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이번 사고로 카카오가 아직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데이터센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논란이 됐다. 그간 국내 시장에서 막대한 점유율을 가져가면서 ‘IT 공룡’으로 성장한 국내 테크 플랫폼 회사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선 사업모델(BM) 다각화와 규모 확장 등 ‘성장’뿐 아니라 기업 거버넌스와 서비스 안정성 등 ‘기본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카카오 ‘먹통 사태’는 카카오뿐 아니라 국내 정보기술 업계에 큰 과제를 남겼다는 평가다. 카카오가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먹통 사태와 관련해 이르면 사고 발생 원인과 후속조치·재발 방지 대책 등을 업계에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한 이유다. 이번 사태로 데이터센터의 안전·보안과 재해 복구의 중요성이 부각된 가운데 사고 사례를 소상히 공개해 한국 정보기술 업계가 타산지석으로 삼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다. 카카오는 연례 개발자 공개 콘퍼런스인 ‘이프 카카오’에서 별도의 공유세션을 만들어 사고 발생 원인과 개선책 마련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이후 개선책을 발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카카오는 현재 원인조사소위, 재발방지대책소위, 보상검토소위 등 3개 분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 중이다. 카카오는 장애 원인을 조사하는 소위원회를 외부 기술전문가인 이확영 그렙 최고경영자(CEO)에게 맡겼고, 지난 2주간 서비스 장애 원인부터 장애 복구까지 전 과정에 걸쳐 조사를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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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 시대 심장’ 데이터센터
데이터센터란 인터넷과 연결된 데이터를 모아두는 시설을 말한다. 데이터센터는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핵심인 서버를 비롯해 인터넷 구축을 위해 중요한 통신 기기인 라우터, 안정적 전원 공급을 위한 UPS 등으로 구성된다. 사실상 서버가 요구하는 모든 자원을 건물 자체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빅테크뿐 아니라 IT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들과 개인들은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 이용자 간 오가는 대규모 데이터를 인터넷을 통해 외부 서버의 성능 좋은 서버에 전달·저장한다. 이러한 대형 서버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물리적 공간이 바로 데이터센터다. 많게는 10만 개 이상의 서버를 두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센터를 ‘서버호텔’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데이터센터는 인터넷데이터센터인 IDC(Internet Data Center), 클라우드 컴퓨팅을 위한 데이터센터인 CDC (Cloud Data Center) 등으로 구분된다. 통상적으로는 이를 모두 포괄해 IDC나 데이터센터라고 지칭한다. 일반적인 데이터센터들도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구분이 필요 없어진 탓이다.
데이터센터는 클라우드 시장과 함께 급성장하고 있다. 클라우드란, 인터넷 통신망 어딘가에 ‘구름’처럼 싸여 보이지 않는 컴퓨팅 자원을 각 기관·기업 내부의 전산실에서 벗어나 필요한 만큼 외부에서 가져다 쓸 수 있는 가상 서버를 말한다. 개념 자체는 가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버와 네트워크 장치를 비롯한 컴퓨팅 장비를 갖춘 물리적 공간, 바로 데이터센터가 필수적이다. 특히 초거대 데이터센터는 10만 대 이상의 서버를 운영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로 통용된다. 일종의 거대한 ‘데이터 물류센터’인 셈이다.
데이터센터가 없으면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데이터센터가 서비스의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 시설로 분류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데이터센터를 특급 보안시설에 준해 운영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은 매우 높아, 전쟁과 같은 유사 상황 발생 시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시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전 세계에는 1851개의 데이터센터(2021년 기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2만㎡ 이상 규모의 ‘하이퍼스케일(초대형 데이터센터)’은 전 세계에 659개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올해 기준 156곳의 데이터센터가 있다. 데이터센터는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데이터센터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24시간 쉴 새 없이 가동되는 데이터센터는 서버 운용뿐 아니라 실내 냉각과 습도 유지에도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는 2020년 기준 약 200~250TWh(테라와트시)의 전력을 소모했다. 전 세계 전력 수요의 1% 수준으로 웬만한 국가의 전력 소비량을 웃도는 수준이다.
산으로 간 네이버, 대학으로 간 카카오
이처럼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자체적으로 데이터센터를 설립해 운영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영세한 회사의 경우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과 운영에 상당한 비용이 들고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돈을 내고 데이터센터를 빌려 쓰기도 한다. 이번에 화재가 난 판교 데이터센터의 경우 카카오가 SK C&C의 데이터센터를 이용한 것이다. 네이버의 경우 춘천에 자체 데이터센터 ‘각’을 운영 중이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고 발생 이후 “카카오도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새로 짓는 센터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전에 사고가 터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카오는 4600억원을 투입해 내년 중 안산 일대에 자체 데이터센터를 완공할 예정이다.
또 카카오는 시흥에서 2024년 데이터센터를 착공하는 것도 목표로 추진 중이다. 데이터센터 입지 선정에서 네이버와 카카오는 상반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카카오는 예정된 데이터센터를 모두 경기도에 있는 대학에 지을 예정이다. 수도권 내 용지를 확보하고 산학 협력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데이터센터와 함께 연구 공간을 마련해 학계와 메타버스, 인공지능(AI)과 같은 미래 신사업을 같이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네이버는 ‘산(山)’을 택했다. 네이버의 경우 2013년 강원도 춘천 구봉산 자락에 첫 데이터센터를 설립한 후 세종시에 제2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두 곳 모두 산속이다. 네이버는 “춘천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11.1도로 수도권보다 1~2도 낮다. 낮은 기온은 뜨거워진 서버를 냉각하는 데 들어가는 전력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청정지역이라 먼지로 인한 서버 오작동 위험이 적다”고 춘천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에 들어서는 카카오 제1데이터센터는 2024년 1월 가동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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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에 막대한 투자하는 빅테크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여기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해외 빅테크들은 자체 데이터센터와 DR센터 설립 등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릴 뿐만 아니라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를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과 재해 복구(DR) 매뉴얼과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재 또는 기타 운영 중단을 야기하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데이터 액세스를 다른 데이터센터로 자동으로 전환해 중단 없이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치하거나, 비상용 백업 발전기를 구비해 정전 시에도 데이터센터에 계속 전력을 공급하는 식이다.
지난 7월 19일 유럽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으로 구글의 영국 데이터센터가 멈춰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영국 역사상 최초로 섭씨 40.3도를 기록하는 등 폭염으로 구글 클라우드 센터의 냉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가동이 중단됐다. 구글은 하드웨어 컴포넌트의 영구적 손상으로 장기적으로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즉시 데이터센터를 셧다운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후 자체 ‘재해·재난 대응 매뉴얼’을 가동해 피해를 막았다. 구글은 당시 사건보고서에서 “장애 인지부터 완전한 복구에 18시간23분이 걸렸으며, 일부 서비스의 중단은 있었어도 전면 정지는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구글은 데이터센터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95억달러(약 13조6211억원)를 투입하는 계획을 공개했다. 올해 미국 테네시, 버지니아, 오클라호마에 데이터센터를 신설했고, 아이오와 조지아 등 기존 데이터센터를 업그레이드했다. 어떠한 재난 상황에도 안정적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선 3, 4중의 데이터센터 다중화가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구글이 지난 5년간 미국 26개 주에 데이터센터·오피스 구축을 위해 370억달러(약 53조469억원)를 투자했으며 4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메타와 MS 같은 빅테크들은 해저에 데이터센터를 짓거나, 풍력을 이용한 친환경 데이터센터 구축 등 새로운 실험을 벌이고 있다. 환경·책임·투명경영(ESG)과 탄소중립이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데이터센터의 친환경적 운영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속도가 붙는 추세다. MS는 2018년부터 2년간 스코틀랜드 오크니섬 인근 바다에서 해저 데이터센터를 시험 가동하며 화제가 됐다. 길이 12m, 지름 2.8m 크기의 원형 컨테이너에 864대의 서버를 넣어 차가운 바닷속 36.5m 지점에 배치했다. 2017년부터 데이터센터 운영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는 구글은 지난해 태양열, 풍력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과 시간대에 맞춰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겠다는 전략을 공개했다.
지난 10월 카카오 남궁훈·홍은택 각자대표가 성남시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서 열린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장애’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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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와 카카오의 정보보호 투자는
카카오 먹통 사태는 백업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 게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관련 분야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매일경제가 정보보호공시포털을 확인한 결과 지난해 네이버가 정보보호 분야에 350억원을 투자했고, 카카오는 140억원을 투자했다. 정보보호 분야는 크게 외부 해킹으로부터 시스템을 보호하는 사이버보안 영역과 내부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이를 복구하는 백업(재해 복구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정보보호공시제도 담당자는 “데이터센터 백업 시스템은 정보보호 분야 투자액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향후 3년간 해외 매출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카카오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세계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데이터 관리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카오는 “정보기술 부문에서 카카오는 인공지능 추천 시스템 고도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등에 투자를 지속 중”이라며 “카카오는 2021년부터 2029년까지 데이터센터와 관련해 약 4249억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과잉 규제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카카오 먹통 사태로 당정은 ‘데이터센터 이중화’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설정될 규제 기준을 봐야겠지만 기본적으로 1만5000여 개의 민간 기업(부가통신사업자)이 규제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분석이다.
민간 데이터센터를 방송·통신시설처럼 국가재난관리시설로 의무화하겠다는 규제 계획도 나왔다. 업계에선 “국내 기업은 물론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계 기업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을 위험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규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 기업의 경영상 오판에 있으므로 규제 강화에 매몰되기보다는 시장경제와 산업 경쟁력을 함께 고려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카카오 내부에서는 초유의 ‘카카오 먹통’ 사태로 인해 전체적인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3분기 실적이 이미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위기감이 높다. 카카오는 연결 기준 올 3분기 영업이익이 150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그동안 두 자릿수를 보여왔던 매출 성장률도 분기 사상 최대라는 희소식에도 불구하고 한 자릿수로 둔화됐다.
매출은 1조858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 늘었다. 시장 전망치(1조9029억원)에는 2.3% 못 미쳤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는 이날 콘퍼런스 콜에서 이번 먹통 사태로 인한 매출 손실과 이용자에 대한 직접 보상으로 400억원 규모의 단기 재무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카카오는 오는 6일까지 피해보상 사례를 접수한 뒤 선례 등을 검토한 다음 추가 대책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황순민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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