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8 (토)

[취재썰] "은둔 청년도 소속되고 싶거든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JTBC

〈사진=JTBC 보도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엔 은둔 청년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 있습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안 무서운 회사' 입니다. 이곳을 만든 청년들도 은둔·고립의 경험이 있습니다. 별다른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지난 1년 동안 문의 전화가 100통 넘게 걸려왔다고 합니다. 대표 유승규(30) 씨는 "상담부터 치료까지 해볼 걸 다 해보고 마지막으로 여기 온 경우가 많다"며 "은둔 청년들도 어딘가 소속되고, 어울리고 싶어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이해'"라고 했습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만 최대 13만 명의 20~30대 청년이 은둔·고립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으로 따지면 61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울 송파구 인구가 65만 8000명입니다. 한 자치구에 맞먹는 인구가 세상과 단절된 채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겁니다. 은둔을 극복하고, 같은 어려움을 겪는 또래들에게 손을 내민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관련기사 : "씻는 것조차 버거워"…고립된 청년들, 서울에만 13만명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11544

JTBC

'안 무서운 회사' 유승규(30) 대표, 정인희(29) 활동가. 〈사진=JTBC 보도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신 차려보면 쓰레기장이었다"

Q : 왜 은둔을 하게 됐나?

유승규 : "가부장적인 가정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다. 그걸 나에게 많이 쏟아내셨다. 거품 물고 쓰러지거나, 베란다에서 뛰어내리시려고 하신 적도 있다. 학교 갔다 집에 돌아갈 때면 '엄마가 죽었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효자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주는 편이었고, 그러다 보니 내 고민은 뒷전이었다. 진로 문제나 나의 꿈에 대한 얘기는 꺼낼 수 없었다"

정인희 : "여러 가지가 맞물렸다. 아버지의 가정폭력도 있었고 경제 상황도 안 좋았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밤 늦게까지 방치돼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등교를 거부했고, 중학교 1학년부터는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하면서 스물 다섯 살 까지, 11년 동안 은둔했다."

Q : 은둔 생활은 어땠나?

정인희 : "정말 무기력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씻는 것도 힘들어서 한 달에 한 번 씻을 때도 있었다. 그 정도로 일상 생활이 아예 안 됐다."

유승규 : "스무 살부터 총 4년 정도 집 안에 있었다. 처음엔 가벼운 우울증으로 시작됐던 것 같다. 그냥 슬럼프라고 생각했다. 빨리 조치를 취했다면 나았을 텐데 골든타임을 놓친 것 같다. 활발한 성격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 눈 쳐다보는 것이 힘들어지고, 정신 차려 보면 방이 쓰레기장이 돼 있었다."

JTBC

〈사진=JTBC 보도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약해진 근육에 정신 번쩍…내 잘못이 아니라는 용기

Q : 극복 계기는?

정인희 :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 처음 외출을 한 날이 기억난다. 11년 동안 걸어 다닌 곳이라곤 제 작은 방과 거실, 화장실 정도였다. 근육이 약해져 걷는 방법을 모르겠더라. 거기서 먼저 충격을 받았다. 한 겨울인데도 햇살이 따뜻해 두 번째로 충격을 받았다. 뛰는 법을 잊었다는 것에서 세 번째 충격을 느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사회적 기업의 도움을 받아 검정고시를 보고, 일자리를 찾기도 했다."

유승규 : "어느 순간부터 개인적으로 노력했다. 전화 상담을 시작했고, 그러다 주1회 대면 상담을 위해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에 돌아와서는 다시 혼자였다. 그러다 우연히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사회적 기업 '케이투'를 알게 됐다. 저 같은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에 놀랐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같은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과 생활하며 청소·식사 당번도 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프로그램에도 참가했다. '어른들의 유치원'처럼 같이 생활하면서 다시 시작할 희망을 얻었다.

JTBC

〈사진=JTBC 보도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부모가 "우리 아이 살려달라"며 전화…함께 지내며 회복



Q :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됐나?

유승규 : "'케이투'가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아 문을 닫았다. 그곳에 있었던 경험을 살려 스타트업을 차리게 됐다. 어쩌다 보니 창립 멤버 4명이 다 또래다. 이 친구(정인희)도 '케이투'에서 생활하던 멤버다. 함께 만들자고 하자고 제안해 합류하게 됐다."

Q : 회사 이름이 인상적이다.

유승규 : "은둔하고 계신 분들은 세상에 대해 두려움, 회피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멋진 이름도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거창하게 하기보다는 '무섭지 않은 회사여서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Q : '안 무서운 회사'를 찾는 청년들은?

유승규 : "대부분 20대에서 30대다. 이미 은둔 생활을 오래 한 경우가 많다. 부모가 '10년 넘어 더는 어찌 할 도리가 없어 연락드렸다'라고 전화 오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은둔 청년이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다.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의식 때문이다. 가족들도 치부로 생각해 숨긴다. 특히 스무 살 때부터가 취약하다. 성인이 되면서 부모와의 갈등, 진로 문제 등이 한꺼번에 터지는 거다. 그 때 무언가에서 미끄러진다면 사회적 소속감을 잃은 상태가 된다."

Q : '안 무서운 회사'에선 어떤 생활을 하나?

유승규 : "셰어하우스 이용료는 월 143만 원이다. 함께 사는 것이 기본이고, 연극 등 각종 프로그램도 함께 한다.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청소, 식사 등을 함께 하며 일상의 작은 부분부터 회복해 나간다. 서로를 살피고 보듬게 된다. 가령 옆 방 청년이 '아무개가 트라우마가 심한가 보다. 잠을 잘 때 소리를 지른다'라며 제게 얘기를 해주시기도 한다. 함께 지내다 보면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여기 계셨던 분들 모두 일자리를 찾아 나갔다. 앞으로는 프로그램을 좀 더 고안해보려고 한다."

JTBC

'안 무서운 회사' 직원, 거주자들의 모습. 〈사진=안 무서운 회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은 셰어하우스만 1000여개…전문가, 프로그램 부족



Q : 은둔·고립 청년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승규 : "은둔 청년의 수는 정부가 조사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지금은 가족이 숨기는 경우도 허다해서 드러나지 않는다. 더 효과적인 실태조사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또 일단 스스로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상담을 받고 병원에 가는 것을 치부로 여겨선 안 된다. '은둔형 외톨이'는 병이 아니라, 그저 좀 힘든 상태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하는 거다."

Q : 정책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유승규: "5년, 10년 은둔을 한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 상담을 간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삶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정부 차원의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일본의 경우 요코하마 등 일부 시에서 공동 생활 프로그램 비용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일본엔 민관 통틀어 셰어하우스가 1000곳이 넘는 것으로 안다. 전담 전문가 양성도 중요하다. 저희에게 오는 많은 분들이 이미 모든 것을 다 해보고 온다. 이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상담가가 드물어서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는 거다."

JTBC

〈사진=JTBC 보도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대생도 번아웃 되는 사회…'쓸모없다'는 건 편견

Q : 은둔·고립 청년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유승규 : "은둔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할 것이라는 오해가 많다. 하지만 설문 응답을 보면 어딘가 소속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높게 나타난다. 은둔을 할 때도 소통과 관련된 앱을 사용하는 빈도가 꽤 높게 나타난다. 그만큼 욕구는 있지만 내 상황을 이해해 주고 발걸음을 맞춰 줄 누군가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외톨이라고 쓸모 없는 사람들이 절대 아니다. 생각보다 고학력자도 많다. 서울대 진학하고 나서 '나 이제 못하겠다'라며 번아웃 되신 분들도 봤다. 그러니까 이들을 그냥 두는 건 매우 큰 사회적 손실이다."

Q : 같은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정인희 : "사회 경험도 없이, 씻지도 않으며 숨어 있는 본인의 모습이 수치스러울 테지만 사실 별 거 아니다. 1년 은둔하던 게 2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이 되는 것. 그게 더 무서운 거다. 그러니까 용기를 내서 주변에 도움을 최대한 요청했으면 좋겠다."

신진 기자

JTBC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by JTBC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