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문소리 “배우는 신념 없으면 흔들리는 일”…이번엔 연극 무대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연극 ‘광부화가들’서 귀족 상속녀 연기

한겨레

배우 문소리가 연극 <광부화가들>에서 연기하는 귀족 상속녀 헬렌 서덜랜드는 실존했던 인물로, 예술에 대한 신념으로 광부 화가들을 조건 없이 후원했다. 프로스랩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롤스로이스를 타는 여자, 대저택에 살면서 예술가를 후원하는 돈 많은 귀족 상속녀. 배우 문소리(48)가 연극 <광부화가들>에서 연기하는 인물이다. 2010년 초연에 이어 다시 같은 배역이다. “초연 때는 ‘도대체 귀족을, 귀족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어떻게 연기하나’ 하는 심정이었죠. 상상해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번엔 이 인물이 조금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귀족이지만 예술에 대한 신념을 지닌 인물이잖아요. 여기에 초점을 맞추니까 다른 게 보였어요. 뭔가 접점을 찾을 수 있고, 상상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문소리는 “(개막 전날인) 지금이 제일 긴장될 때”라며 빙긋 웃었다.

1930년대 영국 동북부 탄광촌 애싱턴. 노조가 마련한 ‘미술감상 강좌’가 시작된다. 강사 라이언은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 르네상스 명화를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설명하지만, 광부들은 그저 눈만 껌벅일 뿐이다. 평생 막장에서 일만 해온 그들에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조차 생소했으니 강의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던 것. 마침내 광부들은 폭발하고 만다. “하루 종일 갱에서 박박 기다가 왔는데 벗고 있는 천사 그림이나 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니에요.” 난감해진 라이언, 골똘히 생각하다 무릎을 친다. “그래요, 직접 해보세요. 스스로 그림을 그려보는 거예요. 테크닉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렇게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탄광 노조 미술감상반’ 광부들은 ‘애싱턴그룹’이란 당당한 미술 동인으로 진화했고, ‘노동계급 자기표현’의 주요한 사례로 기록됐다. 연극 무대 뒤편 대형 스크린을 통해 고흐, 피카소, 세잔, 헨리 무어 등 유명 작가들과 애싱턴그룹 광부 화가들이 그린 수많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한겨레

연극 <광부화가들>에서 예술가를 후원하는 부유한 귀족을 연기하는 배우 문소리는 “예술은 어떠해야 하는지, 어디에 존재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했다. 프로스랩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소리가 맡은 헬렌 서덜랜드(1881~1965)는 실존했던 인물. 대형 선박회사의 유일한 상속자였다. 강단과 기품을 지닌 인물로, 애싱턴그룹을 조건 없이 후원했다. 문소리에게 이 연극은 “예술은 어떠해야 하는지, 어디에 존재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결국 그림을 왜 그리는가, 예술을 왜 하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목적어만 살짝 바꾸면 사람들이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는 거죠.” 그는 “그 답은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그동안 문득문득 이 작품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1)의 각본 작가 리 홀이 실화에 바탕을 둬 쓴 희곡이 원작이다. 탄광촌에서 나고 자란 리 홀의 실제 체험도 작품에 녹아 있다. 연출가 이상우가 번역했고, 2010년 초연과 2013년 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연출을 맡았다. 출연진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낯익은 실력파 배우들이다. 강신일, 박원상, 정석용, 송재룡, 윤상화, 오용, 김중기, 오대석, 이대연, 민성욱, 송선미, 노수산나, 김한나, 김두진, 노기용 등이다. 이들은 연출가 이상우가 창단한 극단 ‘차이무’ 출신이란 공통점도 있다. 송강호, 문성근, 이성민, 유오성, 명계남 등이 이 극단에서 연기력을 길렀다. “이상우 선생님이 이번이 마지막 연출일 것 같다고 하셔서 모든 일정을 제치고 합류한 배우들도 있어요.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모이겠어요.” 문소리는 “헤어지면 서운할 것 같다”며 살짝 울먹였다.

한겨레

연극 <광부화가들>에서 문소리가 연기하는 부유한 귀족 헬렌 서덜랜드가 광부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살펴보는 장면. 프로스랩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문소리가 <사랑의 끝> 이후 3년 만에 서는 연극 무대다. “연극 무대는 보약이에요. 연극은 서로 의지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할 수 없거든요.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고 힘을 합하는 과정이 어떻게 사람 마음에 약이 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는 “한두달 연극 공연을 끝내고 나면 내 안의 뼈대를 잘 세운 듯한 느낌이 든다”며 “무대가 주는 힘이 있다”고 했다. 그는 “연기는 100% 자기 확신이 중요하다”고 했다. “배우는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신념이 없으면 흔들릴 수 있는 일이에요. 누구나 좋다고 해도 내 생각은 다를 수 있고, 위험하다고 해도 과감히 해야 할 때도 있죠. 흔들리지 않도록 길게 보고 가야 해요. 그런 점에서 신념을 지닌 헬렌에겐 존경스러운 면이 있어요.”

한겨레

배우 문소리가 제43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스태프에 대한 애도를 전하고 있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확실히 문소리는 신념의 배우요, 자기 생각을 과감하게 이야기하는 배우다. 1999년 영화 <박하사탕>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이후 정치·사회 현안에 꾸준히 발언해왔다. 최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시상을 하면서 이태원 참사 얘기를 꺼낸 것도 그 연장선일 거다. 문소리는 연극 무대에 꾸준히 서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도 길어도 2년에 한번씩은 연극을 하고 싶어요. 소수를 위한 게 아니라 다수를 위한, 위로가 되는 그런 예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엔 넷플릭스 시리즈 <퀸메이커>로 대중과 만난다. 문소리는 “아직 실현 단계는 아니지만, 영화로 뭔가 좋은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작, 연출, 배급 등 영화의 다양한 분야 가운데 어떤 형태일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광부화가들>은 내년 1월22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네이버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클릭!]
▶▶당신이 있어 따뜻한 세상, <한겨레>의 벗이 되어주세요▶▶어떤 뉴스를 원하나요? 뉴스레터 모아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