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 ‘한-몽골 경제인 만찬’ 자리. ‘K팝 대부’로 불리던 이수만의 인사는 짧고 간결했다. 하지만 이 짧막한 문장이 그가 겪은 그간의 일을 압축하고 있었다. 올해 1월 초까지도 그의 공식 석상 소개 문구는 “이수만 SM 총괄프로듀서”였다. 그는 이날 SM 최대 주주 자리에서 물러난 뒤 처음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주간 이수만은 대중음악계뿐 아니라 증권가 최대 화제의 인물이었다. 시작은 지난 3일, 그가 창업주로서 손수 일군 SM의 현 경영진이 “이수만 없는 SM 3.0 미래”를 발표하면서였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 측이 이수만의 자회사 라이크기획과 SM과의 고액 자문료 계약 등을 문제 삼아온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수만은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이후 7일 SM 현 경영진과 이사회가 카카오에 SM 지분 9%대를 넘기는 순간부턴 “합의되지 않은 사안들”이라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SM 이사회를 향한 소송전에도 돌입했다. 지난 10일엔 자기 SM 지분 18% 중 14%를 업계 내 최대 경쟁자인 하이브에 넘겼다. 같은 날 SM 측은 “우리는 모든 적대적 M&A에 반대한다”는 임직원 성명을 냈다.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2023년 2월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한-몽골 경제인 만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의 측근들에 따르면 이수만은 지난 7일 카카오로의 SM 지분 매각 소식을 듣고 급히 해외에서 팔과 어깨 부상을 입은 상태로 귀국했고, 지난 12일 퇴원했다. 이후 3월 말 SM 주주총회 때까지 칩거하려 했지만, ‘어용 에르데네(Oyun-Erdene) 몽골 총리’의 이번 방한이 그의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이수만은 지난 8월 몽골 정부의 초청으로 약 나흘간 어용 총리와 만났다. 세계적인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돔 시티 설계, 메타버스가 생태계 구축, 몽골 사막을 푸르게 만들 친환경 ‘나무 심기 K팝 페스티벌’ 등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행사 참석도 그 때문. 당시 연을 맺은 어용 총리와 이수만이 SM과의 소송전이 불거지기 전 미리 약속했던 기조 강연이었다. 당초 예정됐던 오후 6시보다 한 시간 늦게 연설 무대에 오른 이수만은 강연에서 “왼쪽 어깨가 편치 않아 마이크가 무겁다”며 운을 뗐고, “30년 동안 K팝을 창안하고 개척하며 평생을 한류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연설 전후에는 어용 총리, 박진 외교부 장관, 원희룡 국토부 장관, 김두관 민주당 의원 등과 사담을 나눴다. 하지만 SM과 하이브에 대해선 행사 중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퇴장 도중 “SM 직원들의 동요에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며 쏟아진 기자들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을 지켰다. 그가 한 시간 동안 강조한 건 “K팝 팬덤이 심은 나무로 환경을 살리는 ‘K팝 나무 심기 페스티벌’”의 중요성뿐이었다.
그의 연설 전부터 현장을 지켰던 SM 소속 배우 김민종·이재룡·윤다훈이 “본래 SM과의 갈등이 없었다면 이날 행사에 SM 소속 가수들도 출연하고, 직원들도 왔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최근 SM 사내 직원에게 이성수·탁영준 대표 등 SM 경영진을 비판한 메일을 보내 화제가 된 배우 김민종은 “최근 지금 상황이 벌어진 직후 애들이(SM 경영진이) 그럴 리가 없다라는 말을 선생님이 자주 하셨다. 지난 10일에는 SM 경영진이 사옥의 선생님 집무실 짐을 뺐다. 참담하다”고 전했다.
[윤수정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