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 유통 업체에 재직 중인 C부장도 최근 회사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과장급 직원인 D씨의 갑작스럽고 잦은 오후 반차와 관련해 “업무 흐름이 끊긴다”고 주의를 줬기 때문이다. 잦은 휴가 사유는 “반려견이 아프기 때문에 돌봐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주 자리를 비운 팀원에게 중요 업무를 맡기지 않은 것도 경고의 한 원인이 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직장 내 괴롭힘’을 놓고 기업 곳곳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코로나19 재택근무로 한동안 잠잠하다가 최근 정상 출근을 택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은 여전히 문제다. 24일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직장 내 괴롭힘 접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 관련법이 처음 시행된 이후 지난해 말까지 총 2만9930건의 직장 내 괴롭힘(중복신고 제외)이 접수됐다.
관련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설문조사 응답률은 하락세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갑질을 경험한 설문조사 응답은 2019년 44.5%에서 36%(2020년), 28.9%(2021년), 29.1%(2022년)로 감소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378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간접고용노동자 347만 명, 특수고용노동자 229만 명, 플랫폼 노동자 53만 명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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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상급자가 하급자에 대한 갑질 못지않게 하급자가 상급자에 대한 ‘역(逆)갑질’ 사례도 늘고 있다. 사내 괴롭힘 등을 이유로 직장 상사를 공격하는 식이다. 방식은 다양하다. 사내 HR 담당 부서나 감사팀에 감정 섞인 제보를 하는 건 기본이고 직장인 익명 앱인 블라인드 등에 특정인을 공격하는 내용을 올리기도 한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엔 글로벌 본사로 투서를 넣는 일도 잦다고 한다. 유튜브나 각종 익명 사이트 등을 통해 역갑질 관련 노하우를 공유하는 일도 있다. 퇴직 사유가 ‘직장 내 괴롭힘’인 경우 실업급여 등을 받을 때 유리해서다.
노무법인 유엔의 김성중 노무사는 “2021년만 해도 역갑질 관련 사례가 별로 없었는데, 체감상 지난해엔 (과거의) 세 배는 되는 것 같다”며 “성희롱은 업무 관련성을 포괄적으로 인정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기준 자체가 더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이 이어지면서, 일단 퇴사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논란 당사자 중 주로 상급자가 택하는 방식이다. 징계 등으로 이어질 경우 이직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인사 쪽 담당자가 되레 시비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 인사담당인 E씨는 “사내 괴롭힘 관련 당사자에게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고지하는 과정에서 해당자가 ‘인사까지 나를 괴롭히는 거냐’라고 신고해 당황한 적이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일단 자유로운 의견전달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연차가 높은 직원이 저연차 직원에게 적극적인 조언을 해주는 일도 드물어졌다. 대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는 방식의 처세가 늘고 있다. 소위 ‘문제’ 직원은 아예 부서원으로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이수기·강기헌·김민상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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