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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스프] 바보 '도도새' 되지 않으려 '도도새'를 그린 김선우 작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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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우재가 만난 여덟 번째 '지식인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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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여덟 번째 손님은 MZ세대들에게 '도도새 화가'로 주목받고 있는 김선우 작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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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은 말했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예술작품은 어쩌면, 그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건지도 몰라. 영 컬렉터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 마침내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세상이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란 소망을 마침내 이뤄낸 김선우 작가를 만나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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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도도새'가 세상에 알려지다



2021년 9월 한 경매에서 그림값이 폭등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끈 작품이 있었어. <모리셔스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이었지. 신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오마주한 이 작품의 그림값 폭등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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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프린트 에디션(작가가 직접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아닌 찍어낸 그림) 작품도 1천만 원을 호가할 만큼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고 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뿌듯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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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치를 평가받는구나 생각이 드는 동시에 무서운 거예요. 대체 앞으로 뭘 그려야 되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그림을 계속 그려야 된다는 얘기잖아요. 그 중압감이 되게 오랫동안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되게 좋은 자극이었더라고요. 좀 더 좋은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고민도 더 많이 하게 되고"

지금은 부담감보다 더 큰 성장을 생각하게 되었다니 다행이야. 그런데 영 컬렉터들은 그림의 어떤 매력을 알아보고 호응한 것일까, 그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뭘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제가 88년생이거든요. 부모님 세대는 하나만 보고 나가셨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저희 세대는 어떻게 보면 선택권이 너무 많아진 세대인 거예요. 뭘 선택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고민들을 같이 해보게 하는 그림을 그려서 아마 애정을 주시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김선우 작가의 작품에는 일관되게 등장하는 게 있어. 바로 '도도새'야. 이 '도도새'에 담겨진 의미에 가치를 높게 매겨준 것이 아닐까 싶다는 거야.

"도도새가 원래는 날 수 있었던 새라고 해요. 섬이 무인도고 천적도 없고 먹을 것도 많다 보니까 애들이 게을러져서 스스로 날기를 포기한 거죠. 포르투갈 사람들이 발견했는데 장난으로 때려죽이고 이웃 나라에 선물 보내고, 그런데도 얘네들 못 도망가잖아요. 그러다가 멸종이 된 거예요. 도도라는 이름이 포르투갈어로 바보라는 뜻이라고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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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새를 그리기 전에는 새 머리를 한 인간을 그렸어요. 현대인들이 자유를 잃어간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예를 들면 사회에서 제시한 어떤 기준 속에서 맞춰가다 보면 자기가 어떤 걸 원했는지조차 망각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날 수 있었는데 스스로 포기해서 멸종한 거잖아요. 이 새로 내 얘기를 전달해보자라는 생각을 한 거죠. 우리도 현실에 안주하면 이 새들처럼 결국에는 스스로 진정한 자신만의 어떤 가치라든가 자유를 잃게 되지 않을까"

세상이 알아봐 준 작가의 이야기. 그의 염원. 그가 그려낸 것은, 애초에 가졌으나 쓰지 않아 날개를 잃어버리고 결국 멸종한 바보 '도도새'가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또한 우리가 저마다 가진 '날개'로 날아보려는 시도도 않고 꿈을 포기하지 말자는 작가의 주문 같은 거였어.

'도도새'도 날아오를 수, 있다



그래 너다! '도도새'를 발견한 건 어느 날, 어느 순간에서였을까.

"친구들이 '동국대 윤무부 교수'라고 놀렸거든요. 새만 맨날 그렸어요. 원래 새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부러웠거든요.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자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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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도도새가 멸종한 모리셔스섬도 다녀왔어요, 2015년에 한 달 동안. 미술관에서 작가를 여행 보내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동안 해왔던 작업을 판단해서 직접 여행 계획을 하게 해요. 전 제가 원래 그려오던 새 머리 인간을 도도새로 발전시켜보겠다는 제안을 했죠.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그 여행이 아니었으면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인생을 바꿔 놓을 만한 어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하는 것 같아.

"도도새가 멸종된 지 300년이 지나서 사진이 남아 있지가 않아요. 모리셔스에 가면 뼈다귀가 있어요, 박물관에. 이게 100퍼센트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더 재밌는 부분인 것 같아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렇게 탄생하게 된 750여 편의 '도도새' 작품들(드로잉을 제외한) 중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뭘까.

"도도새의 다양한 행위를 통해서 우리들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드리려고 한 건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도도새 행위 중 하나가 횃불을 들고 있는 거예요. 횃불이라는 물건이 어떻게 보면 탐험, 개척의 이미지를 담고 있잖아요.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길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담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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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의 작품이 있었어.

"도도새는 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제 그림에서 도도새는 날고 있거든요. 풍선을 통해서. 제 그림 속에서는 다른 수단으로 도도새도 날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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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날개를 잃어버렸다 해도 괜찮아, 날아오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단다, 그렇게 작가님이 속삭여주는 것만 같지 뭐야. 그냥 볼 때와 그 의미를 알고 볼 때, 한 그림이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다가오는 경험이었어.

'도도새'가 되지 않으려 '도도새'를 그리다



'도도새'만으로 다양한 작품을 표현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본인만의 습관 같은 것도 있을까. 그림을 그리는 작업 방식도 뭔가 남다르지 않을까 궁금했어.

"스케치 단계에서 모든 게 결정 난다고 생각해요. 스케치를 하는 순간 머릿속에 완성작이 있어서 그다음부터는 거의 순수한 노동이에요. 그래서 들인 습관이 작업하면서 책을 읽는 거예요. 정확히는 오디오 북을 듣죠. 작업시간이 곧 독서 시간이어서 1년에 100~200권 정도 읽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 오디오 북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린다니 의외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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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건 '너무 자유롭고 싶어서 새를 좋아했다'는 말과 상반되는 일상이었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작업을 한다는 거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새벽이 너무 좋아요. 아무런 연락도 안 오고 진짜 온전히 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거든요, 새벽이. 그렇다고 밤새고 싶지는 않고요. 그 시간이 뭔가... 집중이 가장 잘되는 시간을 작업에 투자하는 게 어떻게 보면 제 직업에 대한 존중이랄까 예의 같은 것들?"

정해진 시간 안에 갇히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스스로 지켜야 할 시간에 묶여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가능한 걸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승 두 분이 계신데 한 분이 변웅필 작가님, 다른 한 분이 오원배 교수님이에요. 은사님인 변웅필 작가님께는 자기 신념을 이미지로 표현하며 살아간다는 게 멋있다는 것, 작가의 삶을 배운 것 같고요. 오 교수님께는 작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성실한 태도에 대해 배웠죠. 일주일에 드로잉 200장씩 그리라고 시키셨어요. 그때 드로잉을 많이 하는 습관이 잡힌 것 같아요. 완결된 작품을 만드는 건 마음속에 떠다니는 문장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는 것 같은 과정이거든요."

"루틴을 지키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제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생각을 안 했거든요. 옛날부터. 그러니까 미술대학도 그림 못 그려서 한 번 떨어지고 미술대학 내내 나는 왜 이렇게 그림 못 그리지? 생각을 매일 했어요. 내가 제일 잘하는 거는 성실하게 루틴을 지키는 거구나, 할 수 있는 걸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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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자유롭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성실하고 꾸준히 매일 작품을 그리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누구든 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는 할 수 없는 그것을 해내고 있는 단단함이 느껴졌어.

나라도 끝까지 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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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분들도 매년 입사 지원하시잖아요. 포트폴리오 만들고 자소서 쓰셔가지고. 작가들도 똑같아요. 1년에 수십 번씩 그렇게 지원을 해요. 공모전에. 제가 돈이 많으면 좋은 갤러리 대관해서 전시할 텐데 여건이 안 되니까 공모전밖에 없었던 거예요. 승률을 제가 다 정리를 해놨어요. 탈락한 거, 합격한 거. 했더니 100전 99패 정도 되더라고요."

성공은 오래 기억하고 실패는 빨리 잊어야 좌절하지 않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왜 실패를 기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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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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