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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48] 가끔은 내 감정을 감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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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큐에 출연한 외국인 인터뷰 중에서 ‘브레인워싱(brain washing)’, 즉 세뇌(洗腦)당했다는 내용을 접했다. 세뇌 기법을 구어체로 써 본다면 ‘너의 잘못된 마음의 생각을 씻어내고 내가 제안하는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해. 그것이 새로운 기회와 성공을 가져다 줄 거야. 다른 사람 이야기엔 귀 기울이지 마. 너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야. 나만 바라봐’ 같은 메시지가 예가 될 수 있다.

취약해진 마음의 공간에 반복적으로 특정한 사고(思考)의 틀이나 가치를 주입하고, 현실 검증의 힘이 떨어지도록 주변 네트워크와 단절시킨다. 여기에 정서적, 경제적 보상 또는 반대로 협박과 폭력 같은 위협과 공격적 행동이 동반된다.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의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 군사적 목적으로 세뇌하기 위해 고문, 마약 같은 기법을 동원했다는 어두운 기록도 있다. 최근 자주 듣는 ‘가스라이팅’이란 단어도 일종의 세뇌라 볼 수 있다.

가끔은 내 감정(感情)을 감정(鑑定)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부정적인 프레임을 계속 주입하고 자신에게만 의존하라는 식의 존재가 가까이 있다면, 그래서 분노와 의존 등 이중적 감정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혼자 고민해서는 빠져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 먼저 믿을 수 있는 조언자를 찾아가야 한다. 여러 조언자가 내가 믿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한다면 용기를 내 과감히 절교해야 한다. 물리적 관계 정리가 당장 어렵다면 우선 심리적 의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타인이 아닌 내가 혹시 ‘스스로 세뇌’하지 않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삶을 잘 꾸려 나가려면 마인드 컨트롤을 연습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과도한 마인드 컨트롤은 지나친 마음 에너지 소모로 긴 번아웃인 슬럼프를 일으킬 수 있다. 셀프 세뇌를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마음 관리의 중요한 흐름이 감정과 거리들 두는 시간과 여유를 갖자는 것이다. 슬프면 슬픈 대로, 허무하면 허무한 대로, 감정을 너무 가두지 말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도록 놓아 주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부정적 감정도 삶에 가치가 있다는 느낌으로 바라보고 버티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내 감정을 스스로 감정해 보는 것도 동시에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항상 즐거운 행복’이나 ‘실수가 없는 완벽’ 같은 실현 불가능한 틀로 내 마음을 가혹하게 조정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무기력감이 전 지구에 번지는 상황이다. 내 마음을 친구처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안아 주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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