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 공존하는 인정전·꽃처럼 아름다운 낙선재 등 보며 야간 산책
6월 4일까지 '창덕궁 달빛기행' 프로그램 운영…4월 행사 모두 '매진'
'창덕궁 달빛기행' 특별행사 |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제 설명보다는 아름다운 궁의 모습에 흠뻑 빠지길 바랍니다. 준비되셨나요? 600년 역사를 간직한 창덕궁으로 모시겠습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자 굳게 닫혀 있던 돈화문이 열렸다.
안으로 몇 걸음 내딛자 이내 주변을 감싼 분위기가 달라졌다. 바깥의 빛과 소음은 멀어졌고, 청사초롱 불빛만 남았다.
그렇게 마주한 건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임금이 거처하며 사랑했다는 궁, 창덕궁이었다.
지난 12일 사전 행사로 만난 '창덕궁 달빛기행'은 왕의 공간으로 떠난 시간 여행과도 같았다.
'피켓팅'(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 예매를 뜻하는 말)을 뚫고 예매에 성공한 사람들은 오후 7시 20분부터 25명씩 줄을 섰다. 전국의 미세먼지 농도가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날이었지만 관람객의 표정에는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한 듯 보였다.
19년 내공의 천대중 해설사를 따라 걷다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국보 인정전이었다.
청사초롱 들고 만나는 밤의 궁궐…'창덕궁 달빛기행' 13일 시작 |
어진 정치를 펼친다는 뜻의 건물 내부에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펼쳐졌다. 왕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의미의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다.
천 해설사는 "인정전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웅장함과 화려함에 사로잡히지만, 측면에서 보면 (하늘로 뻗어있는 처마의) 곡선과 건물 등 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인정전에서 조금 더 걸어가 만난 희정당은 현관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본래 왕이 머무르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집무실로 쓰인 희정당은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공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마치 호텔 입구처럼 꾸민 현관이다.
'창덕궁 달빛기행' 특별행사 |
화려한 단청 없이도 기품을 내뿜는 낙선재 일대는 창덕궁의 대표 공간이었다.
천 해설사는 조선 헌종(재위 1834∼1849)이 후궁인 경빈 김씨를 맞아 생활 공간으로 지은 낙선재의 역사를 설명하며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자, 꽃처럼 아름다운 시작이 있는 장소"라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각기 다른 문양의 낙선재 문살을 가리키며 '한옥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약 3분 정도 걸었을까. 후원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부용지와 부용정 일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이른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 따라 조성된 연못은 단연 달빛기행의 백미였다. 녹음이 짙어지는 봄밤 아래 은은한 멋을 더한 보물 주합루 모습도 일품이었다.
왕의 만수무강을 염원하며 세운 불로문을 지나 애련지를 지나자 연경당에 도착했다.
상량정에서 울려 퍼지는 대금 소리 |
순조(재위 1800∼1834)가 잔치를 베풀고자 1820년대에 조성한 이곳에서 전통차와 약과를 먹으며 전통 공연을 보는 게 달빛기행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다.
관람객들은 연꽃이 그려진 항아리를 얹은 보상반을 중앙에 두고 항아리 안에 공이 들어가면 머리에 꽃을, 그렇지 않으면 붓으로 얼굴에 먹물 점을 찍어주는 춤인 '보상무'(寶相舞)를 보면서 여운을 달랬다.
후원 숲길을 따라 다시 돈화문으로 나온 시간은 오후 9시 10분. 예정보다 10분이 지나 있었다.
"우리가 어디 다녀왔을까요? 바로 한양이지요. 그러나 이제 서울로 돌아왔네요. 제 이름도, 제 설명도 모두 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창덕궁 세 글자는 꼭 기억해주세요." (웃음)
멕시코에서 유학을 와 경기민요를 배우고 있는 난시 씨는 "궁궐을 거닐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라며 "'리얼 코리아'(real korea), 한국의 참 멋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이날부터 6월 4일까지 매주 목∼일요일에 진행된다.
이달 일정은 매진된 상황이다. 다음 달 4일부터 6월 초까지 이어지는 행사는 20일 오후부터 티켓링크에서 예매할 수 있다.
부용지와 부용정 일대 |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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