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에밀리는 빨간 베레모 등 대담한 패션을 선보인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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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투피스에 샤넬백을 들고 힐을 신은 에밀리가 에펠탑이 보이는 다리를 건넌다. 정점은 에밀리 머리 위에 사랑스럽게 놓인 빨간 베레모. 최근 시즌3까지 선보인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파리에 간 미국인 에밀리의 일과 사랑을 그린 시리즈는 스토리 라인을 두고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과하다 싶게 스타일리시한 에밀리의 패션을 구경하는 맛은 놓칠 수 없다. 전 세계적인 '에밀리 앓이'와 함께 베레모는 시청자들의 '잇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넷플릭스 영화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 스틸컷. 빨간 베레모를 쓴 호텐시아(왼쪽에서 두 번째)는 조연이지만 시청자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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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베레모'는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에도 등장한다. 바로 호텐시아 역의 미샤 가벳이 쓰는 모자다. 조연이지만 춤 실력으로 시선을 빼앗은 갸벳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빨간 베레모 쓴 그 애'로 불린다. 빨간 베레모가 캐릭터의 매력을 더한 것이다.
파리 길거리에서만 보일 것 같은 베레모는 어느새 K팝 시장에도 스며들었다. 연말 시상식 무대엔 베레모를 쓴 남자 아이돌이 올랐다. 그룹 크래비티(CRAVITY)의 형준은 SBS 가요대전에서 트위드 재킷에 빨간 베레모를 매치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했고, 그룹 엔시티 드림(NCT DREAM)의 마크는 H.O.T.의 히트곡 '캔디'를 리메이크한 신곡 무대에서 베레모를 써 복고 느낌을 더했다. 블랙핑크 제니와 아이브(IVE) 장원영 등 여자 아이돌들도 줄줄이 SNS에 베레모를 쓴 사진을 올렸다.
아이브의 장원영은 포근한 느낌이 드는 밝은색 베레모를 화이트룩에 매치시켰다. 앞머리 몇 가닥을 베레모 아래로 내려 사랑스러운 느낌을 낸 것이 포인트. 아이브 장원영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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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는 챙이 없는, 모직물 천으로 만든 모자를 뜻한다. 16세기 프랑스에서 주로 농민들이 쓰던 모자였는데, 20세기 들어 영국군이 베레모를 군용모자로 도입한 이후 여러나라 군대로 퍼져 특수부대나 공군의 대표적 군모로 굳어졌다. 베레모는 실제 전투에서 머리를 보호하는 실용적 기능은 없으나 군 제복과 제식에 어울리는 남성적 멋의 모자로 군에서 자리잡은 것이다.
반면 민간에선 베레모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 패션의 아이템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보니 파커 역의 배우 페이 더너웨이가 단발머리에 비스듬하게 베레모를 착용하면서 세계적인 유행을 타기도 했다. 다만 베레모는 스타일에 따라 여성의 우아함을 돋보이게 할 수 있지만, 자칫 잘못 착용했다가는 '과한 패션' 소리를 듣기 쉬워 일반인들이 소화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에밀리의 '빨간 베레모' 덕에 이제는 길거리에서도 손쉽게 볼 수 있게 됐다. 4일 카카오스타일에 따르면, 지그재그 내 베레모 거래액은 지난해 11~12월 두 달간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초(1~2월) 대비 93% 증가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베레모를 해시태그로 건 게시물만 13만 개 이상이다.
이처럼 군대도 아닌 곳에서 클래식한 매력의 베레모가 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Z세대들이 괜찮은 옷에 더해 멋의 한 끗 차이를 내는 모자까지 신경 쓰면서 난도 있는 아이템인 베레모까지 도전하게 됐다는 게 패션업계 얘기다. 일종의 '꾸꾸'(꾸미고 꾸민) 패션'인 셈이다. 박소현 패션 칼럼니스트는 "옷과 가방, 구두에 이어 마지막으로 멋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이 바로 모자인 만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멋을 내려는 열망을 보여준다"면서 "베레모뿐만 아니라 좀 더 코디가 쉬운 고급스러운 소재의 버킷햇이나 페도라도 인기"라고 말했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주인공 보니 파커 역할을 맡은 배우 페이 더너웨이의 모습. 워너 브라더스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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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패션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인 '뉴트로' 트렌드의 성격도 띠고 있다. 과거 여성 패션에서 파격적 스타일이었던 베레모가 지금의 Z세대 감각과 맞아떨어져 그 멋이 재발견됐다는 것이다. 백은수 한양대 의류학과 교수는 "다양한 매체로 과거 유행했던 스타일이나 이목을 끌었던 콘텐츠, 셀러브리티에 대한 자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면서 "그만큼 10~20대는 기성세대가 여기는 것만큼 과거를 멀고 오래된 것으로 느끼지 않고 새롭고 힙한 스타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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