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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활짝 열린 AI 창작 시대, 축복인가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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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CULTURE & BIZ ㅣ 인공지능(AI) 그림 공모전 1위의 파장


한겨레

2022년 8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한 게임 제작자 제이슨 앨런의 인공지능(AI) 그림 <스페이스 오페라극장>. 제이슨 앨런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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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한때 공상과학의 영역이었다. 똑똑해진 AI가 인간을 멸망시키고 지구를 정복하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 1927년 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 노동자를 선동하기 위해 만든 로봇 ‘마리아’까지. 공상과학에서 AI는 인류를 파멸시키는 적대자거나 자기 일만 무뚝뚝하게 수행하는 충실한 하인 같은 양면의 모습을 지녔다.

2006년 AI의 대부 제프리 힌턴 교수의 딥러닝 논문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AI 기술 담론은 새 시대로 우리를 이끄는 복음이 됐다. 지금은 장난감에서 교육, 의료, 가전에 이르기까지 많은 AI 제품을 만날 수 있다. AI가 붙으면 더 스마트해 보이는 마법이 걸리는지 조금 남발되는 느낌도 든다. 이제는 굳이 알려 하지 않으면 사용되는지 모를 정도로 AI가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과거 공상과학부터 시작된 AI의 상반된 두 이미지처럼 AI를 바라보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나뉜 듯하다.

AI 그림의 해


정보기술(IT)의 최전선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AI는 뜨거운 관심을 받는 주제다. 다양한 분야에서 AI 기술 활용을 볼 수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를 뜨겁게 달구는 AI 분야는 ‘이미지 생성 AI’다. AI 그림 연구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2017년 초기 단계의 AI 그림이 공개됐을 때 흥미로운 면이 있었지만 기대와 달리 조잡해 보였고, 창작은 역시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인간과 AI의 격차가 커서 우려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2022년 들어 서서히 바뀌었다. 줄줄이 발표된 AI 그림 생성기 때문이다. 4월 출시된 오픈AI(OpenAI)의 ‘달리(DALL-E) 2’, 7월 누구나 시험해볼 수 있게(오픈베타) 제공된 ‘미드저니’(Midjourny), 8월 출시된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영상처럼 움직이는 이미지를 제공하는 메타(이전 페이스북) ‘메이크어비디오’(Make-A-Video)의 9월 발표, 10월 출시된 ‘노벨AI(NovelAI) 이미지 제너레이터’ 등이 그것이다. 이미 개발을 끝냈던 구글은 11월 ‘이마젠’을 공개했다. 더 늦으면 AI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공개를 미루고 관망하던 구글마저 끌어들이며 AI 그림 시장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AI 그림 생성기는 사람이 텍스트로 명령하면 AI가 학습에 따라 결과물을 내놓는 ‘텍스트 투 이미지’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일반인도 쉽게 쓰도록 문장으로 명령을 입력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어서 많은 사람이 시범 서비스로 그림을 만들었고 그 결과물이 금방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과 달리 그럴듯해 보이는 AI 그림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전파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미국·일본 등 서브컬처(하위문화) 커뮤니티에서는 특히 노벨AI 이미지 제너레이터에 대한 반응이 컸다. 이 그림 AI가 ‘모에 화풍’이라고 부르는 일본 애니메이션풍 이미지에 특화됐기 때문이다. 실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밝힌 블로거가 올린 일본 애니메니션풍 캐릭터 일러스트들은 상업 결과물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일본의 기술 관련 블로거들은 노벨AI 테스트 결과를 공유하며 이제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며 일제히 흥분했다.

예술의 경계 확장?


AI 그림 논란은 2022년 8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게임 제작자 제이슨 앨런이 미드저니를 이용해 출품한 그림이 1위를 차지하면서 본격화했다. 이 작품의 입상을 두고 논란이 뜨거웠다. 문장을 입력하면 몇 초 만에 이미지가 출력되는 AI 그림을 제대로 된 출품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찬반양론이 오갔다.

출품자는 ‘미드저니를 활용한 제이슨 앨런’이라고 명기했다. AI 로 만든 그림을 자기가 그린 것처럼 속일 의도는 없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심사위원들이 미드저니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는 것이다. 미술전 주최 쪽은 심사위원들이 AI로 만든 작품임을 몰랐다고 밝히면서도 “알았다고 해도 상을 주겠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한겨레

2022년 9월 메타가 공개한 AI 이미지 생성기 메이크어비디오(Make-A-Video). 텍스트로 명령하면 AI가 영상처럼 움직이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메타 AI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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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터넷 등에 공개된 AI 그림은 도저히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질 낮은 게 많은가 하면 시각적 영감을 제공하는 것도 적지 않다. 앤디 워홀의 <매릴린 먼로> 같은 그림은 전통 회화와 거리가 멀지만 팝아트의 시작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지금 쏟아져 나오는 AI 그림도 사람들에게 작품성을 인정받는 순간 새로운 디지털아트 영역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학습하며 진화하는 AI가 생성하는 이미지는 시간이 갈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 출시한 지 몇 달이 안 됐지만 사람들은 빠르게 프로그램에 익숙해졌다.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삭제와 리터치 등으로 결과물의 품질을 끌어올린다. 인터넷으로 수많은 AI 그림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기존 작가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속도다.

AI 그림 생성기에서 사용하는 프롬프트(AI에게 명령하는 텍스트)를 판매하는 사이트도 이미 등장했다. ‘PromptBase’라는 사이트에서 AI로 만든 각종 이미지의 생성 프롬프트를 살 수 있다. AI 그림 생성기를 다루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아주 편하게 AI 그림을 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미지뱅크에서 이미지를 고르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미리보기 이미지를 골라 1~2달러 정도의 싼값으로 저작권 걱정이 없는 고품질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기술적 실업?


AI 그림 생성기에 대한 의견은 관점에 따라 갈린다. 창작자가 아닌 이들은 대체로 환영하고 반긴다. 반대가 가장 심한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직접 충돌하는 화가와 일러스트 작가다. AI와 경쟁해야 하는 이들은 “앞으로 그림 창작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라며 ‘기술적 실업’을 우려한다. 특히 의뢰받아 그림을 그려주고 ‘커미션’이라는 대가를 받는 식으로 상업적 활동을 하는 작가들은 AI 그림에 따른 타격을 피부로 느낀다. 커미션의 시장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가는 아무리 손이 빨라도 하루이틀 걸리는 작업을 AI가 몇 초 만에 해내는 것을 보며 위기감을 느낀다. 일부 일러스트 작가는 그림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 AI 학습에 사용하지 말라’는 태그를 붙이는 등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일부 작가는 오히려 환영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일본의 유명 인터넷 화가는 트위터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선배들의 그림을 모방하면서 화풍을 만들었다. AI가 같은 일을 한다고 그것을 비난할 수 없다. 어차피 도구일 뿐이다. 도구를 어떻게 쓰는가는 인간에게 달렸다”며 전향적인 견해를 밝혔다. 작은 업체들은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적극 활용한다. 특히 소규모 출판사나 인터넷 언론 등에서 상업적 활용이 활발하다. 이들은 그동안 이미지뱅크에서 일반적인 관련 이미지를 가져다 썼다. 그보다는 AI 이미지가 관련성이 높고 사람들의 흥미를 더 끌어 콘텐츠 제작에 AI 그림을 활용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AI 그림이 시장에서 자리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많은 사람이 AI 그림에 긍정적이다. 블로거나 유튜버 등 개인 미디어와 소규모 콘텐츠 제작사는 콘텐츠 질을 높이는 좋은 도구를 손에 넣은 셈이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싼값에 고품질 이미지를 얻지만 저작권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가 기존 작가들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화풍이라는 그림의 특색이 분명히 존재하고 AI가 기존 그림으로 학습하는 이상 비슷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작품을 공개하는 일이 잦은 웹툰 작가들의 반발이 특히 거세다. AI가 자신의 그림을 무단으로 학습한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AI 업체 대부분은 대형 이미지 저작권 보유 업체들과 업무협약을 통해 AI 학습 데이터를 확보하므로 저작권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AI 그림이 몰고 온 파장을 지켜보며 과연 이것이 끝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은 갈수록 더 정교해지고 언젠가 인간의 작업을 뛰어넘는 순간을 목격할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은 단지 그림이나 사진 같은 이미지에 국한됐을 뿐이다. 현재 개발되는 다양한 창작 계열의 AI 제품은 음악, 소설, 시나리오, 영상 등 모든 콘텐츠 분야에 걸쳐 있다. 이들의 등장은 분명 누군가에는 복음이, 누군가에게는 저주나 악몽이 될 것이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rabike04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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