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준법경영의 모델 같은 사업가다. 번번이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했지만 항상 성장보다 명예를 더 중요시했다. 가족들 보기 떳떳하게,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전과자가 되지는 않겠다는 신념을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런 그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조사받게 됐다면서 “이제는 전지전능한 신(神)만이 기업을 운영해야 할 것 같다”며 탄식을 쏟아냈다. |
들어보니 다수의 투자자가 자금을 모아 기업을 인수했다. 그는 가장 작은 규모의 투자자가 추천한 전문경영인인데도 능력과 경험을 인정받아 CEO가 됐다. 물론 회사의 주식은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 중대재해가 문제될 수 있는 회사였기에 취임 조건으로 경영전문가인 본인과 별도로 CSO(Chief Safety Officer·안전보건 담당 임원)를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해 업무를 분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안전보건과 관련된 일체의 결재나 보고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철저하게 업무와 책임을 분리해서 일했기에 자신이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책임질 일이 있으면 당연히 독립된 지위에서 안전 업무를 총괄하던 CSO가 책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담당 지방노동청에서는 무조건 CEO를 소환해 조사했다. 소유주도 아니고 전문경영인으로서 철저히 업무를 분담하고 책임소재에 대한 근거자료까지 마련해 놓았지만 지방노동청의 조사를 받게 된 그는 결국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제9호에서는 경영책임자 등에 대하여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는’이라는 단어의 해석상 기업이 CEO 이외에 CSO를 선임하는 경우 사안에 따라서는 CEO가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같은 해 12월 8일까지 고용노동부는 모두 211건을 조사해 검찰에 31건을 넘겼는데 단 한 건의 예외 없이 대표이사를 중대재해 발생의 책임자로 인정했다. 대표이사의 형사책임을 피하려고 방패막이로 CSO를 임명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선 근로감독관의 잘못만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근본 취지는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인명 사고를 최대한 예방하자는 것이다. 재해 예방을 위해 더욱 노력하라고 엄격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엄벌 위주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산업재해 및 사망자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유능한 전문경영인들이 위험한 사업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굳이 양자 택일하라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용자보다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어야 하지만 노사 모두에 도움이 되는 법률로 충분히 운영될 수 있다.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되 위헌 논란이 제기되는 규정의 불명확성, 지나치게 징역형 위주의 과잉 처벌 등을 개정하여 능력 있는 경영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법 시행 1주년을 맞아 마침 정부도 형사처벌에서 경제 제재 위주로 개선하면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관리 의무를 노사가 합의한 위험성 평가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니, 노사가 상생하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dingd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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