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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 물류센터에 고령 근로자 많다더니…‘이것’ 노린 차명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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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검사에 타인명의 근무
실업급여 부정수급 온상으로


매일경제

분주한 물류단지. 기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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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 업계 인력난이 심화하면서 일부 물류 창고 업체들이 인력 수급을 위해 ‘차명근무’를 통한 내국인 불법고용을 눈감아주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같은 불법 차명근무로 업체와 근로자 모두 세금을 피해가고 실업급여 등 각종 정부 지원금을 부정 수급할 수 있어 국고가 줄줄 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일부 물류창고에서는 업체측이 근무자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차명으로 근무하려는 이들을 채용을 하는 관행이 암암리에 널리 퍼져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차명근무를 하는 근로자들은 가족이나 지인의 신분증을 사용해 업체측과 계약을 맺는 것으로 파악됐다. 원칙적으로는 일용·단기 근무자라 하더라도 근무자 본인 명의의 신분증을 제출한 뒤 그 명의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인력난에 근무자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구인이 시급한 업체들이 최대한 많은 이들을 모으기 위해 차명근무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물류 센터는 인원 맞추기에 급급해 차명근무를 눈 감아 주고 있다”며 “근무자 본인의 신분증이 아니라 타인 명의 신분증을 가져가거나 폰으로 타인의 신분증 사진만 보여줘도 고용하고 있다”고 귀뜸했다.

물류 업계에서 차명 근무가 성행하는 이유는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의 요구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차명근무를 한 경우 대부분 현금으로 일당을 당일 지급하거나 명의를 빌린 이의 통장으로 돈을 받는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근로기준법을 피해 인력을 자유롭게 고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근로자의 약점을 빌미 삼아 각종 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불법을 눈감아 주는 업체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은 주52시간제를 준수해야 하며 월 8일 또는 월 60시간(8회 출근 시) 이상 근무 시 4대 보험에 필수로 가입해야 한다. 업체는 각종 야간·연차·퇴직 수당 등도 지급해야 하지만 차명근무 시 이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류업체 관계자는 “업체는 각종 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해 차명근무를 명목으로 근로자와 5일 단위 쪼개기식 계약을 체결하면서 근로비 지출을 줄이는 꼼수를 쓰곤 한다”고 전했다.

국세청의 눈을 피해 소득을 챙길 수 있어 근로자들이 차명 근무를 먼저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실업급여 등 각종 정부 수당을 받고 있는 이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어 이 방법을 선호한다. 처음에는 본인 명의로 근로 계약을 맺은 뒤 실업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기간을 채우면 회사를 그만둔 것처럼 서류를 만들고, 이후에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가족이나 지인 명의를 빌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식이다.

매일경제 취재 결과 물류센터에서 근무하기 힘든 나이가 많은 근로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부모의 명의를 빌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 물류센터에 기자가 직접 ‘차명근무 가능 여부’에 대해 문의한 결과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실업급여 수급자의 경우 근로를 통해 돈을 벌었거나 현금으로 돈을 받았어도 신고해야 하며, 이 경우 월 9일까지만 근로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월 60시간 이상(주 15시간 이상 포함) 혹은 3개월 이상 계속 근로하고, 월 80만원 이상 계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실업급여를 받으면 부정수급 대상자가 된다. 하지만 차명 근무를 하면 이같은 제한에서 모두 자유로울 수 있다. 불법 고용이 정부 지원금 부정수급자 적발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했던 적이 있다는 A씨(29)는 “가족 가게에서 일한척 하고 몰래 실업급여를 3달 정도 탔던 적이 있다”며 “4대 보험과 소득신고만 안 하면 되니 조금만 신경써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물류 업계의 이 같은 관행이 부정수급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실업급여 부정수급은 2013년 2만1735건에서 2022년 2만3907건으로 늘었다. 부정수급액은 같은 기간 117억900만원에서 269억1000만원으로 더 큰 폭으로 증가하며 환수율이 89.29%에서 72.08%로 감소했다. 물류센터 차명 근무는 ‘실업급여 부정수급 안 걸리는 방법’으로 수급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공유되고 있어 실제 적발되지 않은 건수와 금액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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