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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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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무용으로...삶을 비추는 두 개의 ‘태양’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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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태양’ 바이러스로 분열된 인류 모습

“미래의 이야기 아닌 지금 우리의 이야기”

무용은 같은 원작 연극의 움직임서 ‘확장’

뜨고 지는 ‘태양’으로 시간·생명력 표현

헤럴드경제

연극 ‘태양’은 “태양을 등지고 살아보겠다는 발칙한 상상”에서 태어난 이야기를 통해 분열하고 갈등하는 두 인류를 그려낸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균열과 단절을 투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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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 바이오 테러로 전 세계에 바이러스가 퍼진다. 인구는 격감하고 정치, 경제는 혼돈에 빠져 사회 기반이 파괴된다.” (희곡 ‘태양’ 중)

그로부터 몇 년 후, 바이러스 감염자 중 기적처럼 생존자가 등장한다. 항체를 가진 인간들이다. 젊고 건강한 신체, 하지만 자외선에 취약한 치명적 결함을 가진 신인류 ‘호모 녹센시스’(밤의 인간). ‘녹스’ 등장 40년 후, 평범한 구인류 큐리오는 30% 밖에 남지 않았다. 녹스 사회에 의존하는 구인류는 신인류와 공존하고 갈등한다. 일본 작가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희곡 ‘태양’은 이렇게 출발한다. 바이러스가 갈라놓은 인류의 미래를 그린 작품은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리며 주목의 대상이 됐다.

‘두 개의 태양’이 떴다. 하나는 연극으로, 또 다른 하나는 무용으로다.

“이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랐어요. 굉장히 미래적인 이야기를 담은 SF물이더라고요. 이 서사로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초연 당시엔 미래적 이야기와 두 인류의 대립에 더 집중했어요.” 다시 돌아온 두 ‘태양’은 달라졌다. “이번엔 ‘태양’의 존재를 개념화하며 이 작품이 미래의 이야기만이 아닌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데에 방점을 두고 있어요.”

연극에선 ‘움직임’을, 무용에선 총안무를 맡은 이재영 안무가는 무용 ‘태양’(2월 10~12일, 대학로예술극장)의 개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재영은 “작년 11월부터 연극과 무용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 해왔다.

▶같은 원작에서 출발한 연극과 무용=‘태양’의 시작은 2021년이었다. 김정 연출의 연극으로 두산아트센터에서 초연했다. “태양을 등지고 살아보겠다는 발칙한 상상”(김정 연출)에서 태어난 이야기를 통해 분열하고 갈등하는 두 인류를 그려낸 작품엔 우리 사회의 균열과 단절을 투사하게 된다. 연극에 참여한 이재영 안무가는 당시 작업에서 받은 영감을 발전시켜 무용 작품으로 확장했다. 그가 속한 현대무용 단체 ‘시나브로 가슴에’의 신작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됐다.

같은 희곡에서 태어났지만, 연극의 움직임에서 ‘확장’한 무용은, ‘무용’ 답게 조금 더 상징적이고 함축적이다. 장르의 특성을 살려 ‘태양’의 주제의식에 접근했다. 연극(2월 26일까지, 국립정동극장)도 마찬가지이나, 초연 때와는 달라진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재영 안무가는 “초연 당시엔 두 인류의 ‘다름’에 포커스를 두고 작업했다”며 “이번 무용 작업을 하면서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인류의 근본적인 생명력”이라고 말했다.

가장 고민한 점은 ‘서사’였다. 원작에선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 안에서 갈라진 인물들의 사건과 갈등이 펼쳐진다. 반면 무용은 ‘두 명의 인물’에만 집중한다. 두 인류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희곡이 가진 연극적 서사의 전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고민의 결과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서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어요. 궁극적으로 무용이 하고자 하는 작업은 무용극이 아니니까요. 순수 무용 작업만으로 (희곡의 주제를)표현하고자 했어요.”

연극 ‘태양’도 드라마의 얼개보단 ‘인간의 맹목적인 행동’에 집중한다. 김정 연출은 “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무대에서 사회로 확장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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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희곡에서 태어났지만, 연극의 움직임에서 ‘확장’한 무용 ‘태양’은 태양 아래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그 흐름 안에 있는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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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고 지는 태양으로 시간과 생명력 표현=무용에선 희곡의 세계관과 주제의식을 따라가나, “전체적인 서사와 개개인의 캐릭터”를 몸으로 표현하진 않는다. 작품의 설정과 기본 이미지만을 가져왔고, “서로 다른 인류의 삶과 관계에 집중”해, 이들을 ‘움직임’으로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부각한 것은 “시간과 생명”이다.

“뜨고 지는 태양은 시간을 의미해요. 그 시간은 생명력의 순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요. 시간은 흐름이고, 그 지표가 태양인 거죠. 인류의 근원은 녹스와 큐리오라는 두 인류의 생명력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태양 아래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그 흐름 안에 있는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초연 당시 연극에서 두 인류의 서로 다른 움직임에 집중했다면, 이번 무용에선 움직임의 흐림 자체에 집중하게 돼요.”

무대 위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느릿느릿한 시간의 흐름이 무용수의 몸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안무가는 “시간의 개념을 강조하다 보니 작품이 굉장히 느리다”고 말했다.

“숨 막힐 정도로 느려요. 느린 시간을 느끼면서 보면 이 작품은 큰 전환 없이도,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만나게 돼요. ‘진행된다’는 개념의 움직임이에요. 모든 작업이 재미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마 재미는 없을 거예요. (웃음) 너무 지루하면 잠깐 졸다 일어나도 괜찮아요. 그러면 또 느릿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끊임없는 동작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현대무용가들에게 에너지를 응축된 느린 움직임을 이어가는 안무를 보여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재영 안무가는 “몸을 쓰는 사람들이다 보니, 늘 발산하는 욕망이 생겨나는데 이러한 작업은 억제하는 방식의 표현이라 몸에 익기까진 어려운 점도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안무가 권혁과 함께 창단한 이후 2016년 안무가 이지형이 합류하며 3인 안무가 체제로 정비한 ‘시나브로 가슴에’가 가장 잘 하는 방식의 표현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움직임의 시간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이어오다 보니 이제는 수월해졌다”고 한다.

몸에서 발현하는 예술은 하나의 동작과 움직임을 위해 무수히 많은 고민에서 태어난다. 그는 ‘태양’을 작업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상징적인 몸과 무대의 언어를 통해 “탄생과 소멸의 과정을 겪는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 ‘살아있다는 것만큼 대단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봤어요. 분열한 인류이지만, 이들의 목적은 모두 생존이에요.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념, 종교로 갈라지지만 모두가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생명이더라고요. 우리는 하나의 생명으로 태양 아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을 메시지로 전달하고 싶지는 않아요. 교훈을 담는 작업을 경계하기도 하고요.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정도죠. (웃음)”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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