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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일본 퍼주기' 윤석열, 북한에는 '단 돈 1원'도 '퍼주기' 말라? 실제 퍼준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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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에 '퍼주기'를 하지 말라며 "단 돈 1원"도 주지 말라고 통일부에 당부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지난해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거부한 바 있다. 받을 생각도 없는 상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꺼낸 배경을 두고, 북한에 대한 혐오 정서 조장을 통해 지지층의 결집을 이끌어내려는 국내 정치적 수요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비공개 국무회의 중 권영세 장관으로부터 북한인권보고서 관련 보고를 들은 후 "북한 인권의 실상을 공개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도 매우 중요하다. 국가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기 떄문"이라며 "통일부는 앞으로 '북한 퍼주기'는 중단하고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선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은 사실과 다른 측면이 있다. 2022년 정부는 당국 차원에서 북한에 1원도 준 적이 없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남한에서 북한으로 반출된 대북지원은 7건 23억 6000만 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모두 민간단체에서 실시한 지원이었다. 중단해야 할 '퍼주기'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 정부 중 가장 많이 퍼준 정부는 이명박 정부

'퍼주기'라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국가통계인 '인도적 대북지원 현황 총괄'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남한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수십만 톤의 식량이나 비료 등 대규모의 지원은 고사하고 2018년 한 해를 빼고 직접 지원한 적이 없다. 2018년의 경우 12억 원의 직접 지원이 있었으나 이는 산림병충해를 막기 위한 약제였다.

물론 정부가 국제기구나 민간단체에 기금을 지원하고 이 기구나 단체가 북한에 지원함으로써 우회적인 지원도 가능하나, 이 역시 이명박 정부 이후로 그 규모가 계속 축소돼왔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첫 해에 438억 원을 정점으로 2009년에는 294억 원으로 축소됐고 2010년의 경우 당국차원의 지원이 183억 원, 민간단체 기금 지원이 21억 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2011년 이후로는 200억 원을 넘겨본 적이 없다.

2011~2014년은 국제기구를 통해서만 지원이 집행됐는데 11년 65억 원, 12년 23억 원, 13년 133억 원, 14년 141억 원 이었다. 2015년의 경우 민간과 국제기구 합해서 140억 원을 지원했고 2016년에는 2억 원에 불과했으며 문재인 정부 집권 첫 해인 2017년에는 윤 대통령의 말대로 '1원'도 지원되지 않았다.

이후 2018년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 다른 지원은 없었고 2019년 106억 원, 2020년 125억 원, 2021년 5억 원 등으로 이명박 정부 시기의 지원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대통령실 및 정부 주요 인사가 이명박 정부 때 인사들로 채워져 사실상 이명박 정부 시즌 2의 인상이 강한 현 윤석열 정부에서 북한에 '퍼주기'를 하지 말라고 하지만, 정작 지난 세 정부 중에 가장 많이 북한에 '퍼준' 정부는 이명박 정부였다.

이명박 정부 때는 북한의 핵이 지금처럼 고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이 가능했던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의 1차 핵실험은 2006년, 2차 핵실험은 2009년이었다. 핵이 고도화되지 않았을 뿐, 핵과 관련한 이슈가 아예 없었던 시기는 아니었다. 결국 윤 대통령이 "'북한 퍼주기'는 중단"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중단할 '퍼주기'가 없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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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윤석열 정부의 '지원' 진작에 거부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공허한 또 다른 이유로 이미 지난해 8월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이 본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지원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김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담대한 구상'으로도 안된다고 앞으로 또 무슨 요란한 구상을 해가지고 문을 두드리겠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며 "북남문제를 꺼내들고 집적거리지 말고 시간이 있으면 제 집안이나 돌보고 걱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담대한 구상'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밝힌 내용으로 북한이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에 맞춰 대규모 식량 공급, 발전 및 송배전 인프라 지원, 항만과 공항 현대화 프로젝트 등 각종 지원을 실행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북한은 '담대한 구상'에 대한 거부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상황을 포함한 제반 여건과 연계시켜 거부하곤 했다. 가장 최근인 2020년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에는 사실상 외부로부터의 물자 반입을 차단시켰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의 경우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구실로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을 거부했으며 2014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한동안 지원을 받지 않았었다.

이처럼 북한은 외부의 지원, 특히 '인도적' 지원에 대해 여러 조건을 붙여 수령 여부를 판단해 오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정부가 '퍼주기'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도, 윤석열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북한이 이를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예측이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 이후 남한 정부가 북한에 '퍼주기'를 한 적도 없고, 현재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남한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도 극히 낮은 상황에서 뜬금없이 등장한 윤 대통령의 '퍼주기' 발언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지지층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국내 정치적인 수요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확정 판결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일본에 '퍼주기'를 하고, 1주 최대 노동시간 관련해 오락가락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지지율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윤석열 정부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북한 혐오'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는 분석이 타당해 보인다.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주장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 또는 원칙과 배치되지 않는지 정도는 살펴보고 말하는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의 발언을 실시간 '팩트 체크'하면서 검증했던 미국 언론사들의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다. 이건 국격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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