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정희창 작가가 29일 광주 미로센터 전시장에서 옹기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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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 반신욕기, 화덕, 절구통 등등등. 광주광역시 궁동 예술의 거리 내 복합문화공간 미로센터에서 20~30일 열리고 있는 ‘옹기생활’ 전시장에서는 제목 그대로 옹기로 빚은 다양한 생활용품을 볼 수 있다. 전남 장성에서 옹기 공방 창아트를 운영하는 정희창(51) 작가와 제자 5명(나창혁·문상조·이승빈·이승엽·조도휘)이 함께 마련한 전시로 동구청(청장 임택)에서 주최했다.
최근 배우 최불암이 진행하는 <한국방송>(KBS) 음식기행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 등장해 화제를 모은 ‘옹기 화덕항아리’도 그의 공방에서 창안해낸 작품이다. 항아리 속에 고리를 둘러 고기 등 음식을 끼워 걸고 바닥에 넣은 숯불의 복사열로 굽는 방식인데 기름이 곧바로 빠져 담백하고 열 지속성이 높아 타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옹기는 1970년대까지 일반 가정에서 널리 쓰였지만 스테인레스나 플라스틱에 밀려 점차 사라졌지요. 하지만 옹기로도 뭐든 만들 수 있고, 쓰임새가 다양하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29일 정 작가에게 ‘오래된 미래’ 옹기의 매력에 대해 들어봤다.
전남대 미대 4학년 때 ‘옹기’ 끌려
옛가마터 장인들 찾아 도제식 습작
“20여년 시행착오 ‘적정온도’ 찾아”
제자 5명과 함께 ‘옹기생활’ 전시
화덕·욕조·족욕기 등 일상용품 창안
“플라스틱 쓰레기 해결 대안으로”
정희창 작가가 옹기로 빚어 만든 반신욕기를 소개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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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창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옹기욕조. 김용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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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는 건 옻칠을 하지 않은 토기 작품이다. 신석기∼청동기 시대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를 재현한 것이다. 황토색 본연의 누런 빛깔을 살린 작품이다. 한쪽에는 검은 빛깔의 술병과 찻잔 등 정감 어린 소품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출품된 작품은 실제로 사용 가능한 물품들이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뜻하는데 삼국시대 이전부터 써왔죠. 그런데 지금은 장독대의 항아리 말고는 박물관에 박제된 것만 볼 수 있어요. ‘왜 우리 전통을 활용하지 못 하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옹기는 지금 시대에도 충분히 멋을 내면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거든요.”
전남대 미술학과에서 공예를 전공한 정 작가는 대학 4학년 때 옹기의 매력에 빠졌다. 검은빛이 반짝거리는 대형옹기를 본 그는 공부하고 있던 도예를 그만두고 옹기를 빚기 시작했다.
“국보나 보물 같은 문화재로 지정된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옹기는 우리 주변에 흔한 민속품의 하나였잖아요?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옹기를 가르치는 곳도 교수도 없어 지역의 옛 가마나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도제식으로 배워야했어요. 더구나 조형미를 갖춘 작품으로 만들어내기까지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가 겪은 가장 큰 시행착오는 가마 온도 맞추기였다. “굽는 온도가 너무 높으면 흙 속에 있는 철분이 끓어 불량 옹기가 나오고, 너무 낮으면 표면 유리질화가 덜 돼 강도가 약했어요. 무수한 실패 끝에 최적의 온도를 찾아낼 수 있었죠.”
경기도 가평에 있는 전통한옥호텔 능선의 거실에 정희창 작가의 옹기 타일로 된 욕조가 설치되어 있다. 능선 제공 |
이를테면 이번 전시에 처음 선보인 옹기욕조와 반신욕기, 족욕기가 대표적이다. 항아리나 그릇, 병 같은 기존의 옹기를 뛰어넘는 독특한 발상과 다양한 개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도해본 작품이다. 어른 남성 한명이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옹기욕조는 사발을 타원형으로 찌그러뜨린 모양새다. 유약을 발라 구워냈기 때문에 표면은 매끄럽다. 플라스틱과 달리 옹기는 열을 품기 때문에 욕조에 따뜻한 물을 담았을 때 온기가 오래 지속하는 장점도 있다. 반신욕기도 지름 1m에 이르는 큰 크기였다. 정 작가는 최근 경기도 가평에서 문을 연 전통한옥호텔 능선(가평재)에 거실마다 설치된 욕조용 옹기 타일도 개발해 호평을 받았다.
“크기도 하고 두께도 있어야 하는 용품들인데, 1210도에서 구워냈더니 웬만하면 깨지지 않는 강도를 지니고 있어요.”
‘물 흐르는 테이블’도 옹기의 새로운 쓰임새를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원목 테이블의 상판 가운데로 물을 흐르게 하고, 바닥에는 옹기 중 가장 큰 종류인 소래기를 놓아 떨어지는 물을 받도록 했다. 옛 시절 부유한 집에서 김장을 할 때 자주 썼지만 플라스틱 대야에 자리를 내준 소래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 전통주를 만들 때 쓰는 옹기 소줏고리와 숙성통도 눈에 띈다. 서구식 스테인리스 증류기와 오크통을 사용할 때보다 술맛이 좋다고 했다. 강원도 홍천 등에 있는 전통주 주조장에서 자주 찾고 있다.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식기도 다양하다. 커피콩을 갈 때 쓰는 소형 절구통부터 1ℓ 남짓 물병·술병, 접시, 잔 등은 선물용으로 인기 있다고 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두께가 얇아서 깨지기 쉽기 때문에 굽는 온도를 1230도까지 올려 강도를 높였죠.”
정희창 작가의 ‘물 흐르는 테이블’ 작품. 김용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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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미로센터에서 열리는 ‘옹기생활’전에 출품된 창아트의 다양한 옹기 작품들. 김용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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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는 특히 옹기는 미세 기공이 있어 씻어도 세제가 남아 위생적이지 않다는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세라믹기술원에서 강도, 흡수율 실험도 마쳤다.
정 작가는 옹기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도자기에 비해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을 장점으로 꼽았다.
“옹기는 흙과 유약만 있으면 만들 수 있고, 깨져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환경에 해롭지 않습니다. 도자기와 스테인리스로 만드는 모든 것들을 옹기로 제작할 수 있어요.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옹기의 매력을 끊임없이 개발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찾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는 함께 옹기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젊은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공방을 찾아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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