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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스프] 1천 명 악의 마음을 읽어온 권일용 프로파일러에게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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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우재가 만난 일곱 번째 '지식인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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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일곱 번째 손님은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 불리는 권일용 교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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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해내는 전문가 ‘악의 마음을 읽는 자’ 권일용 교수의 성장키워드는 뭘지, 우리가 그의 마음을 읽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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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한디~ 계획은 없었다



‘흉악범죄의 프로파일링을 맡아 대한민국에 프로파일링 기법을 현장에 정착시킨 인물’.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무색할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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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가톨릭이라 신부가 되어서 남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차분한 말투와 근엄한 몸가짐, 지금 모습이 익숙해서일까. 쉽게 그려지지 않는 ‘청년 권일용’의 꿈이었어. 그럼 어떻게 하다가 프로파일러가 된 걸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결심해서 된 일이 아니에요. 집도 어려웠고 2대 독자에 장남이라 경찰이 되려고 했죠.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을 때 강력계 형사로 시작을 했어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던 무렵이어서 시경 소속의 형사 기동대가 있었는데 현재 광역수사대의 전신이에요. 거기서 근무를 마치고 CSI가 됐어요. 자원이 아니라 발령이 난 거죠.”

원한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고 해. 그게 시작이었어.

“처음엔 막막했죠. CSI(현장감식요원)에 대한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해보니까 재밌고 잘 되는 거예요. 정말 운이 좋게도 가는 곳마다 지문 채취나 DNA 채취를 해내서 실적이 너무 좋았어요.”

증거 수집에 필요한 재능은 어떤 걸까 궁금했어. 남모를 노하우라도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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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CSI 처음 시작했을 때 지문이 현장에 가니까 딱 보여, 눈에. 그런데 붓으로 싹싹 해봤더니 이게 지워져 버렸어요.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이놈을 잡을 수 있었는데 내가 능력도 없고 실수해서 채취를 못 했구나, 그래서 한 달 동안 똑같은 재질의 나무를 구입해서 내 지문을 찍어놓고 연습을 했어요. 다른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으로 그 범인을 잡았는데 그때 놓쳤던 범인이더라고요.”

오기(傲氣). 사전적 의미는 ‘능력은 부족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지만 노력(努力: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과 같은 말처럼 들렸어.

“그래서 이게 어떤 오기는 결국은 내가 이놈, 범죄자와 내가 싸우는 오기지만 그 배경에는 이 사건을 저지른 범인 때문에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이 눈에 보이잖아요. 이게 내가 할 일이구나 이런 감정을 유지하게 되는 힘이 되는 거죠.”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을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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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거기서 특진을 했어요. 다른 부서에 가겠다고 그랬더니 그냥 해. 그렇게 한 8년 정도 했죠. 그때 다른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야, 이 범죄자들이 똑같이 절도범인데 사람에 따라서 행동하는 게 다르구나.”

눈앞에 놓인 일에 진심을 쏟다 보니 물 흐르듯, 어느새 새로운 수사 방법을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거야.

“프로파일링은 원래 행동분석이에요. 침입의 방법도 다르고 물색하는 방법도 다르고 도망갈 때 증거인멸 방법도 다 달라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비슷한 애들이 있다는 거예요. 이거 흥미로운데? 만약에 지문이 안 나와도 행동만 보면 어떤 애구나 알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프로파일링(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나 범행 패턴을 분석해 범인의 심리상태나 경향 등을 특정 지어 범인의 프로필을 뽑아내는 수사법)이 지금에야 상식이 됐지만 당시 국내에선 용어조차 생소한 낯선 수사기법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그의 직감은 남달랐던 듯해.

“현장에 증거물이 줄어들고 계획범죄가 생기고 나쁜 놈들이 이렇게 막 변화하니까 그러면 한국 경찰도 FBI처럼 만들어 보자라는 분위기가 있었죠. 누군가 해야됐어요. 원하지 않게 또 발령이 난 거죠. 너는 오늘부터 한국 경찰의 프로파일러야. 경험도 없고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어 고민이라 했더니 한 달간 스토킹처럼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등 떠밀려 ‘1호 프로파일러’가 되었어. 조금 김빠지는 스토리라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정표 없는 길을 묵묵히 내딛는 그 한 걸음, 걸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어볼 사람이 없고 이 업무 자체가 물어봐서 될 일도 아닌 거 같고, 그래서 뭘 해야 될지 모르는 막막함...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느냐 두려움 이것도 굉장히 힘들었었죠. 두렵고 막막해서 FBI자료들을 찾아보는데 그마저도 안 맞아요. 한국의 범죄 유형하고. 국가별로 문화도 다르고 범죄 동기가 되는 것도 다르고 특히 범행 도구가 다르잖아요. 그냥 총 쏘고 가버리는 현장들이고 한국은 굉장히 많은 다량의 피가 있고. 그래서 분석을 하는 기법도 달라요.”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었을 것 같아. 하지만 결국은 해냈다는 것이 중요하겠지. 목표한 바 없는데 국내 손꼽히는 프로파일러로 인정받게 된 건 특별히 프로파일링을 ‘잘하는’, 어떤 ‘프로파일러 재질’을 타고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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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고통을 내가 공감할 때 동기가 형성되잖아요. 그러면 어떤 범죄자를 만나는, 어떤 막연함과 두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극복할 수 있는 건 피해자의 고통을 내가 공감할 때 목표가 생겨버리기 때문에 상황을 지배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잔혹한 현장을 어떻게 보느냐 그러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반드시 밝혀야되겠다는 생각으로 보면 잔혹함보다는 행동이 보이기 시작해요.”

냉철한 시각으로 사건 현장을 분석하는데 ‘미친다’면 결국 범인을 잡는 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그 일념으로 꾸준히 노력해 온 것이 전부였다고 해.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때



프로파일러 17년, 경찰 생활 합쳐 28년 6개월여의 근무. 십수 년 잔혹한 현장을 보다 보면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아.

“동료들하고 같이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굉장히 많이 극복이 됐어요. 트라우마라고 하는 것이 어디 가서도 할 수 없는 얘기들인데 우리는 같이 겪었잖아요. 나 혼자 있었던 거 아니야, 차를 마시면서 너도 같이 있었지 수다를 떨면서 그 마음을 공감하는 거예요. 그래, 너 힘들 때 나 힘들 때 있잖아. 니가 되게 고마웠다. 한 시간 정도 하고 나면 세로토닌이 분비가 돼요. 행복한 물결처럼.”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사회적 유대관계가 실제 마음을 안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해. 경험해 본 바 믿고 있었어. 그리고 이건 본인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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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이 넘는 범죄자를 만나보니까 가족들과 살고 있어도 심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어요. 사회 유대관계를 단절해요.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내가 사는 사회에 같이 사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유대관계가 단절돼 버리면 화났을 땐 내가 누굴 때렸어, 왜 미안해 해야 되지? 내가 사는 세상과 네가 사는 세상은 다르잖아. 다 고립된 상태에서 나오는 거라서 저는 주의 깊게 봐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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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주, 우리 사회 안에서 괴물이 만들어진다는 걸 잊는 거 같아요. 불안에 흔들리고 스트레스에 취약하면 누구도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꼭 내가 무슨 말을 하고 풀어야지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고, 나는 갈 데가 있고 난 업무가 끝나도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라는 생각만 있어도 이게 조정이 돼요. 감정이 나의 고립감을 벗어나게 하는 건데 똑같은 역할을 해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어도 그것을 극복하는 건 내가 누구와 함께 있다는 공동체 의식, 이것이 있다면 당혹스럽고 힘든 상황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악인’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 주변, 내 옆의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생각을 가져주길 바랐어. 한 치 앞날을 알 수 없어 불안함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프로파일러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없을까.

“사실 저는 어느 순간 갑자기 결과물이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늘 젊은 시절은 불안하고 두렵고 미래가 불분명하고 항상 내가 뭔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발목을 잡는 건 생기고,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내가 지금 목표로 한 게 뭔지 자기가 잘 모를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순경이 되고 CSI를 하면서 특진을 하고 범인을 많이 잡아서 유명한 경찰이 될 거야, 이런 게 아니었어요. 현장에서 눈앞에 보이는 이놈을 잡는 게 쌓이고 쌓여서 CSI로 인정을 받았잖아요.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현재의 내 발밑을 믿어야 돼요. 그런데 내 발밑을 내가 못 믿어. 이걸 디딜까 말까 되게 고민을 해요. 인생은 그냥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내가 간 길이 선택의 결과이지.”

원대한 포부나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청년들도 있을 텐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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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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