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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스프] 피카소가 조선의 백자를 봤다면 주저앉아 울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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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君子志向' 전시 (글 : 이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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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의 문화 코드와 트렌드를 읽는 새로운 방식, [어쩌다]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를 채워줄 수 있는 프렌즈 컨트리뷰터들의 글을 비정기적으로 게재합니다. 이번엔 [오늘의 사랑스런 옛 물건]의 저자이자 전통 공예와 현대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는 디자인브랜드 '이감각'의 이희승 대표가 서울 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君子志向』 전시 관람 전 알아두면 좋은 '백자 감상법'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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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君子志向』. 리움미술관에서 조선의 '악' 소리 나는 거의 모든 백자를 한자리에 모았다. 리움에서도 자랑하듯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된 조선백자 총 59점 중 무려 31점을 선보일 뿐 아니라, 보기 어려운 국외 소재 유물들까지 한데 모은 귀한 전시다. 그러나 백자나 군자라고 해서 고요하고 잔잔하기만 한 모습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전시된 백자 162점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정교하며, 또 때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담백하기 때문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무려 50번이나 거듭해야 하는 조선왕조 500년. 유럽에서는 대략 르네상스가 인상주의를 지나 입체주의가 되는, 미켈란젤로부터 시작해서 모네와 피카소에까지 이어지는 시간이다. 이 긴 시간 동안 서양 회화는 사실적인 종교화에서 무려 추상화로 대체되었다. 같은 시간을 살면서 조선백자만 늘 한 가지 모습이었을 리 없다. 청화백자 - 철화·동화백자 - 순백자 순으로 전개되는 전시는 그런 백자의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살피기 좋다.

백자의 500년 역사를 감상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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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는 그 자체로 전문분야인 데다 워낙 넓고도 깊어서 뛰어난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지만, 오늘은 관심은 있어도 뭘 봐야 할지 잘 모르는, 그러나 이 전시를 주체적으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써본다. 어떻게 감상해야 한다는 '방법'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 감상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답처럼 읽히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이렇게 보면 어때? 하는 감상의 '방향' 정도로 여기면 좋을 것 같다. 글을 쓰며 문득문득 삐져나오는 애정 어린 주접은 덤으로, 귀엽게 눈감아주면 좋겠다.

우선 이 전시에는 감동적인 포인트가 크게 세 가지 있는데, 하나는 단연 압도적인 숫자의 국가지정문화재들이고, 두 번째는 개인적으로 매우 애정하는 철화·동화 백자들의 유감없이 발휘된 존재감, 세 번째는 미술관의 디스플레이 퀄리티이다. 조선백자 국보와 보물의 절반 이상이 한자리에 와 있다는 점은 긴 말이 필요 없고, 이렇게 많은 철화, 그리고 특히 동화 백자들을 모아 놓은 전시도 내가 기억하건대 지금까지 없었다.

주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아이들은 아니다 보니 낯설 수 있지만 철화는 철 안료를 써서 그린 그림을, 동화는 동 안료를 써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재밌는 것은 안료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매체가 바뀌니 그림체와 내용 또한 바뀌더라는 것이다. 청화가 정교하고 화려한 맛이 있다면, 철화와 동화는 거칠고 해학적인 매력이 있다. 학계에서는 철화·동화 백자가 주로 중앙 관요가 아닌 지방에서 생산되어 그 자유분방함이 배가된 것으로 여겨진다.

피카소도 봤다면 주저앉아 울었을 걸, '백자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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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철화 어문 병 / 백자철화 초화문 호 / 백자철화 국화문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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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철화 어문 병(조선 17세기, 개인소장)이나 백자철화 초화문 호(조선 17세기, 개인소장), 백자 철화 국화문 호(조선 17세기, 호림박물관)에서와 같이 해학적인 표현은 두말할 필요 없이 현대의 미감과 잘 맞닿아 있다. 피카소의 접시 드로잉들을 본 적이 있는가? 국보나 보물은 못 되었지만, 피카소도 봤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을 도자기가 바로 이 세 점 되시겠다. 심지어 이 도자기들이 피카소보다 두 세기나 일찍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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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철화 포도문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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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찍어 눌러 뭉친 먹이 뭉근하게 퍼진 듯한 느낌 때문에도 철화를 좋아한다. 힘이 느껴지는 붓질과 변화무쌍한 농담의 백자철화 포도문 호(조선 18세기,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포도가 왜 이리 예뻐 보이는지, 인간은 탐스러운 과실과 생명력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 듯하다. 이 호에는 비밀도 하나 숨어 있는데, 포도 덩굴 사이를 속도감 있게 가르는 원숭이가 그 주인공이다. 이 친구는 직접 찾아보는 재미가 있으니 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분청사기에 버금가는 해학과 위트의 아이콘들이 바로 철화·동화 백자라고 할 수 있다.

지지대에도 깃들어 있는 큐레이터들의 피땀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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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들어서면 바로 알겠지만, 전시 1부에서 4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도자기가 3차원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사방이 뚫린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공간의 비효율성을 감수하고라도 이처럼 옆과 뒤가 열린 작업은 꼭 그 방향을 봐주어야 한다. 접시인데 바닥이 떠있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보여줄 것이 없으면 그렇게 전시하지 않을 것이므로, 열려 있는 모든 공간을 눈으로, 발로 따라가다 보면 남들은 보지 못하는 재미를 분명 찾게 될 것이다.

첫 작품을 보자마자 도자기의 작품성에 연이어 거의 동시에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 또 있는데, 귀한 도자기를 받쳐둔 지지대가 혹여 감상을 방해할까 가려진 부분 위를 세필로 연이어 묘사해 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직접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들의 피땀눈물이 아닌가. 나중에는 이 도자기가 얼마나 멋진가보다 이걸 디피한 사람이 얼마나 집요한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이다. 명품을 위한 디테일한 노력들에 이 자리를 빌려 박수를 보낸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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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기자(choi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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