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연진이 임지연 “끝까지 미움받고 무너져가는 악역 어렵더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더 글로리’ 연진 역 맡은 임지연 인터뷰

“캐릭터 연구나 연기 톤 만드는 데 많은 준비”


한겨레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 역을 연기한 임지연.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의 결말은 여느 복수극의 응징과 다른 차원의 길을 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 글로리>는 걸작이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은 성취에 도달했다.

감옥에 갇힌 연진에게 동은(송혜교)이 찾아와 ‘아무 것도 몰라서 억울할 것’이라고 흘리자 비로소 연진은 완전히 무너진다. 감옥에서 법적 처벌을 받거나 보복의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가혹한 형벌, 의심과 답답함, 분노와 억울함, 헛된 희망과 절망의 회로가 무한반복되는 마음의 지옥이 시작되는 것이다.

연진을 연기한 배우 임지연 역시 이 마지막 장면을 찍으면서 “이전의 악행 연기할 때와 달리 내가 무너지는 걸 느꼈다”며 “연진이를 연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연진이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1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임지연을 만났다. <더 글로리>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연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인터뷰 현장은 수십여 매체들로 북적이며 기자회견장을 방불케 했다.

한겨레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 역을 연기한 임지연. 넷플릭스 제공


임지연은 첫 촬영을 하며 김은숙 작가한테 “난 연진을 미화할 수 있는 어떤 서사도 부여하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용서받고 달라지고 그런 악역이 아니라 끝까지 세상 사람들이 미워하는 악역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실제로 <더 글로리>의 서사가 힘있게 굴러가는 주요 동력은 연진에게서 나온다. 임지연은 “연진이 제대로 해야 동은이 하는 복수에 설득력이 생겨나고 시청자들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캐릭터 연구나 연기 톤을 만드는 데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고 했다.

극중에서 연진과 동은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자리만큼이나 ‘톤 앤 매너’에서 정반대되는 캐릭터다. 검고 장식 없는 옷만 입는 동은은 어떤 상황에서도 건조하고 차가운 억양으로 말한다. 반면 명품으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연진은 노골적이고 뜨겁다. 둘 다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함정이 있다. 임지연은 “욕도 친구들한테, 동은이한테 쓰는 욕을 조금씩 다르게 연기하려고 했고 담배도 혼자 열받아서 피울 때, 남편 앞에서 피울 때의 디테일을 고민했다”고 한다. 덕분에 소셜미디어에서는 연진의 욕 장면, 흡연 장면까지 화제가 되면서 <더 글로리>의 잔재미도 한껏 끌어올렸다.

한겨레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 역을 연기한 임지연. 넷플릭스 제공


연진은 흔한 복수극들이 막판에 억지스럽게 내놓는 반성이나 후회를 하지 않고 일관성 있게 이기적인 선택들을 하면서 도리어 우리가 사는 현실에 가까워지는 핍진성을 획득한 캐릭터다. 하지만 <더 글로리>에서 연진의 마음을 흔드는 이가 단 한명 있다. 남편 하도영(정성일)이다. 동은에게 말하는 것처럼 “그림 좋은 남편”을 골라 원하는 삶을 채우려 했지만 연진은 어느 순간 남편을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런 남편이 동은을 만나자 자존심이 산산조각난다. “연진이가 유일하게 변화를 겪게 되는 게 도영과의 관계에서예요. 이 변화는 도영에 대한 일종의 리액션인 셈인데 미묘하게 연진이가 무너져가는 걸 연기하는 게 어려웠어요. 작가님에게 가장 많이 질문을 던진 게 도영과 함께 했던 씬들이었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이 엄마가 된 이후까지 연진이 꾸준하게 저지른 못된 행동들 가운데서도 가장 못되게 느껴진 장면이 무엇인지 질문이 나오자 임지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골똘하게 생각에 빠졌다. “못되지 않은 장면이 없어서” 고르기가 어렵다고 웃으며 입을 연 임지연은 “현남(염혜란)의 집을 찾아갔을 때”라고 답했다. “연진이 ‘오늘 남편 일찍 오겠네요’ 말하고 나가는 장면을 티브이로 다시 보니 정말 나빠 보이더라구요.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악마처럼 긴 머리를 쫙 피고 립스틱도 옷차림도 진한 느낌으로 무섭게 연출했어요. 연진이 나간 다음에 현남이 귀가한 남편한테 맞는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쏟아졌지만 연진이가 정말 나쁘게 보여서 만족스럽기도 했어요.”

한겨레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 역을 연기한 임지연. 넷플릭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기를 전공한 임지연은 2014년 영화 <인간중독>에 캐스팅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중독>에서 시작된 연기력 논란은 자주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시청자 모두가 “연진아~”를 부르며 <더 글로리>를 통해 배우로서 가장 큰 ‘영광’일 연기력 칭찬을 마침내 듣게 됐다. 한예종 출신 선후배 배우들 대부분이 연기력에 대한 좋은 평가를 들으며 커리어를 쌓는 모습을 보며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을 견뎌낸 결실일 터이다. “학창시절에도 타고난 배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가진 게 많지 않으니까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인간중독>의 경우) 나이도 어렸고 현장경험도 적고 연기도 잘하지 못했는데 작품에 맞는 마스크라는 이유로 캐스팅 되고 또 파격 씬으로 주목받으면서 힘든 부분이 많았죠.” 아름다운 외모와 파격적인 정사씬으로 받은 주목은 금방 식었고 평범한 배우 지망생처럼 캐스팅 기회를 얻지 못하고 보낸 시간이 적지 않았다.

한겨레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 역을 연기한 임지연. 넷플릭스 제공


그는 “무기력하고 불안하고 무너지는 순간들이 있었다”며 “기회를 얻지 못해 혼자 영화와 공연을 수백편 보고 책 읽고 보냈던 시간이 지금 생각해보면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힘겨운 순간들이 또 찾아올 거고 연기력 논란이 생길 수 있겠지만 노력해서 그걸 이겨내는 성취감이 내가 배우를 사랑하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차기작으로 올 상반기 방영되는 스릴러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tvN)에서는 김태희와 호흡을 맞춘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넷플릭스 제공

▶▶움트는 봄, 한겨레의 벗이 되어주세요 [후원하기]
▶▶한겨레 네이버 구독! 최신 뉴스를 쏙쏙~▶▶마음 따뜻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모아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