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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금리 노마드족, ‘적금 해지 읍소 사태’에 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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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파산할까 불안… 가입한 신협·농협 외관 사진도 찾아봐

“고금리 특판은 가입 경쟁이 심해 ‘선가후고’(먼저 가입하고 나중에 고민)했는데 앞으로는 잘 따져볼 겁니다.”

8일 인터넷 커뮤니티는 전날 벌어진 지역 농협 3곳과 신협 1곳의 ‘적금 해지 읍소’ 사건으로 술렁였다. 이들 상호금융 지역 조합들은 최근 보기 드문 연 8~10%대 고금리로 적금 가입을 받았다가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돈이 몰리자 7일 가입자들에게 “조합이 파산하지 않도록 해지해달라”고 부탁하고 나섰다.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불안해진 예테크(예금+재테크)족들은 자신이 가입한 지역 조합들의 외관 사진(거리뷰)을 찾아보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다.

조선일보

◇고객에게 ‘자진 해지’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

동경주농협은 지난달 25일 연 8.2% 적금 특판을 팔았는데 직원이 한도를 설정하지 않은 탓에 5000억원가량의 예수금이 모였다고 한다. 지난 5일 마감된 합천농협의 연 9.7% 적금에도 1000억원이 몰렸다. 남해축산농협이 판매한 연 10.25%짜리 적금 특판에는 1400억원의 계약 금액이 몰렸다. 현금성 자산이 6억~19억원밖에 안 되는 영세한 조합이 1년 이자 비용만 수십억~수백억원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이 조합들은 7일 가입자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해지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연 7.5% 적금을 내놓은 제주사라신협도 직원 실수로 ‘자유 적립식’ 가입을 허용하는 바람에 수십억원이 몰려 10시간 만에 적금 해지를 읍소하고 나섰다.

소형 조합들이 이처럼 수천억원 단위의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건 0.1%포인트라도 금리가 더 높은 곳을 쫓아 게릴라성으로 움직이는 ‘금리 노마드족(유목민)’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중순부터 금융 당국이 은행과 저축은행에 수신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리면서 고금리 상품이 귀해지자 상호금융권의 고금리 특판에 대한 관심이 훨씬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가입자들 “해지 안 한다”

상당수 가입자는 조합 측의 ‘해지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해축협 가입자들의 특판 적금 해지율은 40%(8일 오후 3시 기준)에 그쳤다. 가입자들은 “말 그대로 조합 실수인데 왜 가입자들에게만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것이냐”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다른 은행 예·적금을 깨고 갈아탄 경우나 해당 특판에 가입하기 위해 새로 입출금 계좌를 만드느라 ‘신규 계좌 20일 제한’을 받게 된 사람들은 더욱 강하게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40대 주부는 “자신들의 실수로 벌어진 일인데 가입자들에게 아무런 보상책도 내놓지 않고 그저 해지해달라는 태도가 더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특히 남해축협 사태가 보도되자 뒤따라 ‘해지 읍소’ 행렬에 동참한 동경주, 합천농협에 대해선 가입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이 두 곳은 특판 판매를 마친 지 각각 12일과 2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 가입자는 “예상을 뛰어넘는 예수금에 부담을 느꼈던 조합들이 크게 사고가 터진 곳(남해)을 보고서 그참에 묻어가려고 ‘항복 선언’을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제 조합 적금 유지해도 “보호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객들이 적금을 유지할 경우 일부 조합에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지만 중앙회 차원에서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고 했다. 상호금융 중앙회는 개별 조합에 고객들이 맡긴 돈을 보관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 기반으로 농협중앙회의 경우 개별 조합에 자기자본의 5배 수준까지는 긴급 유동성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조합이 파산하게 되면 다른 조합이 인수·합병하도록 유도해 고객 자금을 보호한다. 기존 적금 계좌가 고스란히 승계되는 것이다.

◇안전한 조합 판별하려면?

소비자들은 고금리 상품 가입 전, 각 조합의 경영지표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지역 농·축협은 개별 조합의 자체 홈페이지에, 신협은 신협중앙회 홈페이지에 경영 실태 자료를 반기마다 공시하고 있다.

대체로 1~5등급으로 나뉘는 경영 실태 평가에서 1등급을 받고, 순자본비율이 5%(신협은 2%)를 넘기면 양호하다고 평가된다. 직전 공시 때와 비교해 손실위험도가중여신 비율이나 연체대출금 비율 등 지표가 악화됐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 상호금융사 관계자는 “악화된 재무 상황을 단기에 극복하기 위해 고금리 특판을 내놓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각종 건전성 지표들의 추이를 꼼꼼히 확인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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