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책 100권보다 양육이 위대하다” ‘냉정과 열정 사이’ 작가 [책&생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작가 쓰지 히토나리가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신작 <한밤중의 아이>로 한국 독자와 만난다. 사진 본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양윤옥 옮김 l 소담출판사 l 1만4800원



한겨레

일본 연애소설의 ‘본좌’라 할 <냉정과 열정 사이> 작가 쓰지 히토나리(64)가 내놓은 장편의 제목은 <한밤중의 아이>다. 쓰지를 붙드는 수식은 길다.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소설가, 영화감독, 록밴드 보컬…. 이달 국내 출간된 신작이 아동학대를 주제 삼았다는 점은 작품 넘어 여러 궁금증을 부른다. 최근 전자우편을 통해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그와 만났다.

―일본 내 심각한 사회 문제로서 착안하게 된 것인가.

“직접 모델이 된 사건이 있진 않다. 최근 10년 정도 엄마에 의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들이 계속됐다. 모성 부재의 행동에 시대적 암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호적 아동’도 보도로 접했고 취재를 할수록 작품을 출간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

소설의 주인공은 유흥가 나카스를 배회하는 사내아이 렌지와 관할 경찰 히비키. 렌지가 다섯살인 2005년, 그리고 10여년 만에 같은 동네에서 둘이 재회하는 2016년이 배경이다. 룸살롱 여성의 아이가 호적에 등록도 안 된 채 자라되, 바람 잘 날 없는 동네의 보잘것없는 구성원들로부터 돌봄도 받는 뜻밖의 전개가 두 시점대를 건너며 과연 지속될까 소설은 좇는다.

―거주하는 프랑스는 어떤가.

“여기도 학대는 있다. 다만 이웃이라도 아이들의 비명이 들리면 달려와 괜찮냐 안부를 묻는다는 게 크게 다르다. 못 본 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해결책으로 이어진다. 폐쇄적 사회라면 학대를 꿰뚫어보기 어렵다. 열린 사회가 아이들을 보호한다.”

쓰지에 관한 긴 수식엔 영화 <러브레터>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의 전 남편, 헤어지고 둘의 아이를 키우는 싱글대디도 있다.

―소설 창작에 자녀가 미친 영향이 있을까.

“10년 전 이혼하고 싱글파파가 돼 초등학생 아이를 프랑스에서 혼자 양육하게 되었다. 일을 줄이고 하루 세 끼 식사를 준비했다. 도시락을 만들고, 배구부였던 아들의 개인코치도 해줬다. 반항기엔 서로 뒤엉키는 싸움도 있었다. 그 아이도 지금은 원하던 대학의 대학생이 되었다. 그사이 코로나19도 찾아왔고, 세 번의 지역 봉쇄를 경험하며 아들의 불안을 떨치기 위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 아이만은 훌륭하게 키우지 않으면 제 자신도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동학대 주제는 아이를 사랑하는 저의 모성이 저의 부성을 부추긴 결과다.”

그는 부모가 되기 전엔 “야심 많은” “워커홀릭”이었다고 했다. 이젠 “100권의 책을 쓰는 것보다도 제대로 된 양육이 더 위대한 일”이라 말한다.

―아이를 가진 뒤 작가로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음… 그건 말이죠,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와 같은 작품을 다시 읽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하하.”

소설에서 가장 기묘한 구실은 유흥가 동네의 지역축제(하카타 기온 야마카사)에 주어진 듯하다. 렌지의 꿈은 야마카사 신여(상여)를 떠메는 하얀 샅바의 어른들. 쓰지는 이 상징성을 두고 “하카타는 부산에서 가까운 후쿠오카에 있다. 야쿠자가 많지만 축제가 남녀노소 힘을 합칠 수 있도록 한다.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을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풀이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은 어느 대륙, 어느 도시서든 진리인 모양이다.

현재 쓰지는 개인 웹매거진(‘디자인 스토리즈’)을 운영 중이다. 양육, 요리, 삶의 고민, 파리 정보 등을 위트 있게 나눈 덕에 월 방문수(PV)가 1천만에 달한다고 한다.

길고 긴 수식 가운데 쓰지가 가장 반기는 정체성은 무엇일까. “음악이 가장 즐겁습니다. 파리의 ‘올랭피아 극장’에서 5월29일 라이브를 엽니다. 비틀스, 에디트 피아프가 섰던 역사적인 뮤지컬 극장(2000석)이에요. 라이브를 성공시키기 전에는 작가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쓰지의 에너지가 렌지도 살린 것이다. 소설을 보면 안다.

이 소설은 쓰지가 영화로도 만들었다. 코로나로 중단됐다 <나카스의 아이>란 제목으로 최근 완성했다. 그의 10번째 작품. 한국서 상영해줄 영화제는 없는지 <한겨레> 독자에게 물어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속보] 탈출한 얼룩말, 3시간 자유 끝…다시 동물원으로
▶▶꽃피는 봄, 한겨레의 벗이 되어주세요 [후원하기]▶▶마음 따뜻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모아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