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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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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식 클래식 29년...국악관현악, 어제와 오늘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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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국립국악관현악단 ‘탐하고 탐하다’

최다연주곡 톱3 박범훈·김대성·황호준

대표 레퍼토리·신작 어우러지는 무대로

헤럴드경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탐하고 탐하다’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작업이 공존하는 무대다. 이 공연에 참여한 한국음악을 대표하는 박범훈(왼쪽부터), 김대성, 황호준 등 세 작곡가는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음악”이라고 강조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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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치면 ‘MZ세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29년은 지난한 개간사업이었다. 스물아홉 해 동안 척박한 ‘음악적 토양’을 가꾸기 위해 부지런히 토대를 다졌다. 전통 위에서 동시대와 호흡할 ‘창발성’을 가진 작곡가를 발굴하고, 역량있는 지휘자들과 호흡했다. 이를 통해 실험과 파격이라는 거름을 줬다.

시간의 역사 속에 음악이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시간 동안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해왔다. 그 과정에 악단이 위촉한 ‘국악관현악’ 작곡가들이 있다. 작곡가를 발굴해 신작을 개발하고, 시대성을 담은 공연을 올리며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그 중심에 있는 작곡가가 악단의 초대단장을 지낸 박범훈(75)과 김대성(56), 황호준(51)이다. 세 사람과 함께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오는 31일 ‘탐하고 탐하다’(국립극장 해오름) 무대를 올린다.

공연이 흥미롭다. 지난 2012년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제 도입 이후 무대에 오른 공연 중 ‘연주 횟수 톱3’에 드는 작곡가들의 곡과 이들의 신작이 어우러지는 무대다. 서로 다른 세대의 작곡가들이 만든 국악관현악의 어제이면서 오늘이자 내일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담긴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황호준은 “그 시절 가장 첨예했던 창작의 에너지가 응축된 곡들 중 시간을 쌓아 반복해, 당대의 현재와 끊임없이 만나게 하는 작업”이라며 “우리식 클래식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성찰이 담겼다”고 말했다.

▶ 3인 3색 ‘신작 열전’= “작곡은 자기의 생각을 소리로 쓰는 소설이에요. 이야기를 소리로 만드는 거죠.” (박범훈) 오선지 위해 적힌 소설엔 작곡가 개인의 역사가 담긴다. 박범훈은 “음악을 만드는 것은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유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내 안에 가진 것이 나오는 작업”이라는 의미다.

신작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각기 다른 세 작곡가는 저마다의 유산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세 작곡가의 신작은 이들이 꾸준히 탐구해온 지난 음악의 확장판이자, 지금 추구하는 음악의 완성본이다. 박범훈은 스스로가 ‘국악관현악의 역사’다. 무수한 시간을 함께 하며 실험하고 도전했다. 그 과정에서 한계에 직면했고, 그럼에도 ‘국악 대중화’의 꽃을 피웠다. 태동과 번성을 함께 했고,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야 하는 지금 그는 “국악관현악은 국악관현악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국악관현악의 본질과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것이 원로 작곡가가 제시한 방향이다. 이런 고민과 함께 “사물놀이, 춤, 합주 등 가무악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국악관현악만의 특징을 바탕으로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최초’로 썼다. 박범훈이 꾸준히 이어온 작업에 바탕을 두고 있기도 하다. 작품의 제목인 ‘가기게’는 해금의 가락을 구음으로 표현한 소리다.

꾸준히 우리 역사를 탐구해온 김대성은 이번엔 구한말로 향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서 영감을 받은 교향시 ‘동양평화(東洋平和)’다. 이 곡은 국악관현악 사상 가장 인상적인 출발로 남을 만한 곡이다. ‘동양평화’는 7발의 총성으로 시작한다. 새로운 형식의 시도가 ‘미래지향적’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영화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15분 40초 분량의 교향시는 이토 히로부미를 마주한 하얼빈 역에서의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다. ‘고민의 해답’을 찾으며 곡 작업도 마무리 됐다. 무겁고 진중한 역사이나 그는 “곡은 발랄하고 흥미진진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대장간의 합창처럼 총소리가 울리고”, 한국의 아리랑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의 민요를 차용해 음악을 풀어갔다. 메시지도 명확한 곡이다.

“역사를 기억하고 반추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는 반복된다는 점을 마주하게 됐어요. 이 음악이 애국심을 고취하면서도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이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어요.” (김대성)

황호준의 음악은 ‘요즘 국악관현악’이다. 그는 “조금 더 사적 작업으로 깊이 들어가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른 결”인 신작 ‘에렌델’을 내놓았다. “별이 잘 보이는 집에서 바라본 밤하늘에서 발견한 희미한 별 하나”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렌델’은 고대어로 새벽별, 떠오르는 빛을 의미한다.

“어느날 나사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별 중 가장 오래된 별이 발견됐다는 뉴스를 보게 됐어요. 지구에서 129억 광년 떨어진 최장거리의 별이죠. 밤하늘엔 지금에야 빛이 도달하지만, 이미 생명을 다해 사라진 별도 보여요. 불교에서 말하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상태인 거죠.” (황호준)

눈앞에 있지만, 사라진 별을 마주하며 ‘시간의 개념’을 고찰했다. 우주의 탄생 과정에서 생성되고 소멸된 별의 이야기에선 “다이내믹의 극단적 대비”는 물론, “소리의 잔잔한 기운을 통해 고요라는 사태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 지금, 이곳의 이야기...“모든 것이 오늘의 음악”=신작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세 작곡가는 각기 다른 고민을 안고 있었다. 고민의 방향은 달랐지만, 그 안에서 공통점이 발견됐다. ‘지금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켜켜이 쌓인 어제 속에서 ‘지금의 오늘’을 꺼내놓는다.

완성된 신작에선 세 명의 작곡가가 바라보는 ‘오늘의 국악관현악’을 만나게 된다. 각 세대의 작곡가들은 국악관현악의 정체성(박범훈)을 고민했고, 주제의식(김대성)을 발현했고, 음악의 본질(황호준)에 더 깊이 다가섰다. 박범훈은 “세 작곡가의 곡에선 저마다의 시대성을 만나게 되는 재밌는 경험이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탐하고 탐하다’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작업이 공존하는 무대다. 세 작곡가는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음악”이라고 강조한다.

황호준은 “우리의 모든 작업이 지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50년 전의 음악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메뉴를 만들어 듣는 것”이라며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에 살고 있고, 작곡가든 연주자든 그 시점에 첨예했던 것을 최선을 다해 담아내면 그것이 예술행위의 총체적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70대의 박범훈도 50대의 김대성과 황호준도 지금의 작품을 쓴 거예요. 이것이 내일이면 미래가 되는 거죠. 과거의 곡을 지금의 곡으로 인정한다면 그것이 생명력을 가진 거라고 봐요. 우리는 지금의 음악을 썼으니, 국악관현악도 여기에서 시작하면 돼요. 이 곡들이 관객들과 호흡해 오래오래 ‘오늘의 곡’으로 연주된다면, 그 안에서 과거와 미래를 읽을 수 있을 겁니다.”(박범훈)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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