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던 음식을 억지로 먹게 하던 급식 시간이나, 젓가락질 훈계를 듣고 몹시 민망하던 어린 시절의 밥상을 생각하면 ‘식사 예절’ 또는 ‘의례’란 덜컥 겁이 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오랜 세월 쌓아온 인류의 문화에서 힌트를 얻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도 있습니다. 혼밥은 때로 더없이 기쁘고 행복한 일이지만, 등을 구부리고 스마트폰을 보며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해치운 끼니가 이어지면 ‘이건 아닌데’ 싶더라고요.
욕심내지 않고 먹는 태도를 배우기 위해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의례에 따라 먹으며 잘 먹는 법에 대한 힌트를 찾고자 했어요.
수행이 ‘일’인 스님들은 음식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도 궁금했습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식사법
지난 11월 30일, 서울 안국동의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열린 ‘발우공양 체험’에 참여했습니다. ‘발우공양’은 승가의 식사법을 일컫는 말입니다.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나 체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요즘 지구 환경 오염의 경각심을 피부로 느낍니다. 발우공양은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식사법이 아닌가 합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환경을 보호하는 문화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식당이나 집에서 공양(식사)하실 때도 활용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지도 법사인 성화 스님이 이런 말씀으로 발우공양을 소개하셨어요. 먹을 만큼 덜어 남김없이 먹고, 자신이 쓴 그릇은 깨끗이 헹궈 면행주로 닦아 원상태로 돌려놓는 게 핵심입니다.
이날 체험은 스님들이 수행 때 하시는 것처럼 비교적 엄격한 법식에 따라 진행되었어요. 보통 사찰을 방문하시거나 템플스테이를 하시게 되면 이보다는 훨씬 대중적인 방식으로 식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 안국동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열린 ‘발우공양 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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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 앞에 법식에 따라 가지런히 정돈된 그릇과 수저, 행주가 놓였습니다. 나무로 만든 네 개의 그릇을 ‘발우’라고 부릅니다.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큰 그릇 안에 작은 그릇이 들어있는데, 식사를 시작하면 그릇을 모두 꺼내 펼칩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발우를 편다’는 말을 ‘식사를 시작한다’는 뜻으로 쓰신대요.
이렇게 조용한 끼니는 처음이야
“고요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셔야 해요.”
식사는 말없이 진행됩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도록 하고, 옆 사람과 대화하지 않으며 먹는 일에만 집중해야 해요.
처음에 스님이 ‘묵언’을 얘기하셨을 때 모두 조금 당황한 듯했습니다. 평소에 이런 경험이 참 드물잖아요. 공양이 끝나고 참가하신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제 인생에서 제일 조용한 식사였어요”라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어요. “오직 음식에만 집중한 시간”이라고 하신 분도 계셨고요.
저의 식사는 사실 다른 분들보다 좀 분주했습니다. 사진도 찍고, 독자님들께 전해드릴 이야기도 중간중간 메모했거든요. 그래서 고요함을 지향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는데, 다른 분들이 몹시 진지하게 식사에 열중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숭늉을 따를 때라든지, 그릇 헹군 물을 양동이에 부을 때라든지, ‘조로록 조로록’ 소리만 들리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스님 말씀에 따르면, 수행할 때는 이런 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물이 양동이 벽을 잘 타고 흐르도록 한답니다. 모두 내면의 고요함을 만드는 과정이라고요.
밥, 국, 숭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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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춧국에 얼굴을 파묻었다가 그만...
밥과 국, 반찬은 원하는 만큼 덜어 먹습니다. 먹고 더 먹어도 된대요. 다만 남기면 안 되어서, 처음부터 욕심을 내면 곤란합니다.
식탐을 다스리려고 이 자리에 왔다지만, 밥과 국이 나올 때부터 욕심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배춧국과 나물, 버섯 튀김 반찬이 정말 맛있어 보였거든요. 평소보다 적은 양을 덜겠다고 결심했지만, 국자와 젓가락이 쉽게 놓이지 않았습니다.
조계종 사찰음식점 ‘발우공양’에서 준비한 반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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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식에 따라야 하므로 모든 것을 천천히 했습니다. 밥을 받고 나면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기 전에 먼저 밥그릇(어시발우)을 이마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내려야 합니다.
스님의 죽비 소리와 함께 식사를 시작하면, ‘조용히 먹는다’는 것 외에 지킬 것이 또 있습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둘 중 하나만 들어야 하고, 쓰지 않는 하나는 반드시 제자리(천수발우)에 둬야 합니다.
이게 아주 어렵더라고요. 늘 되는대로 양손에 수저를 잡고 급하게 먹다 보니, 가장 낯선 부분이 이것이었습니다.
수저 예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니 성급하게 음식에 달려들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조금은 가라앉은 마음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밥과 국, 반찬을 덜고 예법에 따라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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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중에 배춧국이 너무나 시원해서, 국그릇에 얼굴을 묻고 나오지 못할 뻔했어요. 잠시 배춧국의 세계에 넋을 잃다 정신을 차리니….
세상에, 곧 숭늉을 받아야 하는데 밥과 찬이 한참 남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래도 먹는 게 좀 느린 편인데요. 처음에 ‘괜찮아, 끝나고 마저 먹거나 남기고 가면 되지 뭐’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릇을 깨끗이 헹궈 숭늉까지 마셔야 하는데! 남길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발우 체험도 중요하지만 맛있는 한 끼도 중요하니까요. 충분히 드시고 싶은 만큼 맛있게 드세요.”
제 마음을 읽은 양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단체 생활이 기본인 승가에서는 밥을 먹는 속도를 배려하고 어떻게 먹는지 둘러보는 것이 죽비를 들고 발우를 이끄는 스님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해요.
어쨌거나 마음이 급해진 저는, 덜어둔 반찬을 우적우적 빨리 먹기 시작합니다. ‘쩝쩝’, ‘후루룩’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당황한 와중에 음식이 얼마나 맛있던지요. 이날 음식은 조계종이 운영하는 사찰음식 전문 레스토랑 ‘발우공양’에서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식기를 닦는 일
식사를 마치면 발우와 수저를 처음 그대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반찬으로 받은 무를 꼭 챙겨뒀다가 그릇을 ‘쓱쓱’ 닦는 데 써요.
다 닦고 나면 이 무도 먹습니다. 사찰 체험을 하신 분들 중에 이게 아주 어려웠다고 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별 거부감이 없습니다. 참여하신 분들도 자연스럽게 하시는 것 같았어요.
다만 이렇게 하려면, 먼저 남김없이 먹어야 합니다.
절임무로 그릇을 닦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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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릇을 닦은 물을 따라 버리고 수건으로 네 개의 발우를 닦았어요. 이런…. 급하게 먹고 마구 닦았더니 깨끗한 소창 행주에 얼룩덜룩 뻘건 고춧가루가 많이 남아버렸습니다. 이 행주를 처음 그 상태대로 발우 위에 덮는 것이 예법인데, 벌게진 수건이 몹시 민망했어요.
“밥 한번 먹기 되게 어렵죠?”
스님이 또다시 제 마음을 읽으신 듯이 말씀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스님들은 어떻게 드실까
승가대학에서 수행 중에 이런 식사를 매일 하다 보면, 스님들끼리는 짓궂은 장난도 치신대요. 예법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밥과 국, 찬까지 국발우에 전부 다 받는 분도 계신대요. “‘설거지 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의지가 담긴 것”이라며 스님이 웃으셨습니다.
친한 이들이 장난으로 서로의 그릇에 숭늉을 가득 부어놓곤 해서, 다 마시느라 고생을 했다는 얘기도 하셨어요.
사찰음식은 채식을 기본으로 하는데, 일반 채식과는 조금 달라요. 오신을 쓰지 않습니다. 매운맛의 다섯 채소를 일컫는 오신은 원래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뜻하는데, 흥거를 쓰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양파를 금하고 있습니다.
성화 스님이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의 ‘발우공양 체험’에서 발우공양의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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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식’에 가까운 이 재료들은 냄새가 많이 나고 에너지를 들뜨게 해 고요하고 적막한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게 이유랍니다.
스님들은 사찰에서 어떻게 식사를 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1일 2식을 기본으로 하되, 농사를 짓거나 육체노동을 하는 경우 끼니를 늘리고 새참도 하신다고 해요.
차와 커피도 중요합니다. 수행을 하다 졸거나 잠드는 것을 ‘수마에 빠지다’라고 표현하는데, ‘수마를 쫓기’ 위해 차는 사찰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음식이었다고 해요. 요즘 스님들은 취향에 따라 커피도 드신다고 합니다.
식사가 끝나면 발우를 헹구고 닦아 원상태로 돌려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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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세기 중독자'의 결심
이날 체험에 참여한 분들은 ‘자극적인 음식과 멀어지고 싶었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설거지에 대한 얘기도 나왔습니다. 한 참가자께서는 “집에서 분위기를 내서 그릇을 많이 꺼내기보다 한 접시를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설거지와 관련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식기세척기 사용을 시작한 이래로, ‘기계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릇을 많이 펼치는 습관이 생겼거든요. 하지만 식세기를 채우려면 일정량의 그릇이 나와야 하니, 다음 끼니까지 그릇을 모으느라 개수대가 지저분해지는 일도 생기고, 안 쓸 그릇을 더 많이 쓰게 되는 일도 있더라고요.
먹은 자리에서 싹싹 닦아 그릇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래 잊고 지냈습니다. 사찰 체험에서처럼 양념까지 닦아 먹긴 어렵겠지만, 귤껍질로 그릇을 닦고 간단하게 손 설거지를 하는 정도는 습관화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리법’을 배우러 강의에 오는 분들이 많지만, 실은 사찰음식은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라고 성화 스님이 말씀하셨어요. “음식을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대해보자”라고도요.
마지막으로, 공양을 시작하기 전에 낭송하는 ‘오관게’를 나눕니다. 가끔 넘치는 식탐이 당혹스러울 때 한 번씩 읊어볼까 싶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이 기사는 금요일 오전 도토리 에디터가 보내드리는 식생활 뉴스레터 ‘끼니로그’에 소개되었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검색창에 ‘끼니로그’를 입력하거나 주소창에 아래 주소를 입력해서 신청해 주세요. 음식을 고르고, 맛있게 먹고,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 노력과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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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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