되면 코알라들이 먹이를 얻기 위해 나무를 오를 수가 없거나 포식자로부터 도망가지 못하고 암컷들은 임신을 못하게 된다"면서 "코알라들을 죽음에 몰아넣는 질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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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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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감염, 멸종 위기 재촉

이에 따라 호주 과학자들은 코알라 개체 수를 보호하기 위해 백신을 개발·접종하기 시작했다. 이 백신은 1회 접종용이며 코알라에 특화됐다. 이번 시범 접종에 앞서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수용된 다른 코알라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을 통해 검증됐다. 필립스 교수는 "우리의 목표는 어느 정도 비율의 코알라에게 백신을 접종해야 (클라미디아의) 감염을 의미 있게 줄일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그러나 백신 접종에 애를 먹고 있다. 나무 높이 사는 데다 조심성이 많은 코알라를 유인해 잡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고안해 쓰고 있다. 우선 쌍안경으로 유칼립투스 나무에 올라가 있는 코알라를 찾아낸 후 나무 밑동 주위에 문이 달린 원형 울타리를 만든다. 얼마 후 해당 나무에 있는 먹이를 다 먹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내려온 코알라는 연구팀이 만든 우리로 향하게 한다. 이렇게 생포된 코알라는 안전한 상태에서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마취제와 백신을 투여받는다. 이후 24시간 동안 부작용 여부를 관찰한 후 다시 방사된다. 다만 코알라의 등 뒤에 분홍색 염료를 묻혀 또다시 잡혀 접종되는 것을 방지한다.

아직 코알라들이 왜 이같은 인간들의 성병에 전염됐는지 정확한 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인간들이 방목하고 있는 양이나 소의 배설물에 노출돼 코알라들이 이 병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호주의 코알라들은 이밖에도 인간들의 숲 파괴, 기후 변화에 따른 산불 등으로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트레스 증가로 면역 시스템이 약해지고 이를 틈 타 확산된 클라미디아에 보다 더 취약해졌다.

전 세계 과학자들도 이번 코알라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야생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강제로 백신을 접종한 것은 두 차례 밖에 없다. 2016년 미국에서 하와이안 몽크 물범을 치명적 모르빌리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실시했던 것과 2021년 말 브라질에서 황열병 예방을 위해 '황금사자타마린 원숭이'에게 백신을 접종했던 것이 전부다. 제이콥 네그레이 웨이크 포레스트 의대 생물학 교수는 "야생동물에 대한 백신 접종은 아직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조치가 아니다"라며 "이런 조치가 더 자주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현재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근본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레베카 존슨 수석연구원은 "코알라는 나무 높은 곳에 살기 때문에 백신 접종에 노력과 자원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그러나 클라미디아의 영향이 너무나 치명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백신을 접종할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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