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념사서 ‘미래 협력’ 강조
‘과거사 문제’ 사죄 등 거론 안해
日 “韓,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내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만세삼창을 한 뒤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유관순기념관에서 기념식이 개최된 건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이후 18년 만이다. 이화여고는 유관순 열사 모교다. 앞줄 왼쪽부터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 김영관 애국지사, 윤석열 대통령, 김 여사, 이종찬 우당기념관장, 최진 이화여고 학생.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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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일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과거사 문제 대신 미래 협력을 강조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한 한일 간 막판 협상 결과에 따라 이르면 3월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윤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 세계 시민의 자유 확대와 세계 공동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며 “이것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그 정신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또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을 기억하고 역사의 불행한 과거를 되새기는 한편, 미래 번영을 위해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윤 대통령 기념사에 대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밝혔다.
尹, 3·1절 ‘위안부-징용’ 언급 안해… 이달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
尹 “日, 안보-경제 파트너”
역대 가장 짧은 5분 25초 기념사
대통령실 “징용 마지막 조율만 남아”
이재명 “3·1운동 정신 망각 ”비판
윤석열 대통령은 1일 1006자(字·공백 제외 )의 3·1절 기념사를 5분 25초 동안 읽어 내려가며 일본에 일제강점기 위안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사죄나 반성을 요구하는 대신 일본과의 미래 지향적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일본이 더는 ‘군국주의 침략자’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며 북핵 위협에 함께 대응하는 ‘협력 파트너’라고 규정했다. 이번 기념사 분량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첫 3·1절 기념사(3281자)는 물론이고 역대 정부 기념사들과 비교했을 때도 가장 짧았다.
한일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의 핵심 쟁점을 놓고 막바지 협의 중인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의 다른 관계자는 이달 중 협상 타결 가능성에 대해 “사실상 마지막 조율만 남겨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본 피고기업의 배상 참여와 사죄 관련 막판 이견을 좁히면 이달 중 한일 정상회담 성사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日의 과거사 반성 대신 ‘협력 파트너’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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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이날 과거사 문제에 대해 “영광의 역사든, 부끄럽고 슬픈 역사든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만 했다.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독도 문제 등 한일 현안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3·1절(2018년)에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국내외 독립운동을 자세히 소개하고 ‘가해자’ ‘반인륜적 인권 범죄’ 등의 표현으로 일본을 비판한 것과 대비된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 안보협력과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한 이유로 “복합 위기, 북핵 위협을 비롯한 엄혹한 안보 상황”을 꼽았다. 정부 소식통은 “실용 외교의 측면에서 한일 관계에 접근했던 이명박 대통령 3·1절 기념사보다도 한일 관계 개선의 당위성이 보강됐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독립(10회)에 이어 현 정부 핵심 가치로 앞세웠던 자유(8회)를 두 번째로 많이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모두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계승해서 자유, 평화, 번영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도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세계 자유와 평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한 기미독립선언서 정신이 이번 기념사에 반영됐다”고 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날 “윤 대통령이 일본과 협력 심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일본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 “강제징용 협상 마지막 조율만 남았다”
윤 대통령이 일본과의 협력 의지를 드러내면서 한일 정상회담 등 관계 개선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피고기업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참여 여부나 방식을 둘러싼 핵심 쟁점이 해결되면 이달 중에라도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중순 한일 외교장관 회담 뒤 지난달 26일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비공개 방한해 강제징용 해법을 논의한 데 대해서도 협상에 진전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되면 한일 정상회담이나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은 예상되는 수순”이라고 밝혔다.
다만 강제징용 해법 협상이 길어질 경우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윤 대통령을 초청해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도 있다.
정부는 4월 말 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도 미 측과 조율 중이다. 이달 중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한일, 한미 정상회담이 이어진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일 안보협력 등 일본이 연계된 의제의 비중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역사적 책임과 합당한 법적 배상 없이 신뢰 구축은 불가능하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마치 돈 없어서 싸우는 것처럼 사람을 처참하게 모욕한 것이 바로 이 정부”라며 “윤석열 정부는 3·1운동 정신을 망각하고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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