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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라비의 허위 뇌전증 적발한 이들…어떤 꼼수도 잡아내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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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현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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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뇌전증 진단 수법으로 병역을 회피했다는 혐의를 받는 가수 라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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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허위 뇌전증 병역비리’ 스캔들의 당사자와 가담자들이 지난 13일 대거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병역면탈을 하도록 유인한 브로커 2명을 비롯해 래퍼 라비,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 배우 송덕호 등 병역면탈자 108명이 기소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가를 받고 목격자 행세를 하는 등 범행을 적극 도운 가족과 지인 20명도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이번 병역면탈 사건, 어떻게 발각되었나요?

이번 사건은 전문화, 지능화, 조직화된 범죄였습니다. 과거엔 고의로 체중조절을 하는 등 개별적으로 병역면탈을 시도했다면 이번엔 브로커가 인터넷을 통해 대상자를 접촉, 병역면탈 방법을 알려주는 등 병역면탈을 기획‧조장했습니다. 또 뇌전증 환자로 가장하는 방법도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언뜻 완벽해 보였던 이들의 범죄는 병무청에 “지인이 군 출신 행정사에게 돈을 주고 뇌전증 질환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을 전수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제보가 접수되면서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수사기관이 아닌 병무청이 바로 수사를 할 수 있나요?

병무청에는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있습니다.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에는 특별사법경찰권이 있는 정부기관과 수사범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라 병무청은 병역법에 규정된 병역 기피‧감면 목적으로 신체손상이나 속임수를 쓴 행위에 관한 단속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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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뇌전증 진단을 알선하고 1억 원이 넘는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병역 브로커 김모씨.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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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경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수사했나요?

뇌전증이 그동안 없었던 신종 수법인 점을 고려해 뇌전증 학회, 병역판정검사 전담의사의 자문부터 받았습니다. 뇌전증 진단방법과 최근 뇌전증 병역처분 현황 등 자료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전문의조차 뇌전증 진단서가 진짜인지, 허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러한 질병의 특성상 다수의 병역의무자가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판단했고, 검찰과 협력해 브로커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통해 최대한 많은 증거를 수집해 병역면탈 관련자 130명을 적발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결국 이번 병역면탈 사건에서 병무청 특사경의 최초 수사가 중요했네요.

맞습니다. 병무청 특사경은 2012년 도입됐고, 40명의 적은 인원으로 올해 3월까지 717명의 병역면탈자를 적발했습니다.

특사경은 그동안 쌓은 수사 노하우, 병무청만의 병역판정검사 빅데이터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활용한 월별, 질병별, 검사과목별 데이터를 분석하면 병역면탈 이상 징후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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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병무청


◇완벽해보였던 꼼수지만 특사경이 잡아낸 사례가 있나요?

지난해 인천에서 자동차 매매업을 하는 4명의 지인들이 병역을 감면받을 목적으로 우울‧충동조절장애‧대인기피 등의 거짓 증상을 호소해 병무용진단서를 발부받아 병역을 감면받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현역병 복무를 피하고 계속 돈을 벌기 위해 정신질환 위장 방법을 서로 공유하며 같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여자친구도 범행에 가담했었는데요.

특정지역에 같은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병원에서 발급받은 진단서로 병역감면을 받은 사실을 이상하게 여긴 특사경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동차 매매업을 할 수 있겠으며, 이들은 병역감면을 받은 후에는 정신질환 치료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보통 병역감면을 받으면 많은 이들이 ‘이제는 끝났다’ 생각하지만, 병무청 특사경은 이후에도 추적‧관찰합니다.

◇이런 병역면탈 행위의 처벌 수위는 어떻게 되나요?

병역법 제86조에서는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도망가거나 행방을 감춘 경우 또는 신체를 손상하거나 속임수를 쓴 사람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처벌받은 후에는 다시 신체검사를 받아 그 결과에 따라 군에 입대해야 합니다.

병역의무는 공정하게 부과되어야 합니다. 이전에는 병역면탈을 위해 문신을 하거나 고혈압 등을 위장하는 등의 수법이 주로 이용됐으나 최근에는 42종의 신종수법이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병무청 특사경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특사경 관계자의 말을 대신 전해드립니다. “병역면탈은 언제든지 적발되어서 처벌받습니다. 꿈도 꾸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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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DB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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