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소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시작해 스위스 2위의 초대형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로 확산한 은행 위기에 시장은 이처럼 혼돈에 빠졌다. 지표 움직임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누적된 고물가 충격이 더 무서운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신호다.
Grey clouds cover the sky over a building of the Credit Suisse bank in Zurich, Switzerland, Feb. 21, 2022.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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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67.61달러로 내려앉았다. 하루 사이 6% 가까이 하락하며 배럴당 70달러 선 밑으로 추락했다. 일일 낙폭으로는 8개월여 만에 최대다.
이날 국제유가는 지난해 12월 이후 최저치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 가격으로 돌아갔다. 이날 포브스는 “미국 지방은행은 물론 유럽 CS 같은 초대형 은행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국제유가를 떨어뜨렸다”고 밝혔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석유 소비가 감소할 것이라는데 시장이 ‘베팅’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CNBC는 “미국 지방은행 파산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심해지면서 경기 위축이 더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며 “은행 대출이 줄어들 것이란 예상 하에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고 있다”고 전했다. 골드만삭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사업 대출의 50%, 부동산 대출의 80%를 자산 2500억 달러(약 330조원) 이하의 중소은행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 은행이 돈줄을 죄기 시작하면 미 경제ㆍ산업 경기 전반이 가라앉을 위험이 크다. 이런 이유로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1.2%로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증시 전반에 하락 압력이 확산되고 있는 건 현재 시장의 우려가 단순히 미국 소형은행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가파른 금리 인상의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A thunderstorm passes between Midland and Odessa, Texas, just behind an array of pump jacks on Thursday, May 14, 2020. 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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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트스위스는 16일 스위스 중앙은행이 500억 스위스프랑(약 70조원)에 이르는 긴급 자금 수혈에 나서면서 한고비 넘겼지만 위기감은 여전하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SVB 파산에 이은 CS발(發) 변동성 위기는 세계 은행 시스템에 대한 우려, 금리 인상에 따른 은행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의 변동성은 최악을 치닫고 있지만 세계 경제 향방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 Fed의 정책금리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앞서 발표된 미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상승률은 예상치에 부합했지만,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근원적인 물가 상승 압박이 여전해서다. CPI는 Fed가 통화정책을 수립할 때 중요하게 살펴보는 물가지표다.
다만 미국의 2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시장 예상과 달리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Fed가 금리 인상 부담을 덜었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5일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월 PPI는 전월보다 0.1% 하락했다. 0.3% 상승할 것이라는 시장 예상을 벗어난 수치다. 지난해 2월과 비교해서는 올해 2월 PPI가 4.6% 상승했다. 역시 시장 전망치(5.4%)를 밑돌았고, 지난 1월(5.7%)보다 오름폭이 줄었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등을 뺀 근원 PPI는 전월보다 0.2%, 전년 동월보다 4.4% 상승했지만, 각각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도매 물가인 PPI는 일반 소비자 물가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한다. PPI의 하락은 물가 상승 압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FILE PHOTO: Federal Reserve Chair Jerome Powell testifies on Capitol Hill in Washington, U.S., March 7, 2023. REUTERS=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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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경기가 식어간다는 신호도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날 미 상무부에 따르면 2월 소매 판매가 전월보다 0.4% 감소했다. 지난 1월(3.2%)의 깜짝 증가세에서 뒷걸음질한 결과다. 휘발유와 자동차 등을 제외한 근원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0.5% 증가했지만, 1월(2.3%)보다는 오름폭이 줄었다. 이에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들은 앞으로 몇 달간 소매판매가 냉각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고용시장 활황이 잦아들고, 가계가 상품에 대한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PPI와 소매판매 결과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소 덜어주는 신호로 풀이된다. 여기에 미국 SVB와 유럽 CS 등 금융시장에 유동성 불안이 확산하면서, Fed가 지난해와 같은 '금리 인상 행진'을 고집하기도 힘들어진 상황이다.
실제 두 지표가 발표된 이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오는 21~22일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높일 확률과 기준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비등하게 전망했다. 마크 잔디 무디스애널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은행권 위기로 경제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기 때문에 Fed가 이번 FOMC에서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Fed는 잠시 숨을 돌려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그간의 금리 인상이 경제와 은행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숙ㆍ서지원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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