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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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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지 말라”던 성철 스님도 이 책은 꼭 읽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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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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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오른쪽)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일본어를 배워서라도 『정법안장』을 읽어보라고 했다. [사진 여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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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궁통1

일본 불교사에서 도겐(道元, 1200∼1253) 선사의 위상은 아주 대단합니다. 특히 그가 남긴 총 95권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은 불교뿐 아니라 일본 문화의 뼈대가 된 책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도겐 선사는 일본 조동종을 처음 연 인물입니다. 조동종은 일본에서 정토진종 다음으로 큰 불교 종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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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겐 선사


『정법안장』은 도겐 선사의 일생에 걸친 수행과 사색을 집대성한 저서입니다. 송나라로 유학을 가서 보고 듣고 체험한 선(禪)의 요지를 기록한 선서(禪書)입니다. 송나라에서 귀국한 도겐은 32세 때부터 『정법안장』 1권을 쓰기 시작해 54세에 입적하기까지 총 95권을 남겼습니다.

#궁궁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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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겐 선사가 13세기에 쓴 이 책이 최근 한국어로 번역·출판됐다(작은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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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사들도 법문을 할 때 일본의 『정법안장』을 종종 인용했습니다. 성철 스님도 그랬고, 서옹 스님이나 혜암 스님도 그랬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불교냐, 일본 불교냐, 아니면 중국 불교냐를 떠나 『정법안장』에는 불교의 심장, 부처님의 깨달음, 선(禪)의 진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철·서옹·혜암 스님은 모두 일본어로 된 『정법안장』을 읽었습니다. 왜냐고요? 한국어로 번역된 『정법안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정법안장』 총 95권을 모두 한글로 번역한 책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됐습니다. 『정법안장』 95권을 열두 권의 두툼한 책으로 묶어서 내놓은 『역주 정법안장 강의』(여래장)입니다. 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보광(조계종 호계원장) 스님이 40년에 걸친 필생의 노력 끝에 내놓은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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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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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은 생전에 “책 읽지 말라”는 말도 남겼지만, 『정법안장』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실제로 성철 스님은 석남사 비구니 스님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며 『정법안장』을 보도록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글판이 없었으니 일본어를 모르면 『정법안장』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궁궁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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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보광 스님은 “『정법안장』 총 95권을 한글로 완역했으니 이제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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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법안장』 완역이라는 대장정을 마친 보광 스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Q : 도겐 선사는 왜 『정법안장』을 썼나.

A : “800년 전만 해도 일본 불교에는 선(禪)이 없었다. 중국 송나라에 유학하며 선(禪)의 진수를 체험한 도겐 선사가 일본에 선(禪)을 전하기 위해 『정법안장』을 남겼다. 이 때문에 『정법안장』에는 선어록이나 선문답 일화뿐 아니라 송나라 때 선방의 구체적인 구조와 생활 방식, 그리고 좌선 시스템 등이 기록돼 있다.”

Q : 한국 불교는 임제종 전통의 간화선 수행 중심이다. 일본과 달리 조동종은 무척 낯설다. 조동종 선불교의 매력은 뭔가.

A : “일본 선(禪)불교에는 세 종파가 있다. 임제종과 조동종, 그리고 황벽종이다. 임제종은 임제선의 간화선이다. 조동종은 묵조선의 좌선이다. 황벽종은 염불선이다. 일본에서 임제종은 주로 황실이나 쇼군들을 중심으로 한 상류층에서 믿었다. 반면에 조동종은 서민들 중심으로 믿었던 선불교였다.”

Q : 조동종은 어떤 식으로 부처님을 닮고자 하나.

A : “첫째로 자세가 닮아야 한다. 둘째는 말이 닮아야 하고, 행동이 닮아야 하며, 마음이 닮아야 한다. 임제종의 간화선은 어떤 화두를 가지고 매진한다. 전문 수도자인 스님은 해도 일반인은 좀 어렵지 않나. 그래서 조동종은 부처님을 닮자고 말한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궁궁통4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도 사람입니다. 그가 깨친 것은 인도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 그 실체를 깨친 것입니다.

도겐 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불교냐, 한국 불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철 스님이 일본어를 배워서까지 『정법안장』을 일독하라고 권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도겐 선사가 설하는 깨달음의 풍경이 너무나 쉽고도 정확하게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도겐 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도(佛道)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것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 자기를 잊는다는 것은 나와 타자의 몸과 마음이 무아(無我)로 비워져 자기를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벗어나고 자신의 마음을 잊는 것이다. 나로부터의 해방이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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