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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최악의 위기 맞은 자영업

"예약 80% 취소 돼"… 강릉 산불로 자영업자 울상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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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는 기사도 안 나오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산불 보도 때문에 발길 줄었는데, 또 이런 보도 나오면 사람 더 줄어요.”

강원 강릉시 강문해변에서 5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기자라는 소개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언론에서 강릉 산불이 보도될수록 관광객이 발길을 줄일까 걱정돼서다. 그는 “‘강릉 산불’로 보도되니까 사람들이 강릉 전체가 불탄 줄 안다”며 속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계일보

강원 강릉시 저동 펜션 밀집 지역에서 119 화재조사단이 지난 12일 오후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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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난곡동에서 시작한 이번 산불이 잡히고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인 13일, 자영업자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화재로 펜션·식당 등 업장이 불에 탄 경우는 물론 직접적인 화재 피해를 보지 않았더라도 산불 소식으로 관광객 유입이 줄어들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12일 강릉 강문해변 앞에서 만난 정계선(64)씨는 인근 생선구이집 사장이다. 정씨는 바닷가 주차장을 바라보며 벌써 사람이 줄었다고 혀를 찼다. 그는 “평일 낮이라도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주차장에 차가 많다”며 “오늘은 해변을 걸어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걱정했다. 정씨는 “2019년 속초 산불 때 속초에서 자영업을 했는데, 그때도 1달 정도는 손님이 줄었다”고 덧붙였다.

경포대 인근 한 식당 사장도 “언론에서 무작정 떠드니까 여기가 다 탄 줄 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정상 영업하고 있는 곳이 많다는 걸 홍보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특히 숙박업 자영업자들은 이번 산불의 여파를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숙박업 특성상 예약으로 받아둔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강문해변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진민(52)씨는 “(산불이 발생한 11일) 예약의 80%가 취소됐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오는 주말 예약도 이미 40∼50%가 취소됐다”며 “다른 숙박업소 사정도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진씨는 “강릉 산불이 실제 크게 나기도 했고 보도도 많이 되다 보니, 여행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3년째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김성만(54)씨도 “불이 나면 손님이 줄어드는 간접적인 피해가 있다”고 입을 뗐다. 김씨는 “강원도에 산불이 반복해서 발생해 걱정이 많이 된다”며 “사전에 막기 어려운 천재지변이라 더 그렇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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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릉 산불로 김진명(50)씨가 운영하던 펜션은 전소됐다. 김씨가 지난 11일 화재 당시 불길에 휩싸인 펜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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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피해를 직격으로 맞은 곳에서는 당장 대출 이자를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화마에 휩싸였던 강릉시 저동 일대의 펜션 건물들 앞에서는 12일 오후 119 화재조사단과 보험사 직원들이 사진을 찍으며 현장 조사를 했다.

이곳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김진명(50)씨는 10년 전 3억을 대출받아 펜션을 지었다가 이번 화재로 건물이 전소했다. 그는 “화재보험을 들긴 했지만 숙박업소가 들어야 하는 기본적인 보험을 들었다”며 “어제(11일) 보험사에 문의했는데 절반은커녕 1억도 못 받을 것 같다”고 참담해했다. 김씨는 “어디 원망할 데도 없다”며 “정부가 대출 이자만 막아줘도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펜션 운영하는 사람들 사정이 다 비슷할 것”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허탈하게 웃었다.

윤준호·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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