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전투경찰이 작성한 일기.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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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전역에 수천명의 공수병들이 쫙 깔렸다. 이들의 구둣발에 차인 어느 남녀 데모대 2명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돼 끌려갔다. 점심밥조차 넘어가지 않았다.”(1980년 5월18일 일기)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도심 시위 현장 진압에 투입됐던 전투경찰이 쓴 일기가 43년 만에 공개됐다. 일기에는 경찰이 보기에도 잔인했던 계엄군의 행동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1980년 전투경찰로 복무하며 광주의 시위 진압에 투입됐던 경찰이 쓴 일기장을 기증받았다”고 15일 밝혔다. A씨(67)가 대학 노트에 작성한 일기에는 1979년 11월22일부터 1980년 9월4일까지의 상황이 기록돼 있다.
A씨는 5·18 당시 전라남도경찰국 제 2중대 소속 전투경찰로 복무하며 5·18 직전부터 광주 도심의 시위 현장에 투입됐다. 전투경찰을 전역한 A씨는 이후 충북 지역에서 직업 경찰관으로 복무했다고 한다.
5·18당시 시민들이 쓴 일기가 기록관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지만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의 시각으로 기록된 일기가 수집·공개된 것은 드문 사례다. A씨 일기에는 경찰이 보기에도 과격하고 난폭한 계엄군의 시위 진압 상황이 담겨있다.
A씨는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가 5월18일부터 벌인 진압 현장을 목격했다. 이날 일기에는 “시내는 일약 공포분위기로 살벌했다. 계엄군은 데모진압 공격전의 선봉이 되었다. 붙잡힌 학생들은 정말 비참하리 만큼 얻어맞은 채로 체포되었다”고 적혀있다.
1980년 5월을 지켜본 전투경찰의 일기장.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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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 일기에는 “어제 수백명의 학생들이 체포 구금되었다. 계엄군이 첫날부터 너무 과격한 탓인지 시민들의 눈치가 이상해졌다. 조금씩 데모대에게 호응하는 기미가 보였다”고 썼다. 공수부대의 강경 진압에 맞서 광주 시민들이 뭉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당시 시민들과 계엄군의 대치 상황에 관한 내용도 있다. 이날 오후 당시 전남도경 국장이었던 고 안병하 치안감의 지시로 경찰들이 시위 진압을 중단하고 각 경찰서로 복귀한 상황도 일기에 기록돼 있다. 안 치안감은 신군부의 강경진압 지시를 거부했다가 고초를 겪었다.
A씨는 경찰관 퇴직 후 5·18기록관에 일기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A씨는 “5·18은 당시 전투경찰로 투입됐던 나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에 기증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5·18 현장에서 전투경찰의 눈으로 작성된 또 하나의 ‘오월일기’가 5월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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