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세 시장이 거래량과 가격이 같이 오르는 ‘완전한 회복세’를 보이려면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추가 금리 인상 등 전세 시장을 압박하는 요인들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세 급매물을 중심으로 거래량이 늘 수 있겠지만, 완전한 금리 하락 신호가 오기 전까지 가격 반등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개포동 등 강남권 전셋값 하락 주도
3월 13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전월세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지난 2월 1만1272건을 기록하며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많았다. 아직 2월 신고 기간(계약일 이후 30일 이내)이 2주 이상 남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종 거래량은 1만3000건 안팎까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금리 급등기 이전인 지난해 2월 1만3038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이다가 같은 해 11월(9342건) 1만 건이 무너졌다. 이후 12월(1만34건)부터 거래량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전체 전월세 가운데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다시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57.7%였던 서울 아파트 전세 비중은 11월 53.2%, 12월 49.5%로 떨어졌다가 올해 1월 56.5%, 2월 57.9%로 두 달 연속 증가했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전세 거래량은 1만34건, 월세는 1만250건으로 월세가 많았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지난 2월 전세 거래 상위 지역을 살펴보면 강동구가 1275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월(635건)보다 거래량이 2배 늘었다. 이어 송파구(994건), 노원구(898건), 강남구(825건), 강서구(743건) 순으로 거래량이 많았다.
주택담보대출 중에서 전세대출이 주택 구입 관련 대출보다 훨씬 더 많이 늘었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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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거래가 늘면서 월세 거래량은 소강 상태다. 월세는 지난해 12월 1만250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 들어 1월 7744건, 2월 8027건이 거래됐다. 전세 거래량이 증가한 건 전셋값이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퍼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국부동산원 집계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들어 지난 2월 말까지 8.34%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 0.07% 하락한 데 비하면 폭락세다. 전세 가격 폭락은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은 48.4%로 50%대가 무너졌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는 지난해 2월 3일 전용면적 84.99㎡ 전세(21층)가 17억5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올해 3월 4일 같은 평형(23층)이 9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1년 새 전셋값이 반토막 났다. 영등포구 신길동 보라매SK뷰도 3월 6일 전용면적 84.98㎡이 4억원에 거래됐는데 약 1년 전(2022년 4월 2일) 13억원에 비하면 69% 떨어졌다. 이 밖에 ▲대치동 개포우성1차 127.61㎡(22억→12억5000만원, 43%) ▲반포동 반포자이 84.94㎡(22억→12억5000만원, 43%) 등도 실거래가가 가파르게 떨어지는 추세다.
특히 강남권에서 전셋값 급락이 이어지면서 다른 지역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강남권 전셋값 하락을 주도하는 곳은 개포동 일대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3375가구) 입주 등이 임박하면서 전세 매물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개포래미안포레스트’ 84㎡의 전세금도 지난해 9억5000만원에서 이달 7억원으로 낮아졌고, ‘개포래미안블레스티지’ 84㎡도 같은 기간 9억5000만원에서 8억원까지 하락했다. 2년 전 이들 단지의 같은 주택형 전세금 최고가는 16억~17억원에 달했다.
올해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서 당분간 전셋값 하락세가 계속된다는 전망도 전세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좋은 가격에 전셋집을 찾는 수요자들에겐 희소식이다.
직방에 따르면 내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총 30만2075가구(413개 단지)로, 올해(25만6595가구)보다 18%가량 증가한다. 지역별로 수도권은 내년 15만5470가구(183개 단지)로 올해 대비 9%가량 증가한다. 서울은 강남구, 은평구, 서초구 등 순으로 입주 물량이 많다. 대부분 재건축·재개발이 완료된 단지다. 경기는 양주·화성·평택 등 택지지구 입주 물량이 공급되고, 인천은 검단·송도 등에서 4만1917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지방은 올해보다 29% 많은 14만6605가구가 입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도 입주 물량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입주가 이어진다. 대구 3만4638가구, 충남 2만1405가구, 부산 2만155가구 등이다. 이 중 강남권에서만 1만3000여 가구가 쏟아진다. 2022년 강남권 입주량보다 4배 많고, 최근 3~4년간을 돌이켜봐도 볼 수 없었던 물량이다. ‘개포프레지던스자이’를 시작으로 5월 ‘대치푸르지오써밋(489가구)’, 6월 ‘르엘 신반포 파크애비뉴’(339가구), 8월 서초구 ‘래미안 반포 원베일리’(2990가구), 11월엔 강남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6702가구)’가 입주한다.
수도권·지방 가릴 것 없이 가격은 하락
월세 가격이 크게 오른 것도 수요자들이 전세로 눈을 돌린 요인으로 꼽힌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달간 전국 아파트 월세 계약 7만510건의 평균 월세액은 65만원에 이른다. 2년 전 같은 기간 평균 52만원(5만4490건)에 비하면 24.9% 상승한 금액이다. 부동산R114 관계자는 “전세 가격은 폭락한 반면 월세 가격은 뛰면서 전세로 돌아오는 수요가 늘고 있다”라며 “전세 급매물이 많아지면서 가격이 떨어진 것도 거래량을 회복시킨 영향으로 풀이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로 좁혀 봐도 주요 부동산 가격 지표에서 유일하게 상승한 것은 월세다. 부동산원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작년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7.7%, 전세 가격은 10.11% 하락했지만 월세는 0.45% 올랐다. 매매와 전셋값이 동반 급락하는 와중에 월세는 강보합세를 지킨 것이다. 또 전월세 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하는 비율)도 계속 상승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기준 2020년 12월 전국 평균 4.5%였던 전월세 전환율은 최근 금리 인상 여파로 작년 12월 기준 평균 5%로 상승했다.
전월세 전환율은 전세를 월세로 돌릴 경우 월세를 얼마나 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1억원의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경우 4.5%의 전환율을 적용하면 매달 약 37만원을 내야 하지만, 5%의 전환율을 적용하면 41만원을 넘게 내야 한다.
시장 상황이 이렇게 흐르면서 100만원이 넘는 고액 월세 거래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는 지난 3월 6일 보증금 4억원, 월세 190만원(12층)에 월세 거래가 체결됐다. 또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59㎡는 지난 2월 보증금 2억원, 월세 485만원(16층)에 실거래가 체결되기도 했다. 경기도에서도 100만원을 넘기는 월세 거래 사례가 나타났다. 경기도 수원 망포동 ‘힐스테이트 영통’ 전용 84㎡는 최근 보증금 5000만원에 190만원으로 월세 거래가 체결됐다.
이처럼 전세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월세 가격은 오르는데 지난해 말 7%대에 달했던 전세대출 금리가 최근 4% 초반으로 내려온 것도 수요에 영향을 줬다. 특히 3월 2일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부부 합산 소득 1억원 초과 1주택자와 보유 주택 가격 9억원 초과 1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 보증을 허용한 점도 수요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3월부터 전세대출 규제가 완화된다는 소식에 지난 주말 동안 전세 매물을 보러온 손님들이 좀 있었다”라며 “전세 급매물이 소화된 후 호가가 예전보다 조금 오른 상태”라고 말했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월세 대신 전세를 택하는 세입자가 다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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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시장에선 추가 금리 인상 등 변수가 남아 있어 전세 시장이 완전한 회복세로 돌아서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거래량은 몰라도 가격 자체가 반등하긴 쉽지 않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미국 물가상승률이 아직도 높아 앞으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면 한·미 금리 격차가 더 커지기 때문에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과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한은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3.5%로 미국(4.5~4.75%)보다 1.25%포인트 낮다.
특히 예전과 달리 ‘전세 금융화’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사실도 전셋값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매매와 마찬가지로 전세도 빚으로 쌓아 올린 가격이 무너져 내리는 양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533조7000억원이던 주택담보대출이 지난해 10월 기준 794조8000억원으로 49.7% 늘었다. 주택담보대출 중에서 전세대출이 주택 구입 관련 대출보다 훨씬 더 많이 늘었다. 2017년 초 40조원에 못 미치던 대출액이 지난해 10월 170조원을 넘어서며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주택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 초 10% 미만에서 20%를 넘어섰다. 주택 매수를 위한 대출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난 것이다.
이는 통계청의 주택담보대출 용도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보증금 마련 목적이 2017년 7.1%에서 지난해 14%로 두 배로 올라갔다. 같은 기간 주택 매수 목적은 47%로 비슷하게 유지됐다. 게다가 전세대출은 대부분 변동금리이기 때문에 대출금리 움직임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함영진 직방 부동산랩장은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거래량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다”며 “미국의 금리 등 대외적 변수가 여전히 남아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확실한 금리 하락 신호가 오기 전까진 전셋값 반등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손동우 매일경제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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