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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월드리포트] 70년 전 6.25와 판박이…'휴전' 독배? 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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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맞았습니다. 저 멀리 동유럽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이지만 세계가 하나로 묶여 돌아가는 요즘, 이미 남의 나라 얘기라고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날로 거칠어지는 북한의 핵 위협에도 미국의 관심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쏠려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핵 역시 최우선 과제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당장 발등의 불인 유럽의 불안을 달래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경제 역시 마찬가지여서 미국이나 유럽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석유와 곡물, 가스 가격이 출렁거리며 작지 않은 여파를 받고 있습니다.

6.25-우크라전 '닮은꼴'



이런 현실적인 문제 외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남다른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70여 년 전 우리가 겪었던 6.25 전쟁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점입니다. 얼핏 '그런가?'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전쟁 양상 자체가 그렇습니다. 먼저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구소련과 그 명맥을 이은 러시아로 같습니다. 직접 전쟁을 수행한 건 북한 김일성 정권이지만 배후가 구소련이었다는 건 이미 다 밝혀진 사실입니다.

국제전 양상을 띤다는 점도 같습니다. 6.25 때처럼 이번에도 러시아 중심의 '반 서방 세력'과 미국 중심의 '서방 세력'이 맞붙고 있습니다. 6.25 때만큼은 아니지만 중국도 러시아와 밀착하며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직 살상 무기 지원까지 가진 않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핵무기 사용 위험이 커졌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6.25 당시에는 미군이, 이번 우크라이나전에서는 러시아군이 핵 카드를 언급했습니다. (물론 당시 미국과 현재 러시아가 언급한 핵 카드 성격이 좀 다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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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이지만 감정의 골이 깊다는 점도 유사합니다. 남북한은 같은 민족으로 일제 치하에서 고생하다 해방 후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나뉘면서 극단적 대립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립은 죽고 죽이는 전쟁 과정에서 더욱 깊어졌습니다.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그랬습니다. 과거 동슬라브족의 대표주자였던 우크라이나는 몽골 침략 이후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주도권을 모스크바 공국, 지금의 러시아에게 내줬고 러시아 제국과 소련 통치 시절을 겪으면서 적지 않은 앙금이 남았습니다. 특히 스탈린의 철권통치 속에 1930년대 초 대기근으로 우크라이나 사람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개전 후 1년…교착상태 소모전도 동일



6.25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개전 1년 후 전황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6.25의 경우, 개전 3일 만에 북한 인민군이 서울이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해 부산 일대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으로 전세가 뒤집히면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일대까지 치고 올라갔고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 1년 뒤 38선 부근을 중심으로 교착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개전 초기 압도적 전력을 앞세운 러시아군의 특별군사작전으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가 함락 직전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이 단합하면서 버텨냈고 이후 서방의 지원에 힘입어 러시아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며 뺏고 뺏기는 공방전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1년, 러시아가 올봄 대공세를 예고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 어느 쪽도 승기를 잡기 어려운 교착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입니다.

물론 6.25 때와 달리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미국 등 서방이 직접 파병을 하지 않고 있는 점, 또 6.25 당시 성과 없이 물러난 북한과 달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과 마리우폴 등 남부 요충지를 장악해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이으며 1차적 전략 목표를 달성한 점 등은 두 전쟁 사이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황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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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회담 가능성은?..."'승리' 아닌 '평화'가 중요"



6.25의 경우 개전 1년 만에 정전 회담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한국과 북한은 전쟁을 끝내길 원치 않았습니다. 소련의 스탈린 역시, 패권 경쟁국이었던 미국의 트루먼 정권이 흔들리고 2차 대전 승전국이었던 미국, 영국 등 서방 군대의 위신이 깎이는 걸 더 즐겼습니다. 이 주제를 다룬 뉴욕타임스 기고문의 문구를 빌리자면 "독자재는 전쟁이 계속되도록 놔두는 데 대해 완전히 만족해 했습니다.(The dictator was perfectly happy to let the war continue)" 소련은 1953년 3월 스탈린이 사망한 뒤에야 자신의 동맹국들이 정전회담에 적극 나서도록 독려했습니다.

지금 상황도 비슷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영토의 약 20%, 하지만 전략적, 경제적 가치로는 80%에 해당한다고 할 만큼 중요한 크림반도 등 남부 지역과 동부 지역을 빼앗긴 채 전쟁을 끝내려 하지는 않을 걸로 보입니다. 러시아도 '강한 러시아' 천명한 푸틴 대통령이 당장 물러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1차적 목표를 달성한 만큼 전황을 봐가며 정전 회담에 응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변덕이 심하긴 하지만 러시아 쪽에서 유화적인 제스처가 없지 않은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같은 교착상태에서 전쟁이 계속된다면 6.25 때 못지않은 수많은 인명피해가 뒤따를 거란 점입니다. 비극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요? 역사가 세르게이 라드첸코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정전'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습니다.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몰라도 이 전쟁에서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유권자들과, 당장은 러시아 편에 서 있지만 주요 변수인 중국 역시 전쟁이 길어지는 건 원치 않을 거란 겁니다.

그리고 당사자들 역시 앞으로 몇 달 동안 승기를 잡지 못할 경우, 이번 전쟁이 휴전으로 향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비록 영토 수복에 실패했지만 우크라이나는 거대한 러시아를 물리쳤다는 명분을, 러시아는 전략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전술적 승리를 거뒀다고 이야기하며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라드첸코는 "한국전쟁에서 배운 게 있다면 완전한 패배나 기진맥진한 소모전 보다 냉전적 대립이 낫다는 것(Yet if we have learned anything from the Korean War, it is that a frozen conflict is better than either an outright defeat or an exhausting war of attrition)"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래 마지막 문구를 보면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한국 전쟁으로 황폐해졌던, 그러나 오늘날 반짝이는 대도시 서울은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아니라 평화를 쟁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Today, the glittering metropolis of Seoul – savaged by the Korean War – stands as a reminder that it is not those who win the war who matter, but those who win the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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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은 그치지만…'정전'의 두 얼굴



우리나라는 올해로 정전 70주년을 맞습니다. 그간 우리는 번영을 이뤘고 북한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지만 일상에서 이를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북한의 핵 위협은 우리나라가 아직 전쟁 중임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당시 끝장을 봤더라면', 혹은 '맥아더 장군 말대로 중공군에게 핵을 썼더라면'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라드첸코의 말처럼 전쟁에서 승리가 아니라 평화를 쟁취하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로 모든 게 해결되기는 어려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남북한 문제와 우크라이나-러시아의 문제가 똑같은 건 아닙니다. 총성을 그치는 정전이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성배가 될까요, 아니면 독배가 될까요? 그도 아니면 어느 한쪽이 완전히 무릎을 꿇을 때까지 싸우는 게 답이 될까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답은 더욱 어렵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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