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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국은 피할 수 있을까?...‘허리’부터 무너진다는 저 나라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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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갤러웨이 지음, 이상미 옮김, 리더스북 펴냄


20세기 인류 최고의 분기점은 제2차 세계대전일 것이다. 1945년 나치와 제국주의 일본이 항복하면서 미국 주도의 새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해 불황에서 빠져나온 미국은 종전을 기점으로 세계 자본주의 엔진으로 부상했다. 이후 80여년간 미국은 나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나침반이었다. 세계는 미국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따라가며 함께 번영의 시대를 맞았다.

매일경제

표류하는 세계


뉴욕대 교수인 세계적인 경영학자 스콧 갤러웨이는 이러한 미국의 번영 신화가 이제 한계에 달했음을 책에서 선언한다. 미국이란 이름의 강력하고 찬란했던 함선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면서도 다음 노선을 알지 못하는 배의 처지가 됐다고 말이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 묻는다. ‘미국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미국이, 그리고 세계가 표류하기 시작했다고 단정하는 이유는 뭘까.

미국인과 이민자들은 각자의 삶에서 자본주의 주인이 되어 아메리칸드림을 현실화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기회, 열심히 일하면 지독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은 개인의 발전을 추동했다 미국의 중산층은 자본주의의 안정적인 중량물, 즉 밸러스트(ballast)였다. 1930~1940년대 태동한 자본주의의 밸러스트들은 각자의 욕망과 사회의 성장을 일치시키며 자라났다. 그들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은 국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위대한 세대’였던 미국 중산층이 붕괴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였다. 40년이 지난 지금의 결과란 이런 것이다. 미국인의 절반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10명 중 1명은 여전히 오염된 수돗물을 마신다. 임금노동자는 40년간 임금이 9% 올랐는데 CEO의 시간당 임금은 120% 상승했다. 미국인 부자 1%가 국가 전체 부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평범한 50%에겐 전체의 2%만이 주어진다. 아메리칸드림은 이제 시간이 갈수록 이루지 못할 희망이 되어가고 있다.

노동의 가치를 둘러싼 일편향적인 인식도 미국의 표류에 한몫을 했다. 이제 실리콘밸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자본주의 신화다. 과거에는 성공이 평범한 사람들의 부단한 노동과 약간의 운으로 이뤄지는 결실이었다. 그러나 이제 성공이란 ‘천재 개인’만이 달성 가능한 영역이 됐다. 임금이 정체된 노동자들은 실리콘밸리 혁신가를 숭배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월스트리트는 교회이고, 나스닥은 예배의식이다. 기회주의적 개인의 성공신화가 대중 의식을 장악하면서 노동의 신성함 따위는 옛말이 됐다.

빗나간 알고리즘은 가뜩이나 균열된 사회 대중을 정치적으로 다시 한번 분열시켰다. MIT가 12만6000개의 트윗의 도달 속도를 측정한 결과 가짜뉴스가 사용자에게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진실이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6배 짧았다. 그 결과, 이제 바이든 지지자 중 5명 중 2명은 ‘정당을 기준으로 나라를 나눌 때’라고 말한다. 미국은 이제 벼랑 끝 기로에 섰다. 미국을 만든 동력인 중산층이 흔들리고 사회는 아메키칸드림 대신 ‘천재 개인’이 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졌으며, 그 사이 거짓이 진실을 뒤엎는다. 어쩌면 디스토피아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도래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단순하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혁신, 다양성의 회복, 사회안전망의 강화, 부패 척결 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저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가 실현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사회가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대한 위기 때마다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정치갈등과 부패, 이기주의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나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나라를 희생시키면서 개인의 영광을 추구하는 국가.’ 이것은 분명 미국의 이야기이지만 저자의 진단은 미국에만 한정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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