숄츠 총리 “독일, 유럽 안보책임 인정”
지난 17일(현지시각)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사회민주당)가 독일 뮌헨에서 열린 59회 뮌헨안보회의 개막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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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인 2022년 2월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한겨레>는 이 전쟁으로 전후 70여년 동안 유지된 안보 태세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유럽 나라들을 찾아 이들의 변화를 세차례에 나눠 살펴본다. 북유럽의 오랜 중립국인 핀란드와 스웨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결정했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소국인 발트 3국에는 서방의 군대가 전진 배치됐다. 미국과 나토의 안보 우산 아래 숨었던 독일은 “시대 전환”을 공표하며 전후 70여년 동안 자제했던 ‘군사력 강화’라는 새 길을 걷기로 했다. 3화에선 70여년간 잠자고 있던 독일 연방군을 ‘부활’시키기로 한 독일의 상황을 소개한다. 편집자
<우크라이나 전쟁 1년, 유럽을 뒤바꾸다>
1회 북유럽, 중립 노선을 포기하다(핀란드)
2회 발트 3국, 위협 앞에 각성하다(에스토니아)
3회 70여년 잠자던 대국, ‘시대전환’을 선택하다(독일)
“2022년 2월24일은 유럽 대륙의 역사에 ‘시대전환’(Zeitenwende)이 될 날입니다. 세계는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사흘 뒤인 지난해 2월27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독일 현대사에 오래 기록될 이례적인 연설에 임했다. 그는 베를린 연방의회 연단에 올라 러시아의 침공이 “거의 반세기 동안 지속돼온 유럽 안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온 독일의 방위 정책을 대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숄츠 총리는 구체적으로 독일이 1천억유로(약 138조2400억원) 규모의 특별방위기금을 만들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정책 목표에 맞춰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70여년간 잠자고 있던 독일 연방군을 ‘부활’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1주년을 앞두고 지난 17일(현지시각) 개막한 뮌헨안보회의는 유럽의 안보 지형이 그동안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숄츠 총리는 이 자리에서 “독일은 유럽과 나토의 안보에 대한 책임을 전제조건 없이 인정한다”며 “앞으로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독일 연방군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전세계를 두번이나 전쟁의 수렁에 빠뜨린 ‘강한 독일’의 재림을 걱정하는 이들에겐 “우리의 무기 공급이 전쟁을 연장시키는 게 아니다”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국주의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전쟁이 조기에 종식되고 러시아군이 철수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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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숄츠 총리가 이끄는 ‘신호등 연정’(사회민주당·녹색당·자유민주당)이 2021년 12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재임기간 2005~2021)의 뒤를 이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런 사태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두번이나 전세계를 전쟁의 참화에 빠뜨렸다는 반성으로 독일은 전후 일관되게 ‘비군사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고수해왔다.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독일 연방군이 창설됐지만, ‘나치 독일’의 과오를 기억하는 독일인들은 이를 독자적 무력 수단이 아닌 나토에 기여하기 위한 부수적 존재로 받아들였다. 이후 독일의 외교안보 노선은 ‘수표책 외교’(막강한 경제력을 앞세워 국익을 관철하는 외교 전략)를 통해 군국주의에 반대하고 외부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쪽으로 굳어져갔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이 전통은 이어졌다. 독일은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2003) 참여를 거부했고, 리비아 내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표결(2011)에서 기권했다.
게다가 연정을 이끌게 된 독일 사민당은 빌리 브란트 총리(1969~1974) 시절까지 거슬러 오르는 동방정책의 유산을 계승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메르켈 전 총리(기민련)의 ‘균형외교’ 노선까지 이어받았다.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면 안 된다’는 미국 등의 만류를 뿌리치고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사업을 계속했다.
국방 분야 투자를 최소한으로 유지해온 정책도 그대로 지속됐다. 러시아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불법 합병한 뒤 독일의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의 1.1%에서 1.5%로 늘었을 뿐이다. 2022년 1월까지만 해도 독일은 무기를 지원해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외침에 비살상 무기인 방탄헬멧을 5천개 보내는 극히 소극적인 대응에 머물렀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이 지난 1일(현지시각)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독일 연방군 전차대대 훈련장에서 열린 화력 시범 때 레오파르트2 탱크에 탑승해 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르트2 탱크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뒤 전차대대를 방문해 화력 시범을 참관했다. 아우구스트도르프/D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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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이 되며 변화가 시작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이뤄지기 직전 새 정부는 ‘노르트스트림2’ 프로젝트를 전격 중단했다. 24일 침공이 이뤄지자 ‘대전환’이 본격화됐다. 2022년 1월엔 에스토니아가 독일산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터지자 ‘시대전환’을 선언하고 무기 수출을 허용했다.
독일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군사원조 목록을 보면, 독일은 전쟁 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게파르트 자주대공포 △독일 주도로 개발한 단거리 공대공 이리스(IRIS-T) 미사일 △각종 탄약 등 100가지 종류에 이르는 무기 및 각종 장비를 지원했다. 이어 오랜 망설임 끝에 △주력 전차 레오파르트 14대 △마르더 장갑차 40대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 시스템 등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확정했다. 독일 정부가 지난해 1월부터 이달 13일까지 1년여 동안 지원한 군사 지원 액수는 25억유로가 넘는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 집계(2022년 1월24일~2023년 1월15일 기준)를 보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 액수는 미국(약 443억유로)이 가장 많고, 영국(약 49억유로), 폴란드·독일(약 24억유로)이 그 뒤를 잇는다.
독일 연방의회는 지난해 6월 1천억유로 규모 특별방위기금을 신설하기 위해 독일 기본법을 개정했다. 이 방위기금은 미국산 F-35A, 유로파이터 구매 등에 쓰인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12월 80억3천만유로를 들여 낡은 토네이도 전투기를 대체할 F-35A 35대 구매를 결정했다. 이 전투기엔 미국산 핵탄두를 실을 수 있다. 앞으로 독일은 매년 국방비로 국내총생산의 2%(750억유로)를 “영구적으로” 쓰게 된다. 잠자던 독일이 미국·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돈을 국방에 쏟아붓는 나라로 변한 것이다. <끝>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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