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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5·18조사위 “신군부, 계엄군 체험수기 조작…간첩 손성모도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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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관들이 지난해 9월25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터에서 행방불명자 암매장 조사를 하고 있다.5·18조사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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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신군부가 계엄군의 체험수기, 간첩사건 등을 조작해 광주학살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드러났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1일 공개한 ‘2022년 하반기 조사활동보고서’를 보면, 신군부는 군 문서 등의 발포 기록 등을 삭제하거나 은폐하기 위해 1985년 6월 ‘80위원회’, 1988년 2월 ‘육군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1988년 2월 국회에서 5·18 진상조사특별위원회(광주특위)가 만들어지고 청문회 개최를 계획하자 신군부는 또다시 같은 해 5월 범정부 차원의 ‘511연구위원회’, 7월 보안사를 중심으로 한 ‘511분석반’을 구성했다. 511연구위원회는 전투 상보 등 군 문서를 변경·조작·폐기하고 5·18 참가군인들의 체험수기 조작, 청문회 예상 증인을 통제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지난해 하반기 조사위는 당시 육군본부 계엄과장, 관리 장교, 군사연구실 수집 장교, 기무사 분석 장교 등의 조사를 통해 의혹을 사실로 확인했다. 특전사(3·7·11공수여단), 20사단이 5·18 직후 작성한 전투상보 일부 문구에 대해 ‘검토 후 수정’, ‘삭제’ 등 지시를 내렸고 계엄군 체험수기도 ‘재작성’하라고 조치했다. 20사단 61연대 2대대장 김아무개씨도 조사위에 “내가 쓴 5·18 참가수기가 변형됐다”고 진술했다. 다만 조사위는 구체적인 조작 정황은 조사가 끝난 뒤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신군부는 또 간첩사건을 조작해 5·18과 북한을 연관 지으려는 시도도 했다.

1980년 5월23일 서울시경은 주민신고로 서울에서 간첩 이창용을 붙잡았고 다음 달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 소요 선동 임무를 띤 남파 간첩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조사위는 당시 수사 경찰, 검·경 피의자 신문조서, 자술서 등을 확인한 결과 이창용은 체포될 때 독침과 혀를 깨무는 방식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2주가 지난 6월10일께 조사가 이뤄졌다. 당시 수사 경찰들도 “1980년 5월19일 계엄사령부가 보도통제 지침을 강화해 이창용 사건 발표는 경찰이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정치적인 문제”라고 진술했다. 조작의 배후에 신군부가 있다는 취지다.

일부 극우단체가 ‘5·18 때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을 지휘했다’고 주장하는 간첩 손성모도 5·18과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손성모는 1980년 5월4일 침투해 같은 달 8일 은신 목적으로 광주 무등산 약사암에 들렀으나 약사암이 공사 중이어서 전북으로 이동했고 1981년 2월15일 경북 문경에서 붙잡혔다. 북한 청진대학 철학과 교수였던 손성모는 군사작전 경험이 없었고 자술서, 피의자 신문조서, 판결문 등에서도 광주에 대한 언급은 확인되지 않았다.

조사위는 ‘북한군 600명이 사전에 전남지역 44개 무기고 위치를 파악하고 4시간 만에 무기를 탈취했다’는 극우단체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했다. 당시 시위대는 광주와 가까운 파출소부터 5월21∼23일 사흘에 걸쳐 차량으로 무기고 벽을 들이받거나 망치로 무기고 자물쇠를 부수는 방식으로 무기를 탈취했다. 조사위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도구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식을 이용했기 때문에 특수부대의 전문 탈취수법과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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