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에 사는 시리아 난민들이 지진 피해를 입은 와중에 인종차별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튀르키예에 사는 시리아 난민 아마르(2)가 13일(현지시간) 남부 카라만마라슈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집을 떠나 추위에 떨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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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현지시간) 발생한 대규모 지진 이후, 튀르키예(터키)에서 반(反) 시리아 정서가 비등하고 있다. 그간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빠져나온 난민들을 가장 많이 수용하며 '난민 방파제' 역할을 했던 튀르키예가 이번 지진 피해로 성난 민심을 시리아인에게 돌리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모양새다.
1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간 시리아 난민에게 가장 허용적인 나라였던 튀르키예에서 포퓰리즘과 토착주의가 힘을 얻으며 시리아인에 대한 적대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전했다. 튀르키예에 거주 중인 시리아인들은 갑작스런 반 시리아 정서에 "폭탄이 쏟아지는 시리아로 돌아온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앞서 튀르키예는 유럽연합(EU) 정식 회원국 가입을 조건으로 시리아 난민을 대규모로 수용하며 개방 정책을 폈다. 튀르키예 정부가 지난 12년간 난민 정착 사업에 투입한 재원만 400억 달러(약 50조7000억원)가 넘는다. 이들에게 의료와 교육 혜택도 제공했다.
FT는 "시리아 난민들은 레바논이나 요르단보다 튀르키예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레바논과 요르단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긴 했지만,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은 거부했다.
현재 튀르키예엔 40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 중이다. 남부 가지안테프에는 도시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난민 50만 명이 시리아 난민이다. FT는 "튀르키예는 시리아 난민의 제2의 고향"이라고 전했다.
지진 피해가 큰 튀르키예 남부에서 지난 10일 시리아 난민 일가족이이 갈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모습.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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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은 튀르키예가 이번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자, 격앙된 분노를 시리아인을 향해 터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시리아인을 원치 않는다' '이민자 추방' 등 선동적인 문구가 확산 중이다. 또 시리아인에게 집값을 올려받거나 상점 입장을 거부하는 일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번 지진의 가장 큰 피해 지역인 가지안테프에선, 집이 붕괴돼 임시 대피소를 찾아간 시리아인들이 쫓아내기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시리아 난민 아부 알왈리드(35)는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일가족 12명과 소형 차량 안에서 일주일째 생활 중이다. 임시방편으로 길거리에 나무 골조로 된 간이 텐트를 치는 난민도 나타났다.
특히 지진 피해 지역에서 기승을 부리는 약탈 행위의 주범으로 시리아 난민이 지목되면서 반시리아 정서에 불이 붙었다. 튀르키예의 치과의사 아흐멧은 로이터통신에 "시리아인들이 빈 집과 가게를 털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튀르키예 법무부는 지난 12일 약탈범을 체포한 뒤 이들의 출신 국가를 밝히지 않은 상태다.
한 시리아 남성은 "우리가 아랍어로 대화하는 걸 들은 튀르키예인들이 소리 지르면서 우리를 내쫓아서 (가족들이 깔린) 수색 현장에도 가보지 못했다"며 "우리 보고 약탈자라고 근거 없이 비난해 분쟁만을 야기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10일 튀르키예 남부 안타키야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집을 떠나 길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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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진 피해가 반 시리아 정서로 연결된 것을 두고, 일부 정치인들이 교묘하게 조장한 결과란 주장도 제기된다. 오는 5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노골적으로 반난민 정서를 이용하고 있단 얘기다.
튀르키예 싱크탱크인 테파브의 오마르 카드코이는 FT에 "모든 정당이 각종 사회 문제를 시리아 난민 탓으로 돌리며 표를 얻으려는 포퓰리즘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지진으로 증폭된 대중의 분노를 기존의 반난민 정서로 돌리게 해, 튀르키예와 시리아 사이의 연약한 사회적 결속을 더 미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가 재건 과정에서 시리아 난민의 입지가 더욱 나빠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튀르키예 정치인들이 난민을 국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곤경에 몰아넣을 수 있을 것으로 FT는 예상했다.
13일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이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메르신의 시리아 난민만을 수용하는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모습. 튀르키예인들의 적대감으로 시리아 난민들의 대피소가 분리돼 운영 중이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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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고향을 떠나 튀르키예에 정착했던 시리아 난민들은 또 다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한 시리아 청년은 "우리는 모두 슬픔에 빠진 형제다. (지진으로) 극심한 고통을 공유한 사이"라며 동질성을 호소했다. 일부 시리아인들은 "아는 사람이 있어야 굶어죽지 않는 법"이라며 "짐을 싸서 전쟁 중인 시리아로 되돌아갈 때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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