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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유럽, 올겨울 2차 난민 러시로 ‘정치적 통합’ 시험대 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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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며 환대했던 유럽 각국이 전쟁이 길어지면서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에너지 위기와 물가 상승으로 각국의 부담이 커진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기반시설을 겨냥한 폭격을 계속하면서 올겨울 유럽행 피란민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중동·아프리카 난민의 유입도 늘어나 올겨울은 난민 문제를 두고 유럽의 정치적 통합이 또 한번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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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일(현지시간) 폴란드 프셰미실 인근 메디카 국경검문소를 통과한 우크라이나 난민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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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했던 우크라이나 난민 ‘환대’ 점점 식어가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환대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침공 초기엔 현지 주민들이 나서서 난민들에게 집과 음식을 제공하는 등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는 침공 초기에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해왔지만, 지난 6월부터는 난민들에게 음식이나 숙소를 제공하며 정착을 돕던 주민들과 난민들에게 지급하던 정부 보조금을 끊었다. 난민들의 대중교통 무료 이용권도 사라졌다. 또 이들은 내년 3월부터 120일 이상 폴란드에 체류할 경우 정부가 제공하는 숙박시설 비용의 50%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른 유럽국가들에서도 난민을 환영하던 분위기는 사그라들고 있다. 약 100만명을 받아들였던 독일 당국은 지난 9월 전체 16개주 중 12개주에서 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주택과 교육 프로그램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밝혔고, 오스트리아는 지난달부터 모든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던 기차 승차권을 1회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영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던 주민 중 4분의 1은 6개월 후엔 집을 내주지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로 인해 약 1만4000명의 우크라이나인이 크리스마스 이후에 따로 묵을 곳을 찾지 못하면 노숙자가 될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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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장기화로 국내 상황 어려워지자 반감 상승


이렇듯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호의가 피로감으로 바뀐 것은 전쟁의 장기화로 자국민의 생활 여건까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전 세계 물가가 치솟으면서 유럽에서도 에너지·원자재·식품 등의 가격이 급상승했다. 여기에 러시아가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면서 유럽은 올겨울 전력 공급이 불안할 정도로 역대급 에너지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기반시설을 계속 폭격하면 유럽행 난민 수가 더 늘어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유럽의 결의가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로 일부 국가들에선 우크라이나 난민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9월 독일의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의 관대함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폴란드에선 지난달 11일 약 10만명이 결집해 극우 정당들이 주최한 행진에 참여하며 “폴란드의 우크라이나화를 중단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월드비전 인터내셔널의 수석 고문인 찰스 롤리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반감을 품은 세력들이 “우크라이나인들이 사실은 나치라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이들이 술에 취해 상점을 부수는 등 반사회적인 행동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타임지에 말했다.

“중동·아프리카 난민 차별은 더 심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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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폴란드 군인이 지난 6월30일(현지시간) 벨라루스와의 국경에 설치된 철제 장벽을 따라 걸으며 순찰중이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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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그나마 나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난민에 대한 유럽의 이중잣대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FT는 코로나19 규제가 풀리고 자국 경제 상황은 악화하면서 중동·아프리카에서도 유럽으로 이동하는 난민들의 수가 2015~201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해당 국가들에서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이나 마찬가지인 이탈리아에 최근 극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난민 문제로 인한 갈등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시칠리아섬 인근 해상에 있는 난민 구조선의 정박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폴란드 역시 출신지에 따라 난민을 차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폴란드는 지난 6월 벨라루스와의 국경지대에 186km에 달하는 철제 장벽을 설치했다. 벨라루스를 거쳐 자국으로 들어오려는 중동지역 출신 난민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에 펠리페 곤잘레스 모랄레스 유엔 이주민 인권 특별보고관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대거 수용하면서 다른 지역 출신 난민들은 거부하고 있다며 난민 문제에 대한 폴란드의 이중잣대를 비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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