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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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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자작극? 우크라 심리전?···“크렘린 드론 공격, 어느 쪽이든 확전 구실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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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3일(현지시간) 러시아 대통령 관저인 모스크바 크렘린궁 지붕에 화염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의 드론 2대가 크렘린궁을 공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붉은광장CCTV/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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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봄철 대반격’을 앞두고 러시아 대통령 관저인 크렘린궁이 3일(현지시간) 드론(무인기) 공격을 받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는 이 공격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암살을 노린 우크라이나의 공격이라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이를 즉각 부인했다. 러시아의 자작극, 우크라이나의 심리전 등 무성한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어느 쪽이 사실이든 ‘확전’의 구실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이날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공습’에 나섰다.

이날 핀란드와 네덜란드를 연이어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푸틴 또는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싸운다”며 러시아 측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푸틴에게 승리가 없고, 그의 국민들에게 동기 부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공격 명분을 쌓고 러시아를 결집시키기 위한 크렘린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풀이된다.

앞서 크렘린궁은 이날 새벽 우크라이나 드론 2대가 크렘린궁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언제 어디서나 보복할 권리가 있다”며 공격을 예고했다. 크렘린궁은 4일 “이런 테러 행위에 대한 결정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미국이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미국이 배후라고도 주장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4일 MSNBC에 “우리는 이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러시아의 ‘가짜 깃발’? 공격 발표로 러시아가 얻는 것은


서방의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드론 공격이 러시아의 ‘가짜 깃발’, 즉 위장 작전일 가능성을 내놓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두 대의 드론이 여러 층의 러시아 방공망을 뚫고 크렘린 심장부 바로 위에서 폭발하거나 격추됐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며 “러시아 정부가 자국민에게 전쟁 위기를 부각시키고 더 광범위한 동원을 할 수 있도록 이 같은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믹 멀로이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도 “러시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기 위한 구실로 (공격 주체를) 날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BBC에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날 텔레그램에 “젤렌스키와 그 파벌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분석가들은 드론 공격이 발생한 지 12시간이 흐른 후 크렘린의 공식 발표가 나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간 러시아 정부가 본토 공격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려온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공격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메시지가 ‘고도로 조율’됐다는 것이다.

망명 중인 러시아 야당 정치인 레오니드 볼코프는 크렘린이 공격받은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러시아 방공망의 취약성을 인정한 격이라면서 “이를 알렸을 때 얻는 이점과 문제점을 평가하고, 이점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는 러시아인들이 전쟁을 더 열렬히 지지하도록 자극하고, 전쟁의 확전을 예고한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 공격 맞다면 크렘린 대망신…어느 쪽이든 확전 구실 돼”


만약 러시아의 주장대로 이번 공격이 우크라이나 측의 고의적인 공격이라면, 이는 푸틴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시도보다는 러시아를 흔들기 위한 ‘심리전 차원’일 것이라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자국 국경에서 직선거리로 450㎞ 이상 떨어진 모스크바 한복판을 공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 해군분석센터의 러시아 전문가 새뮤얼 벤뎃은 “우크라이나의 공격이라면 ‘크렘린궁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심리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도 푸틴 대통령이 최근 크렘린궁에 머무는 일이 드물고, 드론이 창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지붕 위에서 폭발하는 데 그쳤다는 점을 짚으며 “심각한 암살 시도보다 러시아 정부에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며 조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는 세계 정상 가운데서도 ‘암살 노이로제’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별하게 경호에 신경쓰는 푸틴 대통령의 입장에선 상당한 ‘굴욕’을 의미한다. 공격 당시 그가 크렘린궁에 없었다고는 하지만, 적국의 드론이 러시아 권력의 심장부 위에 날아들 때까지 러시아 당국이 속수무책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미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가 이번 공격을 단행한 것이라면 “이는 지난 14개월간 이어진 전쟁에서 러시아 측의 가장 난처한 실패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어느 쪽에 책임이 있든 이번 공격은 푸틴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확대시키려는 구실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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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상공에서 러시아 자폭 드론이 폭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날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대대적인 ‘보복 공습’을 벌였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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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에 ‘보복 공습’…젤렌스키, 북유럽 찾아 무기 지원 호소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임박한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공격의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4일 러시아군은 크렘린궁의 ‘보복 예고’대로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했다. 우크라이나 남부군 사령부 관계자는 4일 새벽 러시아가 키이우와 오데사 등 주요 도시로 자폭 드론 24기를 보냈으나 이 중 18기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3일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남부 헤르손에서는 민간인 사망자가 23명으로 늘었다.

우크라이나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본토와 점령지 공격도 잇따르고 있다. 4일 오전 러시아 남서부 크라스노다르주 세베르스키 지역 정유공장 유류저장소에서 드론 공격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전날 새벽에도 타만반도 지역 유류 기지에서 화재가 발생해 약 1200㎡ 규모 시설이 불에 탔다. 최근 러시아에선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앞두고 비슷한 공격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크름반도에서 발생한 유류 저장고 공격이 자국군에 의한 것이며 반격을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이례적으로 시인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반격’을 앞두고 핀란드를 ‘깜짝 방문’해 북유럽 5개국 정상들에게 전투기 등 무기 지원을 거듭 촉구했다. 5개국 정상들은 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및 유럽연합(EU) 가입을 지지하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우크라이나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투기 요청에 새 전투기 물량이 2025년 인도될 예정이어서 현실적으로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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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에서 세번째)이 3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5개국 정상과 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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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은 4일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를 방문하고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면 푸틴 대통령은 ICC 법정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ICC는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미국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대한 3억달러(약 4000억원) 규모의 무기 지원을 발표했다. 미국이 추가 제공하기로 한 무기 목록에는 ‘히드라-70’ 공대지 로켓을 포함해 대전차 미사일, 하이마스(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 등도 포함됐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무기 지원은 지난해 2월 개전 후 이번이 37번째로, 총 지원 규모는 357억달러(약 47조5000억원)에 달한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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