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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부패’ 페루 대통령 “의회 해산” 5시간 후 탄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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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 수뢰’ 아르헨 부통령 6년刑 이어… 남미 좌파의 추락

조선일보

탄핵 5시간 전… 카스티요 “의회 해산” -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실시, 사법부와 경찰 물갈이 등을 선언하고 있다. 정부 여당과도 사전에 논의하지 않은 발표로, 여권에서부터 "헌정질서를 전복하는 쿠데타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이날 오후 4시30분께 의회에서 즉각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페루 국영방송사/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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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혐의를 받는 페루의 급진 좌파 대통령이 의회 해산 등 쿠데타를 시도하다 당일 5시간도 안 돼 의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전날 아르헨티나의 좌파 포퓰리스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부통령이 1조원대 수뢰 혐의로 6년형을 받아 정국이 격랑이 빠지는 등 남미 좌파 ‘핑크 타이드(pink tide)’ 벨트에 잇따라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페루 의회는 7일 오후(현지 시각) 본회의를 열어 페드로 카스티요(53)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했다. 재적의원 130명 중 3분의 2가 찬성하면 대통령 탄핵이 되는데, 야당이 주도하고 여당 의원들까지 가세해 101명이 찬성했다. 페루는 의회 표결만으로 탄핵이 완료된다. 이로써 지난해 7월 취임한 카스티요 대통령은 1년 4개월 만에 임기를 3년 8개월 남겨두고 낙마했다. 그는 탄핵 직후 모든 불체포·면책 특권을 잃고 수도 리마의 경찰서에 압송돼 반란과 각종 부패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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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티요 전 대통령(파란 점퍼)이 7일 오후 의회 탄핵 직후 대통령직을 상실하면서 불체포 특권이 사라져, 부패 범죄와 국가 반란 시도 혐의자로 리마의 경찰서에 압송돼 수사를 받는 모습을 법무부가 공개했다. /페루 법무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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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날 오전 카스티요는 자신에 대한 세 번째 탄핵 논의에 들어간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총선을 실시하겠다면서, 사법부와 경찰 물갈이를 선언했다. 야간통행 금지령도 내렸다. 그러자 야당은 물론 내각도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친위 쿠데타”라며 반발했다. 군 수뇌부를 시작으로 카스티요 정부 2인자인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 외교·재무장관 등이 일제히 카스티요를 비난하며 사표를 던졌다. 의회는 바로 탄핵안을 표결에 부쳤다. 탄핵안 가결 뒤엔 볼루아르테 부통령이 페루 첫 여성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여론이 조기 대선을 원하고 있어 볼루아르테 대행 체제는 오래가지 못할 전망이다.

카스티요가 의회 해산이란 무리수를 둔 것은 수사 칼날과 탄핵 위기로 코너에 몰리는 상황 때문이었다. 미국 CNN과 페루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검찰은 카스티요와 그의 가족, 지인들을 ‘범죄 네트워크’로 규정하고, 뇌물수수와 권력남용 등 총 6개 혐의로 수사해왔다. 카스티요 부인과 처제, 측근들이 교통·통신부와 주택부, 국영 석유회사 등의 국가사업 입찰에 개입해 카스티요와 관련된 특정 사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것이다. 부인과 처제는 직접 돈세탁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출국금지까지 당했다. 또 이들이 군·경찰 인사에 부당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카스티요는 “우파와 검찰의 마녀사냥”이라며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카스티요는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시골학교 교사와 농부, 노동운동가를 지냈다. 지난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정치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에너지 등 주요 사업 국영화와 사회적 일자리 100만개 창출 등을 공약한 급진 좌파다. 그는 대선 당시 원주민 전통 복장에 “이 선거는 부자와 빈자의 싸움, 주인과 노예의 싸움”이라며 “정치 부패의 고리를 끊겠다”고 선언, ‘청렴 좌파’ 이미지로 돌풍을 일으켰다. 그 결과 우파 정당 소속 경쟁 후보이자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를 0.25%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신승했다. 그러나 카스티요는 취임 직후부터 국정 경험이 없거나 범죄 혐의가 있는 인물로 공직을 채우더니, 곧 본인과 측근의 부패 혐의가 불거지면서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다.

페루는 좌우를 떠나 정치권 부패가 심각하고 정치 여론이 극단적으로 갈려있어 이 같은 격변이 자주 일어난다. AP통신은 “지난 40여 년간 모든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기소됐다”고 했다. 2018년 파블로 쿠친스키 전 대통령이 탄핵 직전 사임한 데 이어 대통령 대행도 2020년 탄핵당하고 이후 5일간 대통령 대행을 3명이 연이어 맡는 등 최근 4년간 대통령만 6명째 나왔다.

한편, 지난 10월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 전 대통령의 귀환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완성됐던 중남미 ‘좌파 물결’도 크게 흔들리게 됐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경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과 부패 척결을 내세웠던 좌파 세력이 권력을 이용해 심각한 부정부패를 저지른 점이 밝혀지면서 치명적인 도덕적 타격을 입게 됐다. 이달 중 페루 리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중남미 태평양 동맹 회의에서 좌파 세력이 집권한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칠레·콜롬비아·페루 등 6국 지도자들이 처음 회동하려 했지만 아르헨티나와 페루 사태로 취소됐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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