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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베르사유·루브르… 관광지 돌다 끝나는 지방의회 해외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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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 광역의회 전수조사… 12곳이 다녀왔거나 갈 계획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선출돼 7월 임기를 시작한 전국의 지방의회 의원들이 줄줄이 해외로 연수·출장 등을 떠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일정 안에 유명 관광지가 다수 포함된 경우가 많아 지역에서는 “외유성 연수”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시민들은 불황 속에서 신음하는데, 취임한 지 반년도 안 된 의원들이 줄줄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세금 낭비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8일 본지가 전국 17개 시·도 광역의회를 전수조사해보니 12곳의 의회에서 이미 올해 해외 연수를 갔거나 계획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상당수 의회가 “선진 지역의 문물을 의정에 반영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연수 비용을 각 의회가 사실상 ‘셀프 심사’ 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관광지를 둘러보는 게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책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란 지적이 많다. 울산시의회의 시의원 22명 중 21명이 모두 해외 연수를 다녀왔거나 갈 계획이다. 행정자치위원회와 산업건설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취임한 지 3개월 만인 지난 10월 1~6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의회 제도와 운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아시아 국제 도시의 스마트 도시 관련 다양한 정책을 접한다”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13개 일정 중 연수 목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건 말레이시아의 다섯째 도시인 프탈링자야의 시의회를 방문한 것과 말레이시아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사이버자야 시찰, 싱가포르 국토청을 방문한 게 전부였다. 싱가포르 의회를 방문하려던 일정은 무산됐지만 각국의 대표 관광지인 말레이시아 왕궁, 쿠알라룸푸르 국립박물관, 싱가포르의 센토사섬, 마리나베이샌즈 등은 방문했다. 김종섭 울산시의원은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등을 방문해 관광 상품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며 “외유성이라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충남도의회 행정문화위 소속 의원 8명과 의회 직원 등 총 14명은 10월 “충남미술관·도립박물관 등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해외 우수 시설을 실사한다”며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를 잇따라 6박 8일간 방문했다. 지역에선 “사실상 6일간 3개 나라를 돌며 13곳을 방문하는 일정인데, 깊이 있는 정책 연구가 될 리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13곳 일정 중 기관 방문은 독일 바트크로이츠나흐 관광청 1곳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전부 빈 쇤브룬 궁전, 루브르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등 관광지였다. 예산은 약 7000만원을 썼다. 같은 도의회의 다른 의원들도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등으로 출장을 갔거나 갈 예정이다. 이런 해외 연수로 충남도의회가 쓰는 세금만 2억원에 달한다.

의원 연수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는 지방의회가 해외 연수를 떠날 때 연수 계획서와 사후 결과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잇따른다. 예컨대 경남도의회는 도의원 21명이 지난 10월 베트남 해외 연수를 4000만원 들여 다녀왔지만, 연수 관련 게시판에는 관련 보고서가 여태껏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시·군 등 상대적으로 덜 감시를 받는 기초의회는 더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진주시의회는 오는 14일 6박 8일 일정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와 피렌체, 로마로 연수를 떠난다. 진주시의회 소속 의원 22명 중 19명이 참석하며 예산 약 1억3000만원을 쓴다. 주제는 ‘실크산업 선진지 연수’다. 시민단체 진주시민공익감시단은 “현지의 패션학교, 실크박물관 방문 등 주제와 맞는 일정도 있지만 유네스코문화유산 탐방, 로마문화유산역사지구 방문 등 관광으로 보이는 일정이 다수 포함돼 있어 외유성 연수를 취소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뚜렷한 목표도 없이 선진 문물을 본다며 떠나는 단기 출장은 지역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서 “주민들이 의원들을 통제하고 제재할 장치를 마련해 세금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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