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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책&생각] 프랜시스 후쿠야마, ‘절제된 자유주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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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승리 선언했던 ‘역사의 종말’ 저자 후쿠야마,

브렉시트·트럼프의 당선 등 자유주의 위기 해법 내놔


한겨레

자유주의와 그 불만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이상원 옮김 l 아르테 l 2만4000원

프랜시스 후쿠야마(71)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미국 정치학자다. 그 책에서 후쿠야마는 1990년대 초 냉전의 종식과 소련의 해체로 공산주의 대 자유주의의 싸움이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로써 이념 투쟁의 역사가 사실상 종말에 이르렀다는 논쟁적인 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후 역사는 자유주의 이념의 승리가 자유주의 체제의 위기를 종식시킨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후쿠야마의 관심도 자유주의 체제의 결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로 쏠렸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자유주의와 그 불만>은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나온 저작이다. 오늘날 자유주의가 그 본디 이상에 부응하지 못한 탓에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급진주의의 도전으로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고 이런 도전을 이겨내고 자유주의 이념을 진전시킬 방도를 찾는 것이 이 책이다.

후쿠야마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유주의를 ‘고전적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이 자유주의는 미국식 중도좌파 이념과 유럽식 중도우파 이념을 포함해 역사적으로 전개돼온 자유주의 전체를 아우른다. 그 자유주의 이념은 17세기 홉스-로크의 정치사상으로 등장해 18세기 프랑스혁명으로 ‘생동하는 이념’이 됐으며, 20세기에 민족주의‧공산주의 같은 경쟁 이념을 물리치고 지배적 이념으로 올라섰다. 이 책은 자유주의 이념의 근본 특성으로 개인주의‧평등주의‧보편주의‧개량주의를 든다. 이 자유주의는 현실에서 ‘법의 지배’ 아래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규칙들의 체계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그 자체만으로는 불완전한 것이어서 민주주의 곧 ‘인민의 지배’와 손을 잡고 ‘자유민주주의’로 자신을 구현했다. 이때의 자유민주주의는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포괄한다.

이 책은 자유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 현실적 힘들을 분석하는 데 논의를 집중한다. 이 힘들은 자유주의에서 태어났으나 스스로 극단으로 치달음으로써 자유주의 자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후쿠야마가 먼저 지목하는 것이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소유와 거래의 자유’라는 자유주의 원칙을 절대화한 경제사상이다. 이 경제사상은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자유를 신봉한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복지국가의 해체를 주장한다. 하지만 후쿠야마는 삶에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도 있으며 그런 상황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자유주의 신념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복지국가야말로 자유주의 이념의 구현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국가의 엄격한 규제 속에서만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로 신자유주의는 거대한 불평등만 남긴 채 자멸의 길을 가고 있다. 후쿠야마는 신자유주의 폐해가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과 미국의 트럼프 당선이라는 포퓰리즘의 반발을 낳았으며, 이 포퓰리즘이 자유주의를 위기로 밀어 넣는다고 말한다.

우파 자유주의의 극단화가 낳은 재앙이 신자유주의라면, 좌파 자유주의의 극단은 ‘정체성 정치’의 오류로 나타난다. 후쿠야마는 정체성 정치가 애초 자유주의의 약속, 곧 모든 인간의 존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이행하려는 노력의 결과임을 먼저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유주의 사회는 이런 (보편적 평등의) 사상을 실현하는 데 처참하게 실패했다.” 인종‧민족‧성차에 따른 차별은 자유주의 사회에 엄존한다. 정체성 정치는 특수한 집단의 정체성을 앞세워 이 절망적 사태를 바꾸려고 한다. 문제는 정체성 정치가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진화했다는 데 있다. 모든 인간의 보편적 평등이라는 자유주의 이념을 일종의 사회적 기만으로 보고 자유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질주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주의 아이디어들이 스스로 붕괴하는 지점까지 확장되는 것을 목도한다.” 정체성 정치의 급진화가 자유주의의 자기파멸을 부른다는 얘기다.

후쿠야마의 정체성 정치 비판은 좌파 급진주의의 탈근대사상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탈근대철학의 위험은 자유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과학적 합리주의’를 부정하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과학적 합리주의는 인간이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객관적 사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통해 세계를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일군의 학자들이 주장한 탈근대사상은 그런 인식의 객관성 자체를 문제로 삼았다. 자유주의가 가정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이라는 것이 결국은 유럽 백인 남성의 특수한 인식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객관적 인식이라는 이름 아래 인종주의‧가부장주의‧이성애주의‧서구중심주의가 관철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앞 시대 철학자 니체인데, 니체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해석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결국 “아무것도 사실이 아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의 황무지’를 열어놓는다. 더 나아가 니체는 인간의 ‘권력의지’를 모든 가치를 재는 척도로 제시했는데, 이런 상대주의적 태도가 극단화하면 권력투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그런 사태의 결과 가운데 하나가 극우파 정체성 정치의 부상이다. 백인 국가주의자들은 급진 좌파의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모방해 과학적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음모론으로 몰아가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런 잘못된 인식 위에서 백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유색인들이 빼앗을 것이라는 공포 속에 자유주의 사회를 거부한다. 객관적 기준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권력의지’의 싸움이 되는 전쟁상태로 내달리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낳은 좌우의 극단주의는 자유주의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자기파멸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후쿠야마는 자유주의가 지켜야 할 마지막 원칙으로 고대 그리스 금언 ‘메덴 아간’(meden agan) 곧 ‘무슨 일이든 도를 넘지 말라’를 제시한다. 요컨대 ‘절제’(moderation)야말로 자유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원리라는 얘기다. 이 절제를 바탕으로 할 때만 자유주의가 인간의 보편적 평등과 존엄을 보장하는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는 충고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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