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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현장] 뽑을 이사도 없는 KT 주총…“카르텔 청산·낙하산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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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 열었지만 대표·사외이사 모두 사퇴

5개월 안 경영 정상화·자사주 소각 약속


한겨레

31일 오전 서울 우면동 케이티(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케이티 정기주총에서 갑작스레 의장을 맡게 된 박종욱 대표이사 대행이 인사를 하고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제가 지금 (대표 대행을 맡은 지) 4일째입니다. 주주 여러분 답답한 심경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제가 답을 다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31일 오전 9시부터 44분 동안 서울 우면동 케이티(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케이티 정기주총에서 갑작스레 의장을 맡게 된 박종욱 대표이사 대행은 ‘4일째’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썼다. 4개월 동안 차기 대표이사(CEO) 후보가 세번이나 확정됐다가 백지화되면서 주총에 대표이사 내정자를 세우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케이티는 재선임하려던 사외이사들까지 주총 당일 전부 사퇴해, 주주들의 항의 속에 ‘의결사항 없는 주총’을 진행했다.

지난 4개월 동안 민간기업 케이티의 대표 선임에 정부·여당이 개입한다는 ‘관치’ 논란과 기존 경영자들이 문제라는 ‘내부 카르텔’ 논란 속에 표류하던 케이티는 결국 ‘이사 선임’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안건’을 상정하지 못한 채 주총을 열었다. 구현모 대표이사는 연임에 도전했다가 두번의 백지화 끝에 연임 도전을 포기하고 현직 대표이사직까지 사퇴했고, 이어 후보에 오른 윤경림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도 주총을 4일 앞두고 “못버티겠다”며 전격 사퇴했다. 이에 주총 의장을 누가 맡을 것인가부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케이티는 주총 3일 전인 28일에야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사장)이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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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케이티(KT) 정기주총이 열리기 전 건물 앞에서 케이티 전국민주동지회가 “경영은 엉망진창, 연봉은 수십억원, 비리 연루 경영진 퇴진하라”는 펼침막을 들고 집회를 열고 있다. 케이티(KT)전국민주동지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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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이 열린 케이티연구개발센터 앞에는 시작 전부터 여러 구호가 나부꼈다. 케이티전국민주동지회는 “경영은 엉망진창, 연봉은 수십억원, 비리 연루 경영진 퇴진하라” 펼침막을 내걸고 집회를 열었다. 5년 전 주총과 달라진 풍경이 있다면, 동원된 경찰차 숫자가 3대에서 1대로 줄어든 것 뿐이었다. 주총장 안팎에는 정장 차림의 경호인력 수십명이 배치됐다. 특히 주총장 안에서 무대를 등지고 주주들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경호인력의 경우, 충돌 상황 발생 시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되는 맨 앞줄에 여성들을 배치한 것이 눈에 띄었다. 2층에 마련된 주총장 입구에는 1주당 1960원을 배당한다는 배당급 지급 안내판이 펼쳐져 있었다.

3번의 차기 대표이사 후보 선임 백지화와 사외이사들의 줄사퇴 속에 ‘이사 선임’과 관련된 모든 안건은 폐기됐다. 재선임 안건으로 올랐던 강충구·표현명·여은정 사외이사마저 주총 당일 모두 자진사임했다. 이로써 사외이사 8명 중 임기가 남은 1명만 남게 됐다. 이강철·벤자민홍 이사는 대표이사 후보 선임 과정에서 자진사퇴했고, 윤경림 후보 사퇴 뒤 김대유·유희열 사외이사도 사퇴했다.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의 사퇴로 사내이사 선임 안건도 자동 폐기된 상황에서 남은 것은 사외이사 3명의 재선임 안건 뿐이었다. 이마저도 당일 사외이사들의 자진사임으로 폐기돼, 주총에서 정할 이사 선임 안건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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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장 안에서 무대를 등지고 주주들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경호 인력의 경우, 충돌 상황의 발생 시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되는 맨 앞줄에 여성들을 배치한 것이 눈에 띈다.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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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주총이 진행되는 44분 내내 주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일부 주주들은 ‘케이티 적폐 완전청산’이라고 쓴 손팻말까지 들었다. 박종욱 대표대행이 인삿말을 하는 순간부터 객석에서는 “(‘쪼개기 후원’으로 기소된 구현모 대표와 같이) 정치자금법 공범이면서 의장을 맡을 자격이 있습니까”는 외침이 나왔고, 감사위원장을 맡고있는 여은정 사외이사가 간단히 감사보고를 마치자 “경영진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는데 감사에 문제없다는 게 말이 되냐”는 항의가 쏟아졌다. 여 이사는 “감사는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답변했다.

이날 주총에서는 네덜란드 연금투자사 에이피지(APG)가 경제개혁연대와 함께 주주 제안한 ‘자사주 보고의무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정관변경안도 통과됐다. 주총에 직접 참석한 박유경 에이피지 전무(The Asia Pacific head)는 “주주 제안을 받아줘 감사하다”며 “기업들이 자사주로 상호주를 맺을 우려가 있어 자사주 규모가 커질수록 주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데, 케이티가 이번 정관 변경으로 투명한 소통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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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이 진행되는 44분 내내 주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일부는 ‘KT적폐 완전청산’이라 쓴 손팻말도 들었다. 임지선 기자


‘케이티 낙하산 막기’를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개인투자자들을 모아온 이들도 발언에 나섰다. 해당 커뮤니티 관계자라고 밝힌 한 주주는 “카페를 통해 390만주가 모였고, 동참한 개인주주들이 분기 배당, 자사주 소각, 낙하산 방지를 위한 정관 개정, 잇단 사퇴 배경 설명, 2대 주주처럼 구는 현대차와의 관계 설명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박종욱 대표대행은 “(사퇴 배경은) 제가 (대표대행을 맡은 지) 4일 됐는데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다”며 “(요구 사항을) 다음 경영진에 충분히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김미영 케이티 새노조 위원장은 “부끄러운 ‘이권 카르텔’의 대안이 ‘낙하산’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낙하산을 차단하자는 특별결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박 대표대행은 1천억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고, 5개월 안에 회사 경영이 정상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2회에 걸친 임시 주총을 열어 주주들과 더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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