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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맑고 따스한 눈으로 혁명·통일 꿈꾸던 5·18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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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화연구소 만들어 반독재투쟁

송백회 통해 여성·노동운동 뛰어들어

로켓트 여성노동자 파업에 중추 역할

80년 5월 항쟁으로 ‘내란 수괴범’ 수배

독일·일본 오가며 통일운동 펼치다

널짝같은 0.75평 독방서 3년6개월 버텨

암투병 중에도 5·18타격대 책 발간


[가신이의 발자취] 민주·통일운동가 고 이윤정 선생을 보내며

한겨레

2019년 고 이윤정 선생이 회장을 맡고 있던 오월민주여성회는 ‘오월여성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10월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스칸디나비아 평화기행’ 강의가 끝난 뒤 고 이윤정(앞줄 맨 오른쪽부터) 선생, 윤청자 현 오월민주여성회장, 강사인 고 김용복 박사, 장헌권 목사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필자 장헌권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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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 이윤정 선생을 광주 오월의 여전사, 민주통일운동가라고 부른다. 혁명을 꿈꿨던 철의 여인이다. 하지만 그는 어릴 적부터 심성이 맑았다. 1955년 가난한 전남 함평 땅에서 평범한 가정의 2남4녀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나 전형적인 시골생활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광주와 인연을 맺어 중·고등학교를 광주에서 다녔다.

꿈 많은 여고생 시절, 평등사회와 인간해방을 설교하는 백염흠 목사를 만났다. 그의 인생 방향을 바꾸는 ‘민청학련’ 세대들과 함께 사회과학책을 탐독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현대문화연구소’를 만들어 투쟁을 시작한다. 또한 1978년 광주지역 최초의 여성운동조직인 ‘송백회’를 통해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낮에는 광주 한국와이더블유시에이(YWCA) 간사를 하면서 밤에는 노동자들의 자취방에서 전태일 열사의 희생을 알려주는, 깨어있는 여성들의 언니가 되었다. 기계처럼 일하던 로켓트 전기 여성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최초의 승리로 이끄는 중추적 구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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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광주 동구 시의원 선거에 민주연합후보로 출마한 이윤정 선생이 군부독재 종식을 외치고 있다. 장헌권 목사 제공


꽃만 봐도 서러운 1980년 5월 한복판에 이윤정 선생이 있었다. 그해 5월19일, 손수레에 실린 채 만신창이가 된 주검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가마니에 덮여 있는 망가진 얼굴을 보면서 그는 다짐했다. 온몸으로 계엄군에 저항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닥치는 대로 민중언론 <투사회보>와 대자보를 만들며 성명서를 작성하고 가두방송을 했다. 특히 여성들과 함께 주먹밥을 만들고 희생자의 염과 헌혈을 하면서 목숨 건 투쟁을 했다. 그 결과, 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해 현상금과 일계급 특진이 걸린 ‘내란 선동의 수괴범’(본명 이행자)이 되어 2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이후 1991년 그는 새로운 기회를 통해 초대 광주시의원에 당성되어 정치인으로 활동한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를 만나면서 분단국가 시민으로서 민족의 통일문제를 깊게 생각하고 통일운동을 시작한다. 이때 독일과 일본을 방문하면서 일본의 노동단체와 국외 민주인사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이라는 굴레를 쓴다. 3년6개월 동안 청주여자교도소에서 2.5㎡(0.75평) 독방 징역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누우면 머리와 발이 벽에 닿을 정도의 ‘널짝 같은’ 공간이었다. 이른바 ‘뺑기통’이라는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이 한켠에 있고 머리맡에 책을 쌓아두고 벌레들과 함께 살아가는 감옥생활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면서 오직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을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함께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청초롬하게 피어나는 민들레를 보면서 ‘매서운 시련을 이겨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마음을 모질게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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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4일 별세한 고 이윤정 선생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거행됐다. 고인은 5·18유공자이지만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묻혔다. 향년 67. 장헌권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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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94년 광주대에서 경제학사·석사를 마쳤던 고인은 쉰살 넘어 만학에 도전해 2007년 서울대 세계경제최고전략과정을 수료한 데 이어 2012년 조선대에서 정치외교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교수로 강단에 섰다. <광주항쟁과 민주사회>, <평화와 인권의 이해>, <기억하라>, <꿈꾸는 여자가 아름답다> 등 저서도 남겼다.

평생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 그리고 통일운동에 몸 바쳐온 이윤정 선생은 시련과 질곡의 시간 속에서도 한시도 잊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꿈꾸는 여자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꼭 여자가 아니더라도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은 아름다운 것이다. 광주를 위한 꿈, 조국을 위한 꿈, 민족을 위한 꿈을 꾸고 있기에 선생은 좌절하지 않고 살았다.

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에도 도청 마지막 항쟁의 불꽃이었던 5·18기동타격대 31인을 기록하기 위해 아픈 몸을 움켜쥐었다. 힘겹게 작업한<1980.05.27. 도청의 마지막을 지킨 사람들> 책으로 기동타격대의 기억을 남겨줬다.

이제 어깨 위에 있는 무거운 십자가는 뒤따르는 후배에게 맡기고 넉넉한 하늘 품에서 그 맑고 따스한 눈으로 꿈꾸길, 이윤정 선생의 발자취가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에 한 알의 밀알이 되길 기도한다.

장헌권 목사/고 이윤정 선생 시민사회장 장례위원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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