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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fn광장] 춤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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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서울예술인NFT는 서울문화재단이 미술이나 대중문화와 비교하면 NFT시장 진입이 어려운 연극, 무용, 전통예술, 음악 등 공연예술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NFT 제작 및 유통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서울문화재단이 올해 1월 발표한 2022년 10대 혁신안 중 하나로 제시되었다. 선정된 서른 명의 예술가에게 NFT 제작비용과 NFT 플랫폼 메타갤럭시아를 통한 유통까지 지원한다."

NFT(대체불가토큰·Non Fungible Token)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여 디지털자산의 소유주를 증명하는 가상의 토큰을 말한다. NFT는 예술계에 새로운 현상으로 디지털자산에 가치를 부여하여 디지털아트 시장을 성장시키고 예술품 거래의 대중화, 예술시장의 투명성, 예술가의 경제적 권리보장, 창작자 중심의 개방적 시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NFT 사업에 선정되어 '아름다움의 흔적'이라는 타이트한 발레의상을 벗었을 때 몸에 나타나는 흔적을 표현한 NFT를 제작하게 되었다. 화보 촬영이나 발레작품 사진 촬영을 통한 전시는 여러 번 경험해 봤지만 나의 몇 초 분량의 영상이 디지털세상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무척 생소한 일이었고, 미래의 디지털세상은 모든 예술이 이러한 형태로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데 이제는 디지털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인가. 서울문화재단의 사업 덕분에 미래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무용이란 예술은 사라지는 무형의 예술이었다. 인간들은 살아있는 춤을 저장하기 위해 원시시대부터 그림, 글로 기록하였고 근대에 이르러 비약적인 기술 발전으로 영상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춤은 사라지는 예술이라 말하고 싶다. 무대 위 무용수들의 현장감 넘치는 움직임과 에너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긴장감, 관객과의 직접적 소통을 통한 통합적인 공연예술의 숨결을 영상매체로 전달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용수는 그날그날 컨디션과 에너지가 다르고, 관객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 무용 공연은 관객의 참여가 필요한 예술이고, 무대 위 무용수들은 관객과 소통을 통해 완벽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나의 춤은 러시아발레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의 발레가 러시아발레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1991년 소련 키로프(현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해적(Le Corsaire)'이라는 비디오 영상물을 보고 러시아에서 발레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1년 후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스쿨에 입학하였다. 바가노바 스쿨 재학 당시 나의 선생님은 일흔이 넘으셔서 많은 동작을 보여주진 못하셨지만 선생님의 손짓 하나하나가 나의 Port De Bras(포르드브라-팔의 움직임을 뜻하는 발레용어)에 남아 있다. 지금 하늘에 계신 선생님의 손짓은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나의 몸과 정신이 평생을 기억하게 된 흔적으로 남겨졌다. 선생님의 손짓이 과연 NFT로 기록될 수 있을까? 학생들을 가르쳤던 몸동작, 손짓과 열정은 나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 아닐까? 춤은 기록을 통해 남겨질 수 있지만 춤이 남긴 흔적, 무용수의 춤에 대한 열정은 기록으로 남길 수 없을 것이다.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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