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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군사시설·울릉도行 항구 적힌 대동여지도, 일본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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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간행했던 목판본에 추가 내용 필사한 판본 공개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고산자 김정호(1804~1866·추정)가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새로운 가필본(加筆本)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30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최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환수한 ‘대동여지도’를 공개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 지도를 소장한 일본의 한 고서점이 매도 의사를 밝힌 뒤 자료 검토, 전문가 평가 등을 거쳐 복권기금으로 구매했다.

조선일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대동여지도 환수 언론 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대동여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목록 1첩(帖·묶어 놓은 책), 지도 22첩 등 총 23첩으로 구성된 '대동여지도'를 일본에서 환수했다고 밝혔다./이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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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1첩(帖), 지도 22첩 등 모두 23첩으로 구성됐으며 펼쳤을 때 세로 6.7m, 가로 4m에 이르는 이 지도는 기존 ‘대동여지도’에 없었던 지리 정보가 들어 있는 판본이라 주목된다. ‘대동여지도’는 1861년(철종 12년) 처음 제작·간행됐고 1864년(고종 원년) 재간행된 22첩의 병풍식 전국 지도첩이다. 현재 국내외에 38점의 판본이 있으며, 목판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남아 있다.

이번에 환수된 ‘대동여지도’는 1864년 목판본에 색칠을 하고 원래 지도에 없던 지리 정보를 누군가 추가로 필사한 것이다. 필사된 정보는 1856~1859년 김정호가 편찬한 지도 ‘동여도(東輿圖)’에 실렸던 내용이다.

‘동여도’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판각하기 전 저본으로 삼기 위해 만들었던 지도로, 조선시대의 교통로와 군사시설 등의 지리 정보와 1만8000여 개의 지명을 담은 채색 필사본이다. 우리나라 고지도 가운데 가장 정밀한 지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는 목판으로 새기는 한계 때문에 ‘동여도’의 많은 지명과 주기(註記·지도의 여백에 영토의 역사, 지도 제작법·사용법 등을 적어 놓은 것)를 생략했다.

조선일보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목록 1첩(帖·묶어 놓은 책), 지도 22첩 등 총 23첩으로 구성된 '대동여지도'를 일본에서 환수했다고 30일 밝혔다. 사진은 환수한 '대동여지도' 모습.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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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이번 지도는 ‘대동여지도’와 ‘동여도’가 하나의 지도에 담겨 있는 희귀본이라는 것. 문화재청은 “목판본인 ‘대동여지도’의 한계를 ‘동여도’의 주기 내용을 필사해 보완한 첫 사례로 확인되며, ‘대동여지도’가 보급되면서 변용한 형태로 보인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백두산 일대가 묘사된 제2첩의 경우 종래 ‘대동여지도’ 판본에는 없는 백두산정계비와 군사 시설 사이의 거리가 필사돼 있다. 울릉도 일대가 묘사된 제14첩에는 울릉도로 가는 배의 출발지 등의 내용이 적혀 있는데, 역시 원래 ‘대동여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지리 정보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자료”라고 평가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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